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독서 중

quartz2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7.4.10
분명 영화이고 과거의 사건을 다룬 작품이었다. 계속해서 선명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던 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내 스스로가 인지했기 때문 같다.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진실은 여전히 인양되지 못했다. 더는 생존을 바랄 수도 없는 상태. 사람들은 시신의 일부라도 수습해 품에 안고파 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이미 떠나고 없는 이들을 온전히 놓아주지 못하는 건 한낱 욕심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의미가 없다는 말, 참으로 차갑게 들린다.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온몸으로 부인하고 싶다. 책을 통해 만난 이야기가 어쩜 그리도 현실과 닮은꼴을 하고 있던지, 비로소 나는 세월호 사건을 부족하나마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인간을 인간 아닌 것으로 변질시키는 폭력이었다. 인간이고자 하는 이들을 짓밟는 폭력.
자랑은 아니지만 난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헝가리 감독 라슬로 네메시의 2015년 작, <사울의 아들>에 대해 들은 바가 전혀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모든 것은 영미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헝가리라는 나라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은 상당하다. 영화는 악명 높은 유대인 집단수용소 아우슈비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곳에는 다들 잘 알고 있듯 가스실과 소각로가 설치돼 있다. 언제든지 사람은 죽어나갈 수 있었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이에 관여한 이들은 국가를 향해 충성했을 뿐이라는 식의 변명을 내뱉었다. 그리하여 죽음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졌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가해자들은 죽음을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악한 줄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 와중에 행해지는 무모한 시도에 대해 저자는 언급한다. 이미 아들은 질식해 죽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기에, 한 아이의 죽음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할 운명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버지(로 추측되는 누군가)가 있었다. 숨이 끊어진 아들을 끝끝내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충만한 아버지의 시도가 무모해 보이는 까닭은 자신의 생존에는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의 시신이 토막나거나 소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제대로 된 랍비를 찾아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살아생전의 모습 그대로 땅속에 죽은 자를 묻곤 했던 우리의 전통이 떠올랐다. 인간의 마지막 길에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우린 죽은 자에게 베풀어왔다. 죽은 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와 같은 예우는 지속됐다. 아버지 또한 아들을 그와 같은 태도로 대했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저 아들이었다. 아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직접 영화로 이와 같은 스토리를 접했더라면, 장면 하나하나가 뿜어대는 애절함에 눈물을 참기 힘들었을 것 같다. 어쩌면 숨이 막혔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이와 같은 이야기였더라도 충분히 기가 막혔을 것 같다. 근데 아버지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질겁할 수밖에 없다. 시체를 처리하는 비밀 작업반인 존더코만도에 속한 이 인물은 이제껏 어떠한 죽음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어 보질 않았다. 그에게 죽음을 묻는 일은 금기였다. 그는 X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을 때마다 침묵하곤 했다. 그는 자신이 행해온 일을 어찌 정의할까. 성실하게 일을 했을 뿐이라는 항변이 이 경우엔 성립 가능할까. 책의 제목은 ‘어둠에서 벗어나기’였지만, 영화는 전개가 거듭될수록 관객들을 어둠 속에 빠트리고야 만다. 아들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택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더더욱 우리로선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가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존엄성이라 하는 게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와 같은 시도가 죽음으로부터 그를 구원하기는 했을까.
뒤늦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름 유명세를 떨친 영화였던 모양이다. 몇몇 이들의 평도 눈에 띠어 읽어보았는데 친절하지 못한 영화라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다. 다행이다. 영상 아닌 글로 이를 접했다는 사실이 실로 다행으로 여겨졌다. 영화를 봤더라면 어둠으로부터 결코 헤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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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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