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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lormoon
- 작성일
- 2020.8.5
공산토월
- 글쓴이
- 이문구 저
문학동네
공산토월
이문구
내게는 셰익스피어와도 바꿀 수 없는 분들이다. 『생명연습』의 김승옥,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대범한 밥상』의 박완서, 『공산토월』의 이문구 등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빛나는 이름들. 책 속에서 문장이 또박또박 걸어 나와 내게 말을 건다. 생명이 없는 활자에 생명을 불어넣은 한국문학은 내게 그런 의미이다. 이 책은 이문구의 대표작 관촌수필 중 4편과 작가의 중단편이 엄선되어 실려있다. 문학동네에서 야심 차게 고른 작품이니 과히 이문구 작가의 작품의 백미 중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충청도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했다. 뒤에 나오는 낱말 풀이를 뒤적이며 독해하다시피 책을 읽다가 그만 손을 놓아버렸다. 단어에 집중해서 공부하듯 읽을 책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 내 읽으며 전체적인 의미에 집중해 보았다. 결국 작품의 주된 정서는 왕소나무와 함께 사라진 고향에 대한 추억이다.
『관촌수필』하면 수능 문학이 먼저 떠오른다. 의미도 모른 채 밑줄 그어가며 외웠던 작품이다. 다시 읽으니 이제서야 이문구 작품의 맛을 조금 알았다고 해야 할까? 책의 제목인 《공산토월》부터 이야기 해보자. 이 소설은 『관촌수필』의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관천'은 충남 보령 대천읍 저자의 고향이다. 저자의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연작소설로 담아낸다.
김 모라는 십육 세 된 소년이 택시 운전사를 살해하고 만 팔천 원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혔다. 고향가는 길에 먹고 싶은 것 사 먹으려고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가 먹고 싶었던 것은 쌀밥과 콜라와 포도라고 한다. 기사를 보던 그는 강도 짓을 한 소년을 동정하며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린다. 더부살이할 때 먹던 불그누름한 밀기울밥 한 보시기와 관촌 신 서방네 아들 석공 신씨를 떠올린다. 6.25 때는 군청 서기로 일하지만 이후 부역한 일에 대해 친북좌파로 몰려 대전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한다.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싫은 내색없이 도맡아 한다. 궁극에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살으야 헌당께......" 석공은 딸 정희가 자라면 데려다 식모로 쓰라며, 애비없이 큰 새끼들 글이나 넘들 반만침이라도 배우게 해달라며 부탁한다. 잘들 사는 걸 보고 죽으야 옳을 텐디, 이대루 죽어서 미안하네.. 부디 잘들 살라는 마지막 말에 '나는 울었다.'로 소설은 끝난다. 『관촌수필』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일락서산』. 관촌수필의 첫 번째 이야기다. '서산에 해가 지다'라는 뜻으로 화자는 고향에 방문한다. 마을 입구를 지키던 왕소나무가 사라진 것에 개탄한다. 조상인 토정 이지함 할아버지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턱하니 꽂았는데 왕소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들었다. 소나무와 함께 유년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할아버지. 그의 할아버지는 이 시대 마지막 양반으로 전통을 소중히 하며 완고하고 까다로운 분이다. 유교적 관념에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물이다. 왕소나무의 죽음은 그에게 전통, 역사의 몰락이며 잃어버린 고향의 상징이다. 왕소나무가 죽고 없는 고향을 '타락한 동네'라 표현했다. 제1편 『일락서산』에는 저자가 하고픈 말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서산'의 의미와 '해가 지다'라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이것은 사라진 옛 것에 대한 향수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픈 말이 충청도 사투리와 어울려 의고체의 어려운 문장이지만 충분히 전달된다고 본다.
관촌수필의 두 번째 이야기 『화무십일』은 이 책에는 빠져있다. 6.25당시 피난길에 오른 윤영감네 가족 이야기이다. 관촌수필 세 번째 이야기 『행운유수』다. 자연 그대로 살아간다는 뜻이 담겨있다. 옹점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옹점이는 돌성받이요 근본이 없다고 표현한다. '이매'라는 화류계 퇴물의 딸로 옹기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옹점이라는 이름도 화자의 할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이다. 부엌데기로 사는 옹점이였지만 마음씨 곱고 정이 많다. 신장염을 앓고 있던 화자의 어린 시절 밥도 못 먹고 있으니 물에 만 쌀밥을 떠먹이는 정 많은 옹점이다. 지하조직의 총책이던 화자의 아버지. 집으로 순경이 찾아와도 겁도 내지 않고 당차고 다부자게 대거리를 한다. 후에 나오지만 옹점이는 멀리 강릉으로 시집을 간다. 남편이 죽자 시장통에서 노래를 하며 밀어먹는다.
