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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 작성일
- 2023.10.13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 글쓴이
- 문요한 저
해냄
스스로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다.
뒷표지에 쓰인 문장을 보자마자 이 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를 묻게 됐다. 저마다 아등바등 살기 바쁜 나머지 겉모습은 성장했을지 모르나 내면은 여전히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다. 나도 그러하다. 내 스스로 판단하기로도 주어진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능력이라고는 요만치도 없는 것만 같다. 단순히 자신감 결여가 아닌, 실제 능력치가 낮은 관계로 여전히 부모의 치마폭에 쌓여 사는 ‘캥거루족’의 형국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라는 제목에 이끌렸을 땐 어른이 아닌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한 게 아니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낮은 자존감에 대해 스스로도 문제라 느끼고 있었으나 도통 고치질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더불어 조금이라도 편히 살고 싶은 마음 또한 강했다. 책을 통해 ‘자기관계 심리학’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접했다. 관계라 하면 타인과 맺는 무언가만이 떠오르곤 했기에, 나에게 이 표현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나 자신과의 관게를 맺는다는 개념부터가 신기했다. 오래 전 많은 이들이 부르고 들었던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가 생각났다. 내 안에 너무도 많은 나를 지닌 사람들의 존재가 드물지는 않은 듯했다. 오죽했으면 그런 부류를 위한 심리학까지 태동했단 말인가!
책 안에는 많은 유형의 인물들이 등장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서로 달라 이를 같은 카테고리로 여겨도 무방할까 싶었다. 타인의 칭찬을 좀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나머지 주변을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같을 수 있는지. 하지만 모두가 자신을 돌볼 줄 모르거나 제 존재를 등한시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꼬집었다. 아, 그렇구나. 어딘가 병리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던 이들의 행동은 공허한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묻지 못한 채 그저 세상의 목소리를 좇기 급급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가시적인 목표가 주어졌을 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요구받는 걸 행하는 게 긍정적일 수도 있다. 한국인의 습성이라 할 수 있는 “빨리빨리” 정신의 구현에도 이는 유리하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받아든 이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 나는 이제껏 이토록 쉼없이 달려왔는지가 알고 싶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거 같은데, 정작 조바심에 시달렸던 건 내 자신이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참 많았다. 오로지 대입만을 바라보며 살았더니, 정작 대학에 합격하고 나자 성취감보다 허무감이 컸다. 앞으로 나는 무얼 추구해야 좋을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 본 바 없는 나는 두렵기까지 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 결과, 숱한 방어기제로 자기 자신조차도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당당했으면 싶은 순간에 뒤로 물러나고 숨는다. 난 아무것도 아니라며, 최상의 위치에 섰을 때조차도 스스로를 비난한다. 아예 감정을 외면하는 일도 있다. 너무 힘들어서 한 템포 쉬면 좋을 시기에 괜찮다며 웃는 일이 그것이다. 적절한 휴식의 시기를 놓쳐 번아웃 상태에 도달하고야 만 사람은 아마도 또 다시 자기 비하의 감정에 빠져들게 될 거다. 안 좋은 일의 연속이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듯 나에게도 친절할 수 있기를. 내가 없으면 남도 없다는, 왠지 이기적인 거 같아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태도를 마냥 배척할 필요는 없지 싶었다. 내 자신을 돌보고, 내면의 아픔을 스스로 보듬으면서, 피터팬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단단한 어른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쉽지는 않을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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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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