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초보글쟁이
  1. 기본 카테고리

이미지










정의의 아이디어



아마르티아 센 저/이규원 역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1년 03월














정의의 아이디어



아마르티아 센 저/이규원 역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9년 03월





 



 



아마르티아 센, <정의의 아이디어>, 2021, 이규원 옮김, 지식의날개, 560페이지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천되는가? 우리는 언제나 정의(justice)를 갈구한다. 수많은 이들이 정의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에 열광했다. 정의는 사회과학, 인문학이 생긴 이래 언제나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현대의 정의론은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사회 구성원들이 계약을 통해 완전한 정의와 완벽한 제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계약론적 전통', '선험적 제도주의'다. 홉스에서 시작된 계약론적 전통은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임마누엘 칸트, 존 롤스를 거쳐 정치철학의 주류 이론으로 부상했다. 다른 한 갈래는 완전한 정의와 완벽한 제도보다는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선택지를 추구하는 '비교론적 전통', '실현 중심적 비교주의'이다. 비교론적 전통은 애덤 스미스, 니콜라 드 콩도르세,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원조 여권 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그리고 마르크스를 대표 인물로 들 수 있다.



 



<자유로서의 발전>, <정체성과 폭력> 등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 후생경제학의 권위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1933~). 그는 현실에는 다양한 도덕적 가치 판단 기준이 있으며 완전한 정의, 완벽한 제도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009년 출간한 <정의의 아이디어(The Idea of Justice)>는 정의에 관한 아마르티아 센의 이론을 집약한 책이다. 이 책에서 센은 계약론적 전통, 선험적 제도주의를 현대 정치철학의 주류 이론으로 정립한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정의론'을 비판한다. 그는 비교론적 전통에 입각해 실현 가능한 정의를 실천하고 명백하게 보이는 부정의(injustice)를 우선 제거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센은 정의와 공정함에 관한 기준, 이론은 절대적이거나 완전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한 개의 피리를 두고 다투는 세 아이의 일화를 든다. 피리를 불 수 있는 유일한 아이, 가난해서 장난감이 없는 아이, 이 피리를 직접 만든 아이, 누가 피리를 가져야 하는가? 피리를 불 수 있는 아이에게 피리를 주는 것은 공리주의에 기반한 선택이다. 가난한 아이에게 피리를 주는 것은 경제평등주의에 기반한 선택이다. 직접 만든 아이에게 피리를 주는 것은 자유지상주의에 의한 선택이다. 이렇듯 도덕적 사회적 선택, 가치 판단에는 다양한 기준과 원칙이 적용된다. 현실에서 정의와 도덕을 실천할 때는 확립된 이론보다 불완전한 아이디어가 더 자주 작용한다. 센이 이 책의 제목을 <~이론> 대신 <정의의 아이디어>로 선정한 이유도 이것이다.



 



이 책은 존 롤스의 정의론에 큰 비중을 두며 비평한다. 롤스는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이란 개념을 통해 자연상태의 개인들이 정의의 대원칙에 따라 기본적 자유, 사회적 지위, 소득과 부를 공정히 분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하는 정의의 대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모든 사람은 침해받을 수 없는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둘째,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에게 가장 많은 이득을 주고(차등 원칙), 모든 사람에게 직책과 직위를 평등하게 개방해야 한다(공정한 기회 균등 원칙). 구성원들이 자신의 조건, 기득권을 알 수 없는 '무지의 베일' 속에서 만장일치로 이 대원칙에 동의해야 가장 공정한 분배 정의를 기대할 수 있다. 롤스 이론의 의미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다.



 



아마르티아 센은 롤스에게 깊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며 롤스의 정의론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롤스로부터 직접 <정의론>에 관한 공개적 비평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엄청난 감격과 기쁨을 느꼈다고 털어놓으며 롤스에게 경외감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롤스는 세계 정치철학계에 아주 큰 영향을 남겼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능력을 입증해 인간이 이기심, 이해 타산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는 '합리적 선택 이론'을 반박했다. 자유와 권리, 평등 사이에 균형과 조화가 성립될 가능성을 논증했으며, 세계 각국이 소득 재분배, 사회복지 정책을 펼치는 데 큰 사상적, 지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센은 두 가지 측면에서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다. 우선 실현이 불가능하다. 롤스가 말하는 완전하고 선험적인 정의는 모두가 동의하는 만장일치의 단일 원칙을 요구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넘치는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 1935~)는 롤스의 정의론을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 정의론'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센이 제기하는 비평도 마이클 월저와 일맥상통한다. 또 다른 비판은 완전하고 선험적인 정의는 현실의 이해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정의와 괴리된다는 점이다. 센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정의를 "피카소와 달리의 그림 중 어떤 것이 더 훌륭한지 논쟁하는 데 난데없이 모나리자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상황"에 비유한다. 나름의 정당한 근거로 뒷받침되는 다양한 가치를 표방하는 현대인들에게 롤스가 말하는 공정함은 '닫힌 공평성'에 불과할 수 있다.



