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rheb320
- 작성일
- 2013.10.20
커피, 설탕, 차의 세계사
- 글쓴이
- 이윤섭 저
필맥
많은 사람들은 잠시 쉬고 싶을 때나 누군가와 긴밀한 얘기를 하고 싶을 때 "커피(또는 차) 한잔 어때요?"라는 말을 건네곤 한다. 커피는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커피를 즐겨 마신다. 커피 안에 설탕을 넣어 먹기도 한다. 설탕은 커피 외에도 여러 과자, 초콜릿 등의 음식에 직간접적으로 들어가고, 달콤한 맛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게 한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등의 문화는 설탕이 없었다면 생겨나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커피 대신에 녹차, 홍차 등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일에 몰입하다가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여겨지고, 재충전이 끝나면 다시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이처럼 커피, 설탕, 차는 쌀, 밀 등의 식량작물과는 조금 다르다. 단지 살기 위해 주식으로 먹는 작물이 아니라, 개인의 기호에 따라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호 정도와 방식은 우리의 현재 문화 및 생활양식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커피, 설탕, 차를 먹는 그 자체가 문화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 기호작물의 중요성을 반영하여 현행 중, 고등학교 지리 교과에도 커피, 설탕, 차에 대한 내용이 주요 개념으로 실려 있다. 플랜테이션(plantation)이란 개념을 통해 커피, 차, 설탕의 재배지 분포를 설명한다. 플랜테이션이란 열대기후지역에서 유럽인들의 자본, 기술과 현지인 노동력이 결합되어 상품 작물을 재배하여 수출하는 농업 방식을 말한다. 열대기후지역의 특징에 잘 맞는 작물들이 재배되기 때문에, 플랜테이션은 열대기후에 속하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국가들에서 잘 나타난다고 교과 내용으로 나온다. 이러한 지리 교과의 설명은 현재 그 작물의 재배 분포를 파악하기에는 용이하다. 하지만 이러한 교과 내용은 마치 플랜테이션 작물이 '원래부터' 그곳에 재배되었다는 본질주의적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 커피는 사바나 기후에서 많이 재배되고 브라질, 콜롬비아 등이 최대 생산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왜 건조지역의 이슬람교 음료였는데 유럽인이 그것을 선택하여 대량 재배했는지, 왜 아프리카의 넓은 사바나 지대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힘들다. 플랜테이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사회적 관계가 구성되는 지난 몇 세기의 과정이 생략된 채, 단지 현재의 결과만 배우고 있는 것이다.

플랜테이션 분포 지도
출처 : http://cyhome.cyworld.com/?home_id=a1122220&postSeq=214350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플랜테이션 작물들은 적도와 가까운 열대기후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우리 일상과 매우 가까운 커피, 설탕, 차이지만, 재배되는 국가는 우리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어 관심을 두기란 쉽지 않다. 소비지와 생산지의 분리, 그리고 이러한 생산 관계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는 것은 현재의 공간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재를 바로 보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설탕, 커피, 차의 세 작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야생식물에서 사람들이 가치를 알고 작물화한 것은 언제, 어느 지역 사람들인지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과 물자의 흐름에 따라 설탕, 커피, 차는 언제, 어느 시기에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기 사작한다. 또한 각 작물은 어느 시기부터 여러 지역에 재배되게 되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 대량생산되어, 일반 대중들도 즐기는 대중문화가 되어간다. 이 책에서는 각 작물 별로 이러한 작물화, 세계 각지로의 전파, 음료 문화의 대중화 과정 등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연관된 역사적 사건이 나타나고, 다양한 지리적 패턴이 전개되어 간 것에 주목한다.

설탕은 우리가 달콤한 맛으로 상징되는 음식이지만, 노예제를 성립시키고 노예무역을 발생시킨 장본인이었다. 처음엔 이슬람권에서 재배되던 사탕수수가 유럽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십자군 전쟁이었다. 스페인, 포르투갈은 대서양의 섬에 아프리카 노예를 끌고 와 최초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만들고, 이 농업체제를 아메리카의 카리브 식민지, 브라질 해안에도 만든다. 설탕의 가치를 알게 된 영국, 프랑스도 카리브해 연안의 여러 섬을 점령하고 플랜테이션을 경영한다. 16~18세기에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노예가 유럽인들에 의해 대서양을 건너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착취를 당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아프리카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지리적인 조건으로 보나 역사적인 관계로 보나 아프리카 현지에서 아프리카 사람을 노예를 부리는 것이 더 타당했다. 그런데도 대서양을 횡단하는 노예무역이 생겨난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질병 때문이었다. 유럽인들은 각종 풍토병 때문에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지 못했다.(...)유럽인이 아프리카 내륙으로 침투한 것은 세균학이 발달한 19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었다.(p.42)
이러한 설탕은 플랜테이션 초기만 해도 재배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아, 비싼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상류층들만 즐기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설탕의 대량 재배가 산업혁명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산업혁명은 설탕의 재배 범위를 넓히고 가격을 낮추어야 할 동인을 만들어 낸다. 산업혁명으로 도시 노동자들이 대거 출현하고, 이들이 홍차에 설탕을 넣은 음료를 식사 대용으로 하게 된 것이다. 자본가들도 술에 취한 노동자보다 설탕을 탄 홍차를 마시면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동자를 좋아하게 되어, 설탕 재배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플랜테이션 자본가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예제도를 폐지하자는 움직임도 연관이 있다는 점도 설탕의 역사에서 중요한 점이었다. 산업화와 인권의식의 발달로 '자연스럽게' 노예 제도가 폐지되는 사회 발전이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노예 제도 폐지도 누군가의 사익과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했다. 어쨌거나 영국을 시작으로 19세기 다른 국가들도 노예 제도를 폐지하게 되었으니 잘 된 건가 싶다.