『녹수청산』 관촌수필 네 번째 이야기. 주인공 대복이와 그의 가족이 나온다. 술고래 아버지와 손버릇 나쁜 어머니. 대복이는 화자와 어릴때 부터 친하게 지낸다. 미군 상대로 일하다가 도둑질을 해 감옥행. 양반의 딸인 순심이를 겁탈하려다가 감옥에 간다. 인민군의 진입에는 인민군의 편에 서다가 다시 세상이 바뀌어 국군이 밀려오자 순심이의 집은 빨갱이로 몰린다. 그는 순심이를 지키려는데... 아침에는 인민군이 되고 저녁에는 국군이 되기도 하는. 빨갱이로 몰리다가 다시 반동분자로 몰렸던 민족의 비극은 이산가족이 되어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우리동네 시리즈』는 저자의 연작소설로 우리 동네 김 씨에서 최 씨, 정 씨, 류 씨, 황 씨까지 변화하는 근대화와 맞물려 농촌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이 책에는 그 중 『우리 동네 김 씨』와 『우리 동네 이 씨』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농촌의 소외된 문제와 근대화의 파편, 비판의식이 한 데 녹아있다. 주인공 이낙천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겠가며 이름을 리낙천으로 바꾸지만 정작 밀주 단속을 나온 세무서 직원에게 자신은 리낙천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왜 문패를 다시 바꿔달았을까? 우리 동네 김 씨 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와 농촌의 몰락을 보여준다.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얼마 전에 이 십년 만에 다시 방영된 『전원일기』가 떠오른다. 그 옛날 드라마를 나는 어찌나 관심있게 봤냐면 어릴 때 할머니가 좋아하는 드라마였다. 아랫목에서 고구마 까먹으며 봤던 전원일기의 장면 같았다.
『명천유사』에서는 1950년대 이후 우리의 삶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주인공 최서방은 우리 집 머슴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최서방과 헤어지는데 우연히 시장에서 마주친 최서방에게 몇 푼 쥐여준다. 『유자소전』의 유재필. 농자, 맹자,노자 하듯이 유재필에게 유자라 이름 붙인다. 군대에서 익힌 운전 솜씨로 그는 총수의 운전 기사가 된다. 총수 자택 연못에 풀어놓은 마리당 비단잉어 80만 원짜리 비단잉어가 떼죽음 당하자 술안주로 먹는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돌린 어떤 기업인의 딸이 생각나기도 했다. 궂은일 마다않고 주변인들을 구하고 나중에 간암 선고를 받는 유재필. 이문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배운 것 없고 괄시 받는 천한 인물들이지만 세상일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감으로 때로는 꾸짖기도 한다. 이문구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므로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5.16 군사정권의 고리채 정리라는 대대적인 정책을 담은 『암소』에서 저자의 관조적인 독백을 담은 『장동리 싸리나무』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 남과 북을 가르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근대화와 맞물려 장엄한 역사 소설로 다가온다.
김동리 선생이 이문구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으로 몰락해버린 양반 집안의 손자, 남로당 보령군 총책이었던 아버지에 이어 그의 형들도 어린 나이에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이문구는 살기 위해 문학을 택했다고 한다. 문인들조차 좌와 우로 나뉘고 우파 문학의 거두 '서라벌 예술대학'의 김동리 선생을 찾아간다. 김동리 선생은 그의 출신 성분을 알고도 제자로 받아들인다. 다른 제자들의 시기와 질투에 스승 김동리는 말했다. "나는 이 학생이 앞으로 우리 문단에 아주 희귀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이웃 어딘가에 살았을 법한 사람들이다. 정작 아버지와 형들의 이야기는 왜 소설에 등장하지 않은 것인가? 의문도 가져본다. 2003년 향년 63세의 일기로 생을 마친다. 요즘 나이로 생각하면 한창 작품 활동하실 나이다. 그가 10년만 더 살아계셨더라면 한국 문학은 한 발 앞으로 진보하지 않았을까?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으로 글을 닫는다.
시대 작품의 스타일리스트,
'농촌 소설' 이라는 카테고리로 묶기에
그의 작품은 너무나 방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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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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