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

노부타
- 작성일
- 2008.12.3
플라이트
- 글쓴이
- 셔먼 알렉시 저
미래인
플라이트,라는 제목으로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아마 '플라이트'를 떠올리며 뭔가를 생각하려 했다면 겨우 '비행'을 끄집어내면서 '비행청소년의 이야기'에 맞는 제목이야? 하며 썰렁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엉뚱한 생각으로 '인디언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고 일컬어지는 '플라이트'를 끄집어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여드름'이라 불리는 나,는 혼혈 인디언이다. 인디언인 아버지는 여드름이 태어나자마자 도망을 가버렸고, 아일랜드인인 어머니는 여섯살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양부모의 집을 전전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글은 어쩌면 특별하다거나 독특하다고 할 수 없는 그냥 소설의 전형인가,싶은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드름의 성장에 대한 배경설명이 끝나고 바로 정신없이 그를 둘러싼 세계가 변하고, 관점이 변하고, 역사를 되새겨보면서 나의 모습까지 돌이켜보게 한다. 플라이트는 판타지 형식을 통하여 여드름의 주인공 시점을 바꾸기도 하면서 역사를 보여주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이면과 진실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하게 하고 있다. 또한 플라이트는 주인공 여드름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냉소를 품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함을 거침없이 표출해낸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을즈음에는 이 책의 저자인 셔먼 알렉시가 왜 그리 인기있는 작가인지 한치의 의심없는 확신과 믿음을 갖게 되어버린다.
여드름이 입양되는 가정에 대한 설명을 내뱉는 독설은 인정많고 타인을 돕기 좋아한다는 미국인들의 그 안에 담긴 또 다른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여드름의 플라이트 모험은 감옥에서 알게 된 저스티스에게 받은 총 한자루를 통해 시작된다. 그 모험은 판타지의 요소가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대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타인의 몸에 들어가 두개의 인격을 경험하는 것은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현실직시의 날카로움을 담고 있어 허황되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 펑 하고 점핑하듯 다른 시대로 옮겨가고, 전혀 상반된 인물의 몸속으로 들어가버리는 여드름의 이야기는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흥미롭고, 재미를 느끼며 듣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한순간, 그의 모험 이야기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의 진실과 냉소적인 풍자를 깨닫게 되면 그저 웃기만 하면서 읽어나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여드름의 모험이 끝나갈 즈음에 문득 깨닫게 된다. 예측을 불허하는 상상의 이야기가, 억압되고 차별받는 혼혈 고아 여드름의 반항적인 삶의 일상에서 벗어나 비상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시작은 '나를 여드름이라 불러라'이다. 그것은 그저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주인공 여드름은 자신의 진짜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시대와 역사를 넘나드는 판타지속에서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정체성 찾기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여드름은 끝까지 여드름으로 남아있을까? 아니면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찾았을까?
모험이 끝나고 되돌아온 자리에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냉소와 변하지 않는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있고 그러기에 그는 비상을 꿈꾼다. 어떻게?
그는 여드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이야기한다. 누구에게, 어떻게, 어떤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책을 읽지 않고는 여드름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는 그 의미를 온전히 느끼지 못할것이다. 그러니, 자, 이제 이 책을 집어들고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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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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