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rheb320
- 작성일
- 2011.12.15
질러, 유라시아!
- 글쓴이
- 김창현 저
푸른길
누구나 해외여행을 꿈꾸지만, 기간, 비용, 혹은 용기의 부족으로 쉽사리 도전하지 못한다. 특히나 이 책에서처럼, 7개월이라는 긴 기간의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학교수업, 직장생활, 그리고 그외의 것들에 얽매여서 쉽사리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기간에 수반되는 엄청난 비용도 여행을 떠나는 데 장애요인이 된다. 또한, 여행지에 대한 대중적 느낌 중 하나인 소매치기, 사기꾼, 테러 등에 대한 위험성은 특히 제3세계 국가에 대한 여행을 주저하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요인들을 극복하고 무려 7개월이라는 긴 기간의 여행에 도전하였다. 이 책에는 저자가 대학생 시절에 7개월간에 걸쳐 유라시아를 홀로 종주하면서 겪은 일과 느낀 점으로 가득차 있다. 특히 여행 중에 직접 체험하고 느낀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이 장점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는 여행지에 관한 형식적 지식이나, 여행지에서 본 장소에 대한 화려한 미사여구 등을 배제하였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그에 대한 느낀 점을 중점적으로 구성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글에 대한 몰입도가 높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대목들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베이징에서 정저우로 가는 과정에서, 철도의 결절 지점이라는 정저우의 상대적 위치를 주목한다(p.34). 지리학과 출신으로서의 저자는, 제한된 정보의 상황에서 최선의 여행코스를 위한 의사결정의 순간에 지리적 지식을 활용한다. 사실 지리학을 전공하는 것이 여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대중적인 인식이 있다. 하지만 이는 짜여진 패키지 여행에서는 행선지 결정에 관여할 수 없고, 가이드가 따라붙는다면 사전 지리지식은 가이드에 대한 기만이 될 뿐이다. 하지만 저자의 경우처럼, 홀로 떠나는 자유여행이라면, 위와 같은 경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무엇보다도 지리학을 훈련받은 이로서 가장 여행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지리적 통찰력'이다. 이는 공간 상에서 자연,인문 등 여러 요소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지리학적 관점을 견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저자의 이러한 능력은 여러 장면에서 드러난다.
베트남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젊은이들과 유럽풍의 건물과 프랑스식 노천카페 등을 보면서, 제국주의 침략과 세계화의 물결과의 관계와 그에 대한 입장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p.68)이 있다. 또 베트남의 소수민족인 참 족 박물관에서, 박물관은 문화의 부스러기를 판매한다고 표현한 것, 엄연히 살아있는 소수민족의 문화가 점점 말살되어 가는 현실에 대해 박물관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대목(p.71)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태국 치앙마이 트래킹에서 고산족과 테란족의 평범한 일상이 관광산업이라는 명목 하에 박제품이 된 것에 주목하는 대목(p.103)도 있다.
또한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국가나 종교에 대해 중립적이면서도 지리적 현상을 포착해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교 사원의 팜플렛을 보는 대목(p.110)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무슬림들이 불편한 자세로 하루에 다섯 번 씩이나 신에게 기도를 드려야만 하는가에 대한 설명에 주목한다. 자신이 원하는 자세, 즉 편한 자세로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면 그것은 이미 욕망에 귀속되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슬람교는 테러리즘의 이미지가 강하고, 여성 차별이나 저발전국가 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편견을 배제하고 지리적 현상으로서 종교경관을 바라보려는 시각을 견지한다면, 서구중심적인 시각을 극복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인들의 아프가니스탄 선교 활동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p.206).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는 이들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시각을 견지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니까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선교자들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현실의 삶의 불확실성과 성경에 있다고 하는 진리의 관계에 대해 성찰한다.
한편으로 저자는 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국에서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만난 프랑스인에게 한국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대목(p.52)이 나온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 각자의 국적을 묻고 그 나라의 사정과 문화 등에 대해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한편으로 우리가 여행자로서 외국으로 나가면,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우리나라에 대해 소개하는 기회가 된다는 뜻이다. 굳이 투철한 애국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국민공통교육과정을 밟고 한국인으로서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고 살아왔다면, 이러한 기회에 기본적인 우리나라에 대한 지리, 역사, 문화 등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여행이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환전이나 숙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여행객들을 '호구'로 보는 이들을 만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네팔에서는 대놓고 보석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또한 입산료를 불법으로 요구하는 반정부단체를 마주치기도 했고, 동료 여성여행객이 현지인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루마니아에서는 앞으로의 여행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는 고액의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들도, 여행의 즐거움을 위한 몇 가지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여행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행자는 '천국을 쫒아다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p.81)이 있었다. 특정 장소가 너무 매력적일지라도 또 다른 장소가 천국일 것만 같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찾아 떠도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이들을 분류하여, 레저 족(짧은 휴가기간 동안 좋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기는 이들), 골수 여행가(몇 개월 간의 자유로운 일정을 즐기는 장기 여행자), 생계형 여행가(여행을 통해 잡지 등에 글을 써서 여행비용을 버는 이들), 일탈 족(일상을 잠시 포기하고 여행을 떠난 이들) 등으로 나누면서, 여행에도 다양한 목적과 방법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p.314). 막연하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행위 자체를 부러워하는 일반적인 시각이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본인이 여행에 어떠한 목적을 가질 것이고, 그 여행이 본인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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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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