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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글쓴이
변종모 저
얼론북
평균
별점9.3 (8)
quartz2

필시 서울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도시에서 비롯돼 한 차례도 도시로부터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이 삶에 대해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지쳐도 이게 내 삶의 방식이므로 버릴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익숙함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는 결단의 용기를 타고나지 못했다. 차라리 크게 한 번 울고 휘청이며 이 자리를 사수하는 게 나 다운 방식이라고 난 믿는다.



저자의 이전 삶에 대해 잘은 모르겠다. 막연히 짐작하기에 그는 지쳤다. 해결이 요원했으므로 차라리 뒷걸음질 쳐 거리를 두고자 했을 수도 있다. 많고 많은 지역 중 밀양이 그의 선택을 받았다. 이제까지의 모든 소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 아직 경험해 보지 아니한 장소를 글의 힘을 빌려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도심으로부터 제법 떨어진 그의 삶터는 전형적인 시골 동네였고, 그는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한 이들의 시간은 멎은 듯하면서도 고요히 흘러갔다. 세상 모진 풍파를 견딘 그들은 이제 세상 사람들이 소일거리라 부르는 것들에 몸을 맡긴 채 평온에 속한 삶을 살았다. 다가서는 일에 거리낌 없음은 원체 한 동네에 오래 살아서이기도 하나 사람 자체가 드문 까닭도 컸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한두 집 건너 하나씩 빈 집이 있을 터였다. 도시도 인구가 줄어 문제라던데, 시골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도시로 빠져나간 이들, 나이 들어 요양원으로 옮겨간 이들, 아예 다른 세상으로 먼 길 떠난 이들. 그들이 남기고 간 텅 빈 집은 시일이 흐를수록 사람 향기를 잃어갔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마치 귀신이 나와 울부짖을 듯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할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상상했는데, 저자는 달랐다. 그는 이미 떠난 이들의 온기를 떠올렸고, 집이 머금은 이야기를 추억했다. 도시에서 삶에 치인 이들이 있다면, 휴식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빈 집은 여느 곳보다도 좋을 것이다. 직접적인 만남은 아니지만,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같은 장소를 공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 참으로 많다고 그는 말했다. 아마도 모든 걸 수치화 해가며 이득 따지기에 능한 현대인들 대다수는 눈 뜬 장님 마냥 이를 놓칠 것이다. 나에게 말을 건네는 수많은 존재를 외면하면서 “외롭다”하는 어리석음. 밀양에 오지 않았더라면 저자 또한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밀양에서의 삶은 단조로웠다. 밝아오는 세상과 함께 눈을 떴고, 하늘빛이 변하면 잠들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추위와 더위가 있는 동안은 일했다. 이 일은 도시에서의 일과는 영 딴판이었다. 몸은 가만히, 대신 머리에선 불이 나던 사무실과 달리 흙과 함께하는 동안은 머리가 맑았다. 충분히 노동에 단련되기 전까지는 아마도 연신 쏟아지는 피로와 씨름했겠으나 잡초를 뽑는 일과를 그는 즐겼고, 난 그런 그가 부러웠다. 모든 걸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 괴롭지 싶었다. 폰을 꺼내들고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원하는 게 집 앞까지 곧이곧대로 배달되는 도시와 같은 환경은 더 이상 없었다. 널린 게 콩인데 고작 두유를 들고 와 파스타가 먹고 싶다 말하는 지인의 눈치 없음을 꼬집는 문장 앞에서 아무리 밀양에서의 삶이 좋아도 난 감당해내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을 했다. 모든 걸 동시에 취할 순 없다. 어느 하나를 버려야만 다른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세상 이치임에도 난 아직 그게 많이 어렵다.



뒤늦게 나의 게으름을 탓한다. 읽으며 진정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책장을 넘겨 가며 찾으려니 도통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많고 많은 문장에 저자의 마음이 녹아 있으므로 어느 하나 콕 집으려 들었던 건 어쩌면 나의 욕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 영혼이 흔들리는 경험은 정녕 오랜만이었으므로 더더욱 안타깝다. 북적이는 세상만을 향해 있던 시선이 볼품없는 나로 향하는 드문 일에 이 책을 읽으며 난 놀랐다. 마냥 외롭지만은 않도록 이따금 안아주고 다독여주어야겠다고, 이런 멋진 생각을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답지 않은 환호를 하기도 했다. 그 시점이 그립다. 밀양 위에 선 내 자신을 그리던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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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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