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을 때

rain7753
- 작성일
- 2005.12.21
로알드 달의 단편집 『맛』의 결말을 추측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번, 세 번 막 뒤집는데 어떻게 그것을 감당하랴. 성석제와 아멜리 노통브의 장점만을 한데 모은 것 같은 로알드 달, 그의 세계는 감미로운 황홀함을 만끽하게 해준다.
참으로 평범한 이야기가 될 것이 반전 한번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승화된다. 거룩한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평범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되는 그 거룩한 현장은 반전이 왜 필요한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따스한 감동을 보장하는 『뤽스 극장의 연인』, 따뜻한 반전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한국에서 입소문을 타며 아멜리 노통브의 이름을 퍼뜨린 『적의 화장법』의 마지막 장면은 어느 작품 못지않은 반전의 묘미를 맛보게 해준다. 더욱이 그 안에서 '적'에 대한 철학적 관찰까지 담겨 있으니 황홀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문화대혁명 시절 부르주아로 낙인찍힌 가문의 자식들은 함부로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발자크를 읽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산골 동네의 소녀에게도 읽게 해준다. 그렇다면 문화대혁명 시대 산골 소녀는 발자크를 읽고 어떻게 했을까? 섣부른 상상은 금물. 할 수 있는 말은 발자크도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것 뿐.
셜록 홈즈를 빼놓고 반전이니 뭐니 하는 말을 어찌 쓸 수 있으랴? 특히 『배스커빌의 개』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 가장 황홀하다. 어두침침한 시골에서 벌어지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에 뛰어든 남자 셜록 홈즈! 그가 있어 많은 이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돈다.
2005년에 등장한 작품들 중에서 이 정도로 놀라운 반전을 담아낸 책이 있을까? 없을 게다. 게임의 법칙을 파괴하면서, 이제껏 등장한 화려한 경력의 범죄자들을 단숨에 조무래기로 만드는 무서운 녀석 ‘코핀 댄서’를 만난다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추리소설로서 최고의 수식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반전을 담아냈다는 수식어는 『코핀 댄서』를 위한 것이다.
현대의 미국인이 중세의 유럽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설정이 판타지 같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작가가 마크 트웨인이라는 걸 잊지 말자. 또한 앞선 문명과 뒤쳐진 문명을 운운하는 이분법에 펜 끝을 겨누었다는 것도 잊지 말자. 『아더왕과 양키』는 분명 유쾌하고 흥미롭다. 그렇다고 하여 만만히 보면 큰 코 다친다. 세계관이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결말이 있으니까.
2005년에 소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술적인 반전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족붕괴, 입시문제로 얼룩진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터뜨리며 감동의 피날레를 연출하는 『호숫가 살인사건』은 단연 압권이다. 추리소설의 경지를 뛰어넘은 『호숫가 살인사건』, 가슴을 파고드는 반전이 담겨있다.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난데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엉뚱하다고 해야 할까?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기린, 카스테라, 너구리, 야쿠르트 아줌마 등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할 말은 오직 황홀하다는 것 뿐. 엉뚱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변비에 신음하다가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구원받으면 행복한 것처럼 기린과 카스테라에 뒤집어지며 황홀해진다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한 집에 사는 다섯 명이 차례로 타인을 이야기하는 『퍼레이드』는 얼핏 보면 평범한 청춘남녀의 모습을 그린 것 같다. 그러나 단 한번의 반전으로, 책이 뒤집히고 모든 장면의 의미는 새롭게 해석된다. 오늘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살아가려는 현대인들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퍼레이드』, 기가 막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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