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지니
- 작성일
- 2019.3.11
퍼스트 러브
- 글쓴이
- 시마모토 리오 저
해냄

사건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한편, 딸이 친아버지를 살해한다는 것은 상당한 각오가 있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주 평범하게 취업 활동을 하던 여대생이 난데없이 그런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어떤 방아쇠가 있었던 것일까.
p.28
스물 두 살 미모의 여대생이 화가인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에 한 방송국에서 2차 면접 시험을 치렀는데, 도중에
몸이 불편해져 면접을 포기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버지가 강사로 일하는 미술학교로 찾아가, 여자 화장실에서 아버지의 가슴을 사들고 간 칼로 찔렀다. 현장에서
도주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언쟁을 벌인 후, 뛰쳐나와 강가를 걷던 중 경찰에 체포되었다. 화가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 사이에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난 여대생이, 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이야기는 살인 사건 이후 재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과연 그녀의 동기는 무엇인지 추리하는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입장이 아니라 변호인과 임상 심리사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임상 심리사인 유키는 출판사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논픽션 집필을 의뢰 받는다. 임상 심리사의 관점에서 그녀의 반생을 정리한다는 기획을 세웠는데, 사실 재판에 영향을 주면 안 되고 유족들의 감정도 고려해야 해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칸나의 변호인인 가쇼가 유키의 시동생이라 그들 두 사람이 칸나를 면회하고, 사건의
배경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살의가
있었다는 정황을 뒤집기는 거의 어려운 상황이었고, 조금이라도 정상참작을 받으려면 어머니의 증언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어머니는 변호 측 증인이 아니라 검사 측 증인으로 선다고 하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피의자 칸나는 시종일관 모호한 진술을 하며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평소 같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대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알아 버리고 말았다. 성으로 부르는 거 싫다는 그 한마디로,
그 말투로, 그 역시 부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p.192
이 작품은 시마모토 리오의 2018년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숨겨진 폭력의 굴레와 억눌린 아픔을 그린 이 소설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사실 상처란 낯선 타인을 통해 받게 되는 경우에는 금방 잊어 버리거나 극복하더라도,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경우 치명적인 독이 되어 끝내 치유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감히 당신이, 나에 대해서 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주다니... 배신감은 배가 되고, 충격은 절망으로 연결된다. 이제 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믿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로부터의 폭력이기에 여파가 크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바로 알아차리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혐오하며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며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플롯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자아 형성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가 도리어 깊은 상처를 줬을 때 극복할 수 있는 가'이다.
극중 등장 인물들은 모두 부모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 임상 심리사인 유키는 어머니와, 변호사인 가쇼도 어머니와 관계가 불편하고, 칸나 역시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 그래서 유키는 칸나의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두웠던 어린 시절과 상처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왜곡된 애정과 무책임한 방임으로 인한 비극은 허구의 이야기 속 문제만은 아니다. 여전히 뉴스 보도를 통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부모라는 이름의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알려지지 않는 이상한 형태의 가족 관계가 세상에 더 많을 것이다. 각각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오로지 그들만의 사정이라, 바깥으로 알려지지 않는 이상 그것이 어떤 굴절된 형태이건 상관없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사회가 정해 둔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얼마나 허약하며, 반대로 또 얼마나 끔찍하게 견고한가, 가족은 정말 울타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이야기였지만,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섬세한 심리 묘사들로 인해 차곡차곡 감정들을 쌓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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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