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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연습



김승옥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001

 




죽음과 맞닿아 있는 우리는 생명을 연습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존방법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시대의 천재라고 알려진 김승옥작가는 1941년생이며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연습》으로 등단했다. 이 작품이 등단작이라니 실로 놀랍다. 대표작으로 무진기행이 있는데  수능 지문으로 무진 기행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문학동네 팟캐스트와 알뜰신잡에서 이 책이 언급되어 읽어보겠노라 다짐한 책이기도 하다.

천재 작가라 불리며 최인훈, 이청준 등 당대 내노라 하는 작가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고유의 문체적 특성과 탁월한 문장 구성력을 가진 그가 돌연 종교에 귀의해 절필 중이라고 하니 너무도 안타깝다.  


중단편 10작품을 모은 이 책은 작가가 1960년대에 쓴 작품들이다. 20대 초중반에 이런 작품을 썼다고 하니 놀라움의 연속이다. 막상 김승옥은 대학 등록금이 없어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못하면 군대에 가겠다는 각오로 《생명연습》을 썼다고 한다. 

『김승옥의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소설의 구성 원리 면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한국현대문학사전에서』

또한 김승옥은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은 한글세대였다.  그의 언어적 기교들은 한글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글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가 되었으며 평론가들로부터 '현대문학사 100년간 가장 우수한 단편소설'로 선정된다. 

 

 《무진기행》과  《환상수첩》은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한국문학 중 하나이다. 환상수첩을 가장 대표작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환상수첩에서 흐르는 정서, 무기력함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6.25전쟁이 끝난 후 60년대를 한참 생각해 보았다. 그래야 작품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듯해서. 이를테면 왜 육체를 죄악의 씨앗으로 보는건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의든 타의든 결국 죽음이나 성적인 타락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에 대해 60년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내가 써 낸 소설들은 한낱 지독한 염세주의자의 기괴한 독백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직접 말했다. 아... 60년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랬을것이다.


등장하는 인물에 주목해 보았다. 다락방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형과 어머니의 남자관계를 두둔하는 《생명연습》, 돈벌이를 위해 빨치산의 시체를 치우는 아버지, 윤희누나의 강간에 적극개입하는 《건》, 창신동 빈민가보다는 양옥집의 파아노 소리에 더 고독감을 느끼는 《역사》, 타인은 모두 숙물이라며 스스로 타인이 되어가는 《무진기행》, 아내의 시체를 팔고 밤새 그 돈을 쓰고 자살하는 남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들 《서울 1964년 겨울》, 《염소는 힘에 세다》에서 등장하는 나약한 존재들, 찢겨진 여성의 모습. 끊임없이 가학하는 힘이 센 존재들, 《환상수첩》에서 주인공은 자신은 부조리한 세상에 적응도 못하면서 동생은 이 체제에 적응하기를 바란다. 일탈을 꿈꾸며 늦은 밤거리를 배회하는 《야행》 등 전쟁 이후 복구되지 않는 시대적 이데올로기, 가족사를 안고 자살의 길을 택할 것인가. 속화의 길을 택할 것인가! 무려 60년전 소설 속 인물들이지만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서 봄직한 인물들이다. 소름끼치는 것은 어쩌면 내 안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아니라고 끊임없이 부정하고 극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배경에도 관심이 간다.  《무진기행》에서 무진이라는 장소. 존재하지 않는 장소인데 마치 존재하는 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책에서 작가는 '무진'을 안개에 비유하고 '서울'은 바다도 상상되지 않는 먼지 낀 도시, 모든 욕망의 집결지라 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심리.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곳을 욕망의 집결지라고 부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환상수첩》의 거대한 물, 바다. 벌은 무섭고 죄는 무섭지 않다고 하면서 실상은 벌을 피하기 위하여 도망다닌다.  《건》에서 찬란한 왕궁처럼 생각키우는 시립병원의 멋있는 모습과  미영이네가 살다버리고 간 빈 집이 대비된다. 황폐한 빈 집을 담 위에 말타기 하듯 걸터 앉아서 내려다보며 소년은 죄의식을 씻는다. 《역사》에서 가운데 부분이 축 늘어져서 포물선을 이루고 있는 빈민가 집들에서만 볼 수 있는 천장,하얀 회가 발라진 낙서 하나 없는 이층 양옥집 벽. 그 외에 양장점, 다방, 천막휴게소, 여관, 악극단, 흥신소, 술집이 부도덕과 도덕, 억압과 자유, 삶과 죽음과 어울어져 배경임을 잊을만큼 한덩어리를 이룬다.







자기 세계라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몇 명 나는 알고 있는 셈이다. 자기 세계라면 분명 남의 세계와는 다른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p16


구름이 끼고 음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뭇잎도 다 져버린 나무들은 회색 하늘 밑에서 앙상하게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고 시주변의 산들은 어두운 갈색으로 칙칙하게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산밑을 흐르는 강의 방죽으로 나갔다. 방죽에는 까만 벚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봄이 오면 꽃들이 활짝 피어서 방죽은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화려했었다. p108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우리가 건너온 염전 벌판을 바라보았다. 아슴한 눈발 속에서 염전 벌판은 넓어져가고 있는 듯했고 아는 아무래도 그 벌판을 건너가지 못하고 말 것 같았다. p160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p263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p286


고개를 돌려보니 누나는 사탕장수 아주머니 옆 자기 자리에 꽃바구니를 천연스럽게 놓고 앉아서 나를 부르고 있는것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놈을 향하여 그랬었던 것처럼 온 힘을 두 눈에 모으고 입을 꼭 다물고 누나를 쏘아보며 서 있었다. p438



극기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유혹을 무시하는 능력, 혹은 자기 내부의 욕망을 억제하는 인내력을 말한다. 삶의 극기란 누구나 한번쯤 겪는 과정이 아닐까? 어쩌면 책 속의 말처럼 사람도 인생도 다면체인 것이다. 아쉽게도 작가는 이제 더이상 말이 없으나 육십 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부조리,1960년이라는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며칠간 김승옥의 소설에 빠져 있던 나는 이제 그만 이 짙은 안개를 더듬더듬 빠져나가야겠다. 자꾸 뒤돌아 보겠지만.






생명연습

김승옥 저
문학동네 | 201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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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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