커피 역시 유럽 이전에 이슬람권에서 먼저 음료로 이용했다. 커피의 원산지는 동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 고원이고, 예멘의 산지에서 재배되어 모카 항에서 수출된 원두커피가 17세기까지 생산을 독점했었다. 유럽인들은 처음에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고 외면했지만, 커피의 맛과 각성 효과에 끌려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이슬람의 문화가 유럽의 상류층 문화가 되고, 이윽고 대량생산을 거쳐 가격이 떨어지면 대중문화로 변해가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자바 섬에서 처음 커피 플랜테이션을 경영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영국 등이 카리브 식민지에 커피를 재배한다. 커피는 유럽 남성 상류층들의 문화 그 자체였고, 이로 인해 여성들이 커피를 금지해 달라고까지 했다는 대목도 재미있었다.
한편 이때 프랑스의 카리브 식민지 중 하나인 '생 도밍그'가 아이티 공화국으로 독립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생 도밍그에서 재배된 커피가 프랑스인들의 까페 문화를 만들고, 이는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 혁명 사상은 다시 생 도밍그의 흑인 노예들에게 전해져, 투생 장군을 중심으로 아이티가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커피를 통한 나비효과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아메리카에서 미국 다음으로 생겨난 공화국이자 최초의 흑인 공화국 아이티는, 식민지 경제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미국 자본에 종속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번 종속된 경제 체제는 극복하기 힘든 것일까?

인도 아삼 지방의 차 플랜테이션 경관
출처 : 세계일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1/05/22/20110522001897.html
차 역시 중국의 문화로, 유럽인들은 중국의 도자기와 더불어 끽다 문화를 고급스럽게 여겨 상류층들의 문화로서 받아들인다. 차는 특히 영국과 관련이 깊은 음료이다. 처음 영국인들은 중국에서 차를 전량 수입했었다. 하지만 차 맛을 알게 되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계층에 차 수요가 증가하자, 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플랜테이션을 개발한다. 자신들의 식민지인 인도 아삼 지역의 차나무를 작물화하고, 실론 섬에도 차 플랜테이션을 만들어 '실론 티'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앞서 설탕과 함께 언급했듯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작물이 바로 이 홍차였다. 그런데 영국은 이 시기에 노예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에, 노동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저임금 계약노동자를 고용하게 된다. 인구압이 높은 중국, 인도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19세기 중국, 인도인들이 여러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이주하는 대규모 디아스포라(diaspora)가 나타나게 된다. 한편 한국인 노동자들이 하와이, 멕시코로 계약 이주했다는 것도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였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차와 관련있는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은 '보스턴 차 사건'과 '아편 전쟁'의 두 개나 된다. 차는 그 자체로 영국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비싼 관세를 무는 차를 바다에 버리는 것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차 확보에 대한 욕구는 중국에 아편을 밀수출하고 침략 명분을 조작하여, 결국 중국과의 전쟁을 통해 값싼 차를 수입할 권한을 확보하게 되는 데까지 이른다.
이처럼 커피, 설탕, 차는 근현대 세계를 바꾼 중요한 작물이었다. 각 작물이 근현대 세계의 역사와 지리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현재 세계를 설명하는 데도 중요하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상세한 재배 및 전파, 대중화 과정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이 책을 계기로 그 상세한 과정을 알게 되었다. 물론 각 작물들이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일으킨 절대적인 요인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단지 작물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작물의 재배가 거대 자본과 관련이 있고, 많은 사회적 관계를 설명해 주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 전개와 지리적 패턴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 설탕, 차를 즐기면서 각 작물과 관련한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현재 우리가 마시는 것은 어디서 언제부터 재배되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나의 입속으로 들어가는지 등의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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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