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rheb320
- 작성일
- 2012.8.27
대륙의 발명
- 글쓴이
-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저/이대희,류지석 공역
에코리브르
5대양 6대주라는 말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륙에 대한 정보는 세계지리 수업의 시작 시점에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당연한 사실'이다. '상식'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지식으로 여겨지고, 사회적 구성 따위는 생각해 보기 힘들다.
그런데 대륙이 '발명'되었다니.. 정말 흥미로운 책 제목이었다. 많은 기존의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고 재구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자연과학적, 그리고 인문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한 틀로 여겨지는 대륙 구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대륙이라는 것 자체가 '탄생'되었다는, 즉 역사적 과정을 거쳐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구성의 주체는 '유럽'이다. 유럽 중심의 세계체제가 그 기원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끄트머리의 반도에 지나지 않는 유럽이 하나의 대륙명을 차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이러한 의문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터키가 감히 '유럽'연합에 가입하려고 하는 것을 막는 유럽 나라들의 이야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번 생각해 보자. 터키는 왜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 감히 정해진 틀을 깨면서 유럽 대륙으로 들어가려 하는가? 터키 입장에서는 나름 이유가 있다. 수위도시인 이스탄불은 유럽 대륙에 있고,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 발칸반도를 지배하였으며, 지금도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하지만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이를 반대했다. 사실 나도 왠지 모를 이유로 유럽의 입장에 동조가 되었다. 그냥 터키는 유럽이 아닌것만 같고, 터키의 주장이 억지인것 같았다. 여기에 의문을 가진 적도 없었다. 대륙 구분은 엄연한 객관적 실체이기 때문에, 한번도 이에 대해 비판적 재구성을 감히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세계지도를 많이 보고서도 말이다.
TO지도를 보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세 대륙이 나온다. 이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륙의 명칭은 중세때도 현재와 같았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기원과 쓰임새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각 대륙의 명칭 기원은 그리스인들이 '방향'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대륙이라는 배타적 경계를 지정하지도 않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지도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 두 가지 그리스어 단어를 써서 주요 도시들이 있는 에게 해 연안을 지칭했는데, 아시에(Asie)는 동쪽 연안 뒤의 지방을, 에우로페(Europe)는 서쪽 해안 지방을 가리켰다.(...) 세 번째 단어가 그 뒤에 추가되었는데, 그리스인들이 항해하던 바다의 남쪽 연안, 즉 오늘날 아프리카의 북부 해안 지대를 가리키는 리비에(Libie)가 그것이다. 로마인들도 이 단어들을 받아들여 여성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라틴어화해서 '아시아(Asia)','에우로파(Europa)','리비아(Libya)'라고 불렀다.(...)그리고 아프리카라는 단어는 현재의 튀니지에 해당하는 로마의 속주를 부르는 이름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서 대륙을 부르는 명칭은 방위의 명칭과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였을뿐더러 당시에는 그다지 쓰이지도 않는 말이었다. (...) 만약 당시에 포세아에 주민을 '아시아인'으로 분류한다면 아테네 사람을 '유럽인'으로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놀랄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p.55~57)
어쨌거나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명이 '탄생'했고, 이는 노아의 세 아들 이야기와 결부되면서 아프리카 인들의 노예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뒤 네 대륙 체제가 되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더욱 치열했을 뿐 대륙명과 경계에 대한 구분은 미미하다. 4대륙명이 '세계의 부분' 명칭을 포함해서 인종 및 언어를 구분하는 개념으로 '격상'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근대의 과학적 사고, 국민국가 체제였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분류하려 했다.(...) 지리학에서는 나라별 장소 분류를 넘어서 세계의 다양한 장소를 큰 범위로 정리할 수 있는 대범주가 필요했는데, 이것은 동물계나 식물계에서 퀴비에나 쥐쉬외의 문(門)에 해당한다. 이 같은 큰 지역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체계화해야 했다. 세계 각 부분들은 경험적이고 개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범주의 지위를 얻었으며 그 범주의 경계는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설정되어야 했다. 이처럼 경계를 확정하려는 노력이 유럽에서는 국민국가의 확립과 동시에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륙의 끝을 가리키기 위해 '경계(frontiere,국경)'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p.95)
