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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6.15
존 미어샤이머, 스티븐 월트 공저 <이스라엘 로비(Israel Lobby and U.S Diplomatic Policy)>, 2007, 김용환 번역, 형설라이프
유혈로 얼룩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늘 갖게 되는 의문이 한 가지 있다. 왜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가? 원조가 필요없는 경제 선진국 이스라엘에 미국은 매년 30억 달러가 넘는 원조를 보낸다. 양측에서 대규모의 희생자가 나와도 미국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로부터 자국을 방위할 권리가 있다"며 두둔한다. 이스라엘의 과잉 대응을 비판하는 UN 및 국제기구의 모든 시도에 반대하고 훼방을 놓는다. 미국의 이익 때문일까? 정서적 친밀감 때문일까? 이를 감안해도 미국은 너무나 일방적으로 이스라엘만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행보가 과연 미국에 도움이 되었을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인들에게 미국의 이미지는 이스라엘의 대변인으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에 의문을 표하는 정치인, 학자, 지식인들은 미국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반유태주의자라며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심하면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장되기도 한다. 유태인조차도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에 동정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배신자'로 매도당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선 학자들이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guru)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 대학교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2005년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이스라엘 로비>를 공동으로 저술했다. 친이스라엘 로비의 비난을 두려워한 몇몇 언론이 외면한 끝에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게재된 이 논문은 학계 주류의 권위자들이 미국 사회의 성역, 이스라엘을 과감히 비판했다는 사실과 함께 큰 관심과 논쟁을 일으켰다. 화제가 된 이 논문은 몇 차례의 심포지엄을 거쳐 2007년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 정책(Israel Lobby and U.S diplomatic policy)>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됐다.

저자 스티븐 월트(Stephen Walt, 1955~)와 존 미어셰이머(John Mearsheimer, 1947~)
미어셰이머와 월트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로비의 영향력과 그것이 미국에 미치는 악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들은 로비 자체를 악하고 부정한 수단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로비는 모든 국가와 단체가 이익 추구를 위해 행하는 합리적 방법일 뿐이다. 이스라엘의 로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미국 정부와 정치권, 언론의 발을 묶어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검토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 본인들에게도 해를 끼쳤다. 이스라엘은 강경 일변도로 치달았고, 미국이 로비 때문에 이를 방조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실패했고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헤즈볼라 등 과격단체의 인기와 세력만 키웠다.
두 저자는 파트 I과 파트 II로 나눠 무비판, 무조건 지지로 일관하는 미국-이스라엘 관계가 미국의 국익을 해친 과정과 영향을 분석한다. 우선 파트 I의 2장과 3장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할 전략적, 도덕적 가치가 과장됐다고 비판한다. 4장부터 6장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도록 유도하는 미국내 유태인 및 친유태계 로비 단체들을 훑어보고, 이들이 정책 결정과 대중 여론을 주도하는 전략과 전술을 파헤친다. 파트 II는 이스라엘 로비가 미국에 피해를 준 과정을 팔레스타인, 이라크, 시리아, 이란, 그리고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일어난 레바논 사태를 들어 분석한다.
냉전 중 미국은 이스라엘을 소련으로부터 중동에서 미국 국익을 보호할 전략적 기지로 인식했으나 실제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냉전 이후 이스라엘은 점점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라기보다 부채(debt)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지원해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에 입각한 주장도 오류가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을 대상으로 심각한 차별과 탄압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은 유태인들에게만 민주적이다.
이스라엘 로비 그룹은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 유태국가 안보문제연구소(ZINSA), 반명예훼손 연명(ADL)과 기독교 시온주의자들 등이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치권의 강경파들과 발을 맞춰 미국의 외교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해왔다. 팔레스타인과 대화, 타협을 주장하는 온건파 유태인 단체는 보유 자원이나 로비 능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랍인들의 로비는 없다고 봐도 좋을 수준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중요한 목표는 1. 테러리스트 소탕, 2.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 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유혈 충돌 방지였다. 로비에 발이 묶인 미국은 세 가지 목표에서 모두 실패하고 있다. 오랜 적국이었던 시리아와 이란은 체제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도 포기하고 알 카에다와 빈 라덴을 잡는데 협력할 용의가 있었다. 이스라엘과 로비의 압력을 받은 미국은 시리아와 이란의 대화 제의를 외면했고, 이-팔 평화 과정도 표류했다. 저자들은 이라크 전쟁 역시 석유 확보 목적이라는 기존의 유력한 정설 대신 이스라엘의 영향이 컸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친다. 이스라엘 정부와 로비 그룹이 미국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린 이라크 침공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미국이 재정적,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역에서 정착촌을 철수시키고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 지구에서 정착촌을 철수시켰다), 실질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용인했으면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아울러 이스라엘 로비에 대해 공개적인 담론의 풍토를 만들고, 이미 존재하는 온건한 세력을 강화시키거나 새로운 친이스라엘 그룹을 만드는 방법을 모색한다.


<이스라엘 로비>는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찬사와 비판을 비롯해 아주 다양하고 폭넓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많은 이들이 드디어 주류 학계에서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행동만 비판할 뿐 팔레스타인이 저지른 테러 행위에는 침묵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미어샤이머와 월트가 직접 비판한 로비의 주요 단체의 인물들은 이들을 반유태주의자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어셰이머와 월트 교수는 이스라엘의 생존권과 합법성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누차 천명하고 있다. 아울러 이스라엘이 정말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면 미국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국이고, 미국의 일방적 지원을 받을 만큼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하지도 않았음을 지적하며, 신중하고 절제된 톤으로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지원은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해가 됨을 경고한다.
한편으로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석유 확보가 아닌 이스라엘 정부의 영향이라는 주장은 또 다른 논쟁을 낳을 법하다.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적극 지지한 정황을 다루지만, 막상 그들이 왜 이라크 침공을 원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 일변도 대신 팔레스타인 평화에 어느 정도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이스라엘 로비에 설득당해 뜻을 굽힌 지도자로 평가한다. '악의 화신'처럼 묘사된 조지 부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포인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맡은 역할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기대하고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실망할 수 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국제정치는 지극히 불안정하며 모든 국가는 공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공격적 현실주의자이며, 스티븐 월트 역시 미어샤이머와 다소 다르지만 미국의 이익을 고려사항의 최우선으로 놓는 현실주의자이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자, 자유주의자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들의 관심은 미국의 이익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스라엘 로비>는 높은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들은 중도 혹은 중도 보수적인 미국인의 시각에 맞춰 설명한다. 보통의 미국 유태인도 미국이 왜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변화시키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서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납득하게끔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책이 출간된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그리고 미국의 방조에 낙담한 이들은 이 책에서 미국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상당수의 논리와 근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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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로비>에 대한 미국 학계와 언론계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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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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