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저 뻔한 디즈니 영화로 생각했다.
요즘 들어서 디즈니가 디즈니스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려 하지만
그러한 변화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그렇다면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즈니스러운 작품을 살짝 비틀어낸 매력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촬영의 부드러운 조화와
실사 촬영 장면에서의 애니메이션스러운 카메라 워크와 화면 구성은
동화스러운 인물들이 연기하는 뉴욕에서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다소 과장스러워 보이면서도 이상하다기보다는 사랑스러워 보이는 연기와 더불어
애니메이션스러운 살사 촬영은 이 영화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 주었다.

특히 뉴욕 속 공주님 역할을 멋지게 연기해 낸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는 무척 좋았다.
막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한심할 정도로 순수하면서도 용감한 지젤은
많은 장면에서 웃음을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바보스럽지 않고 사랑스러웠다.
어떤 사람은 니콜 키드먼을 닮았다고 하지만, 그닥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웃음)

에이미 아담스 이외에도 의외의 배우가 의외의 인물을 맡아줘서 즐거웠다.
지젤의 백마 탄 왕자님 에드워드를 맡은 것은 X-MEN의 사이클롭스였던 제임스 마스덴이고,
악독한 마녀 여왕에 나쁜 용 역할은 영화를 떠올릴 필요도 없는 수잔 서랜든이었다.
그 마녀의 충복이었지만 멋지게 새로운 직업을 구해 독립한 건
해리 포터의 부모님을 배신한 피터 페티그루의 티모시 스폴이다.
다들 조금씩은 예상할 수 없는 배역을 연기한 배우들은 여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버스에 칼질하고 자전거 앞에 뛰어드는 왕자님은 대폭소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쥐들과 바퀴벌레들과 (바보같은) 비둘기들이 지젤의 노래에 청소를 돕거나
뉴요커들이 멋진 춤과 노래로 센트럴 파크를 수놓는 모습은 무척 즐겁고,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닌 이혼 변호사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는 공주와
용에게 잡혀간 변호사를 구하러 칼을 들고 쫓아가는 공주도 무척 즐겁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그러한 즐거움에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무척이나 바보같이 순수하고 어이없는 장면들은 웃음을 터트리게 하지만
그런 웃음은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웃음이 아니라 자조의 웃음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직도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는 순수함에 대한 희망의 웃음일지도.
우리는 아직도 마법과 같은 영원한 사랑의 키스를 꿈꾸고 있고
그런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험한 세상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니까.
"Welcome to New York."은 분명 이 험한 세상에 발을 내딛은 우리에게
그 마법같은 키스를 해줄 사람이 우리를 환영할 때 하는 말이니까.

그래서 즐거운 동화 한 편을 보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웃고 떠든 것이 아니라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덧. 라이프로그에서 오늘에서야 검색이 된다. 이건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