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리뷰

위대한여리
- 작성일
- 2012.6.10
모비 딕
- 글쓴이
- 허먼 멜빌 저
작가정신
학창시절에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진 편집본을 읽은 이후, 마흔살이 넘어서 다시 읽어 보는 <모비딕>은 또한번 기억을 배반한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속의 <모비딕>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여러 작가의 삽화가 들어있었던 그 당시의 <모비딕>은 광기에 가까운 애이해브의 열정으로 읽혀졌지만, 지금 읽는 <모비딕>은 광기가 지배할 수 있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로 해석이 된다.
13세 이후의 청소년기에 집안의 몰락으로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던 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외면적으로는 포경선을 타게된 초보 선원이 선장 애이해브가 흰고래 모비딕을 추적하는 과정을 기록한 해양모험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작품의 대부분은 포경업을 주제로 한 전문 서적이라고 할만큼 고래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 부분이 쳥소년용 편집본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일텐데, 독자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포경업에 대한 이토록 자세한 묘사는 일반 독자에게 필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인생을 축소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고래 잡이 과정과 그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관점은 포경업이 사양화된 현재에서도 유효하다고 본다.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은 무엇엔가 홀린 듯이 사로잡혀서 주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애이해브이거나 그 배를 탄 선원인 것이고, 우리를 홀리는 것은 공포의 흰고래 모비딕인 것이다. 각자의 흰고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가족이 있는 항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허먼 멜빌이 고래를 연구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의 과제를 파헤쳐 볼 용기를 가져볼 것이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면, 바다의 심연을 들여다 보듯이 우리의 역사와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우선이긴 하겠지만.
P.S. 개인적으로 이 작품과의 추억은 중학 시절의 친구들이 나를 <모비딕>을 읽던, 자기들과는 좀 달라보였던 소년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가 조금은 빨랐던 탓에 생각이 많았던 그 시기에 나는 꽤 책을 읽는 소년이었는데, 그 당시 집에 있었던 세계문학전집에 이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전집이 좀 남달랐던 건, 굉장히 다양한 삽화가 포함된 거였는데, 그 삽화라는 것이 작품에 연관된 회화 작품이나 다른 판본에 포함되었던 삽화를 실어놓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비극과 상징성이 풍부한 언어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삽화는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그 인상이 내 개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제야 되돌아보면서 술회할 수 있다.
P.S. 모리스 포미에의 삽화를 싣고 있다는 점이 작가정신사가 펴낸 이 책의 큰 장점이긴 한데, 삽화의 위치가 해당 내용이 나온 다음, 한참을 지나서야 등장하는 탓에 번번히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 짜증스런 절차를 유발한다. Original text 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분명히 삽화는 해당 장면을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있는 것인데, 장면이 한참 지난 다음에 배치가 되면 오히려 독서의 리듬을 깨뜨리는 역기능이 생겨버린다.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삽화의 역할이 큰데, 이해할 수 없는 편집으로 아쉬움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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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