지리상의 발견이 어느정도 되고, 과학적 사고가 발달하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육지마저도 여러 단계로 세분화하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른 대륙은 구분 과정에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앞서 말한 '유라시아의 서쪽 반도'인 유럽의 동쪽 경계를 정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요약하면, 러시아가 '유럽'으로 편입되려고 하는 민족주의적 움직임, 그리고 러시아의 지적 권위가 있는 백과전서파의 디드로와의 관계맺음이 영향을 주었다. 결국 유럽의 동쪽 경계는 TO지도에서의 돈 강에서 훨씬 동쪽으로 밀려, 현재와 같은 우랄 산맥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결국 대륙의 경계 설정은 합리적 사고를 가장한 여러 우연적 요인들의 결부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예전부터 러시아는 왜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만약 우랄 산맥이 더 동쪽에 있었다면 유럽 대륙의 경계는 어디로 설정되었을까? 더 동쪽으로 밀려난 '넓은 유럽'이었을지, 아니면 볼가 강 정도의 '좁은 유럽'으로 만족했을지...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19세기에 들어, 이제 유럽인들은 대륙명칭에 인종적 사고를 결부시키기 시작한다. 식민지배 시대가 종식되고 노예무역이 사라졌음에도 아직 은연중에 남아있는 인종차별의 기원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육지를 이렇게 구분하는 방식은 이미 18세기부터 그곳 거주민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세계를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한다는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사람들 또한 분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도 대륙이 실용적임이 판명되었다. 세계가 거의 섬 같은 여러 부분으로 되어있다는 생각에서-이 생각은 아메리카에 적용할 때는 거의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아프리카를 보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인류를 네 가지 '인종'으로 구분하게 되었다.(p.99)
대륙명은 각각의 피부색을 가진 인종과 결부된다. 유럽-백인, 아시아-황인, 아프리카-흑인, 아메리카-홍인 등이었고, 인종의 우열 판별 및 특성 규정, 게다가 제국주의 정당화 논리까지 이어지게 된다. 객관적 사실로만 여겨졌던 대륙명칭이, 이렇게 많은 역사적 과정과 연관되어 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탄생시킨 주체인 유럽은, 이를 전파하기 위해 수많은 지도 및 삽화에 대륙 및 인종구분 사고를 재현했다. 4가지 피부색을 가진 각 대륙을 상징하는 사람이 등장해서, 문명과 미개를 상징하는 복장과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지도 및 그림들은 미술관이나 미술책 등에서 봤음직한 '위대한 서양미술' 작품이었다. 물론 인종주의 정당화가 투영되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럽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기에 불편함을 참기 힘들었다. 아시아인은 그래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들에 비해 높은 위치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나?
다섯번째 대륙인 오세아니아가 탄생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기후대 구분 및 대척점사고가 미지의 남방대륙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왔다. 그래서 지리상의 발견 시대에 세계지도에는 마젤란 섬 아래에 거대한 대륙을 그려놓기도 했다. 실제 '마젤라니아' 대륙를 찾기 위한 여러 항해로 이어졌지만, 결국 남반구 중위도에 거대한 대륙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오세아니아라는 '바다 대륙'을 탄생시켰다. 육지가 연속된 것만이 대륙이 아니라, 세계의 부분으로서 대양주(大洋州)도 대륙명이 될 수 있다는 사고였다. 이를 비판하는 학자도 있었다. 키예 백과사전에서는 "오세아니아는(...)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세아니아 일부분은 다른 대륙에 속하기 때문에 오세아니아는 독자적으로 한 세계를 구성하지 못한다.(...)(p.170)" 라고 하면서 오세아니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더 힘이 강한 백과사전이 이겼고, 우리는 오세아니아를 대륙으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결국 세계지도에서 미지의 세계가 사라지고, 지도에서 '공백의 공포(p.175)' 가 종식된다.
어릴 때 부터 가졌던 그린란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계'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지리부도를 보면, 그린란드는 가장 큰 섬이고 오스트레일리아는 가장 작은 대륙으로 소개된다. 두 땅은 크기가 비슷해 보이는데, 왜 하나는 대륙이고 하나는 섬일까? 그것은 바로 미지의 남방 대륙에 대한 궁금증의 결과로 오세아니아가 탄생했고, 그 핵심의 땅덩이인 오스트레일리아가 대륙의 지위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땅이 그린란드보다 조금 작았다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났을 지도 모르겠다. 가령 그린란드를 대륙으로 인정해 달라고 한다던지...
결론에 앞서, 저자는 "그렇다면 대륙을 죽여야 하나?(p.221)" 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륙 구분이 그렇게 잘못된 사고라면, 이를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화에 걸맞은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볼만 하다. 하지만 이미 자연화된 구분을 해체하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륙구분에 대한 비판이) 아무런 결과도 없이 소리만 요란했는가? 만약 논쟁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을 비판적인 노력을 통해 상대화하고, 역사화하고, '탈자연화'하는 데 기여한다면, 그렇지 않다. 그것이 순전히 부정적인 소득이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소득이다. (p.230)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계를 하나의 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경제 지역과 완전히 중첩되지는 않더라도 아주 근사치인 구분이 될 수 있는, 지정학적으로 주요한 구분을 승인하는 것이 더욱 미래지향적인 태도일 것이다. 문제에 직면한 사회가 민주적으로 선택하기를 기대하자. 그리고 그렇게 지도의 윤곽을 그리는 위험을 감수하자.(p.233~235)
저자는 비판적 관점을 가지면서도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결론을 내린다. 대륙구분에 대해 비판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을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찰과정을 통해서 나아갈 방향을 점진적으로 고민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서의 논의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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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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