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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글쓴이
나카노 교코 저
한경arte
평균
별점9.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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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큰 기대를 품은 채 방문했던 합스부르크 왕실 관련 전시 생각이 물씬 나는 독서의 시간이었다. 서구 사회 위주의 시선을 간직해 왔다고는 하나 그마저도 영미권에 집중된 터라 합스부르크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접할 기회조차 드물었던 터다. 대부분의 사정이 비슷해서인지 전시장 내부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모두가 우선적으로 매혹됐던 건 화려함이었으나, 이내 나는 이유 모를 숙연함에 빠져들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건 위대하면서도 공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천하다고까지 하긴 뭐하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한 집안이 유럽 대륙의 역사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거대한 흐름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여문 달이 급격히 비어가듯 이들의 세력 확장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유럽이 겪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 중 첫 번째 전쟁의 직격탄을 맞았다. 물론 그보다 앞서 예전과 같은 기세등등함을 상실하였지만, 차라리 평범하게 살다 떠났더라면 덜 불행했을 거 같단 생각이 자꾸 드는 것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역사는 과거에 고착된 무언가처럼 여겨질 때가 잦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에는 그림이 따랐다. 글자가 빼곡하게 들어찼을 경우 지레 겁을 먹고 시작조차 않는다거나, 큰맘 먹고 책을 읽어 나갔더라도 눈의 피로 등을 호소하며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림, 그것도 이미 만인에게 널리 알려진 명화를 바라보며 나는 저자가 설명하는 인물의 성향 등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당시의 그림은 오늘날로 치면 사진과도 같았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옮기는 모사와 그림은 확연히 달랐다. 더구나 모델이 왕실 사람이다? 궁정의 부름을 받은 화가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원하는 바를 확실히 간파하고, 때론 실제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거나 화려하게 인물을 표현해야만 할 의무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화가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부역하기 위해 이의 이행에 나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과 상상, 두 영역에 오묘하게 걸쳐 있는 것이 바로 명화일 셈인데, 그럼에도 당시로서는 그림만큼 해당 인물의 모습을 세심하게 드러내는 무언가는 없었으므로 인물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그림을 활용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열 손가락을 모조리 사용해도 헤아림이 불가능할 정도의 시간이 쌓였지만 그림의 생동감은 뛰어났다. 인물 주변의 배경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었다. 이 가문이 누린 명예, 부 등이 허구에 불과했는지 등을 유추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650년에 걸친 가문의 역사가 항상 위대했던 건 아니다. 어쩌면 가장 유명세를 지녔지 싶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민중의 실질적 삶과 유리된 삶을 살 탓에 기요틴의 이슬이 되고야 말았다. 만일 이 인물이 가문의 정략적 전술에 의해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자신의 그릇에 맞는 상대를 만나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유망한 가문이 그러했듯 합스부르크왕조 또한 혈통을 무척이나 중시했다. 소위 피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노력은 기이한 족내혼의 연속됨을 낳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몇몇 그림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인물들의 주걱턱은 유전적 결함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단순히 턱 모양만 안 아름다운 거였으면 좋았겠지만, 적잖은 이들이 충분히 영글지도 못할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야 말았다. 막대한 부를 활용해 아름다운 그림 따위의 수집에 열을 올리는 등 나름 인생을 즐긴 경우도 있긴 했다. 허나 그 스스로도 정치를 등한시 여겼다는 점에서, 완벽한 군주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행복할 수 있었지 않았나라는 역설적 생각이 들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심초사했을 마리아 테레지아의 모습이 순간 오버랩 되는 듯도 하였다.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면 지켜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술술 손아귀 밖으로 빠져 나가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어떻게 기울였느냐에 따라 이와 같은 차이가 빚어지기도 하겠으나, 개개인의 능력 여하보다는 왠지 운명을 조정하는 적절한 때라는 게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지위에 오른 루돌프 백작은 가문을 일으킬 그야말로 적절한 시점에 존재했던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왕족이라면 누구든의 한 사람으로 지목 받아 살해당한 엘리자베트, 사라예보에서 암살됨으로써 제1 차 세계대전을 당긴 방아쇠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등도 나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 들었겠지만 때가 좋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 내 삶의 날개를 펼치기에 적절한 시점을 살아가고 있는지...



고맙게도 명화로 읽는시리즈가 꽤 여러 권 이미 출간됐거나 출간될 예정이었다. 예술은 어렵다, 인문학은 따분하다는 사고에 일격을 가할 독서가 앞으로도 여러 차례 가능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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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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