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온전히 여행자의 눈빛으로 세상을 떠돌고 싶다,고 그는 글을 맺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면 누구나 다 그런 소망을 갖고 있지 않을까?
운이 좋게도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그즈음 한참 해외여행 자유화의 물살을 타고 많은 이들이 설레는 맘으로 여행을 다니던 시기에 널럴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었고, 열심히 일한 언니가 벌어둔 돈으로 함께 여행이라는 걸 했었다.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대고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봤지만 역시 난생 처음 떠났던 배낭여행이라는 것은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며 좋아할만큼의 여행은 아니었다.
친절한 사람을 만나 목적지까지 편히 갈수도 있었던 반면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 정류장을 못찾아 헤매고 있는데, 우리의 영어 실력이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눈치껏 알 수 있었을텐데 우리보고 '정말 니들이 비행기를 타?'라는 표정으로 불어밖에 못하던 그 아줌마의 무시하던 눈빛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울컥, 기분이 확 나빠지게 하는 기억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도 그때의 여행이 좋았던 것은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무엇보다도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맘껏 미술관 구경을 할 수 있었고, 길을 찾아 헤매면서도 골목골목의 구수한 음식냄새가 좋았고, 걷다가 힘들면 경치 좋은 곳에 앉아서 언제까지라도 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화가 이우일의 추억을 담은 여행책인 좋은 여행을 읽다보면 나도 그랬지, 라거나 참말로 행복한 여행을 다녔구나 라는 마음이 든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뿐인데 몸은 아프고, 피곤해 죽겠는데 길을 잃어 숙소는 못찾겠고...그런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면 그 모든 걸 잊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여행이니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여행지의 풍경이라거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없고 그저 이우일 자신의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 읽힌다.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라거나 일상처럼 잠시 떠나는 여행의 느낌이나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편하고 편한 여행만 찾게 되어가는 것조차.
책을 읽으며 자꾸 동화되어버려 단숨에 읽어버린 것이 아쉬울지경이다. 서둘러 책장을 넘기느라 내 마음을 콕 찝어낸 글들을 지금 여기에 툭 던져넣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만큼은 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여행을 떠난다. 누구든 떠날 수 있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하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있다.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현실을 꿈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
내가 원하는 것도 언젠가는 온전히 여행자의 눈빛으로 세상을 떠돌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여행을 떠난다면 그 사람의 조건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그의 준비가 어떻게 되었든 상관없이 그저 그에게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래'라는 한마디와 진실로 그리 되기를 기원할 것이다. 그누군가의 좋은 여행에 대한 기원에는 언젠가 떠나게 될 나의 여행도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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