 



센은 그 대안으로 애덤 스미스가 언급한 '열린 공평성'을 제시한다. 열린 공평성이란 멀리 있는 외부자들의 시각까지 폭넓게 반영하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어떤 사안의 부당함을 논할 때는 그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까지 폭넓게 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해외 법원의 판결이나 정치적 결정을 비평할 수 있고,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안에 의견을 낼 수 있다.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이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논쟁에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외부자들이 목소리를 낸다면 오히려 더 냉철하고 정교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다. 센은 다양한 이들의 권리와 주장이 자유롭게 제시되는 열린 공평함 속에서 부정의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의는 이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실현된다.



 



센은 현실에서 부정의를 제거하고 실현 가능한 정의를 찾는 방식으로 공적 추론과 공개 토론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투표보다 공적 추론과 정밀 조사가 더 중요하다. 더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치 판단을 밝히고 공적 추론, 토론에 참여해야한다. 이런 형태의 민주주의 과정을 '숙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숙의 민주주의는 충분한 토론과 반대 토론을 거친 투표로 합리적 의사 결정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높인다. 2018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증설에 관해 수백명의 패널이 펼친 자유토론과 공론조사는 지금도 숙의 민주주의의 훌륭한 사례로 거론된다. 센은 여러 견해를 서로 비교 평가해 그 중 더 합당한 견해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공적 추론과 토론의 역사적 흔적은 서구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동, 동아시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롤스가 집대성한 계약론적 전통, 선험적 제도주의는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1938~2002),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 1940~2013), 데이비드 고티에(David Gauthier, 1932~) 등이 계승했다. 아마르티아 센은 선험적이고 완전한 정의, 제도는 오히려 현실의 부정의를 감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비교론적 접근, 실현 중심적 비교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로는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 1937~), 토마스 스캔런(Thomas Scanlon, 1940~) 등이 있다. 완전한 정의에 대한 회의, 관용(tolerance)과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강조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개인, 사회, 국가마다 각자 처한 상황과 현실이 있으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도덕적 상대주의와 센의 이론은 분명히 구별된다.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은 명백한 불법이 아니면 부정의에 대해 입장을 유보하지만, 센은 인권과 자유에 어긋나는 부정의를 제거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천명한다.



 



정의에 관한 아마르티아 센의 견해는 '사회선택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회선택이론'은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 사회 전체에 복지와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원배분 절차에 관한 이론이다. 사회선택이론에 따르면 행위자들은 특정 상황마다 이익을 극대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지를 찾는다. 아마르티아 센은 경제적 합리성에 자유와 권리, 정의 개념을 융합해 사회선택이론을 개척한 공로로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도 사회선택이론의 영향이 깊이 배어있다. 경제학자인 센은 경제학 뿐만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 철학에서도 마치 전공 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센이 제안하는 공적 추론과 토론은 숙의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새롭게 조명받는다. 숙의 민주주의는 기성 정치, 사회 엘리트들의 독단적 결정과 극한 대립, 포퓰리즘을 억제할 방어 장치로 기대를 모은다. 최근 십수 년간 정치 엘리트들과 대중의 갈등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치, 사회 엘리트들은 대중들이 처한 현실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이들에게 공공연히 경멸감을 드러냈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라는 영화 대사는 이런 선민 의식, 오만함을 상징하는 문구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일반 대중 역시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으며 엘리트를 향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이 틈을 타 포퓰리즘이 힘을 받았다. 그러나 숙의 민주주의는 사회의 첨예하고 중요한 이슈에서 선출된 의회를 배제함으로써 국가 정책이 국민 감정에 휘둘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숙의 민주주의는 아직 대의제와 직접 민주주의 사이에 놓인 미지의 영역이다. 숙의 민주주의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길은 역시 더 많은 이가 참여하고 더 수준 높아진 토론과 공적 추론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완전한 정의, 완벽한 제도를 꿈꾸고 찾는다. 정치철학의 수많은 대가들도 사회계약론 속에서 완전하고 선험적인 정의를 탐구해왔다. 하지만 역사 속 수많은 순간마다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꾼 결단과 행동은 여러 가치 중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고민, 명백한 부정의를 찾아 제거하려는 노력과 결의에서 나왔다. 노예제를 없앤 남북전쟁, 파시즘과 나치즘을 타도한 2차 세계대전, 세계 각국의 민주화운동, 반전평화운동, 수많은 글로벌 기구와 NGO는 대부분 완전하고 선험적인 정의보다 이해 관계와 가치관 충돌을 조정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성과였다. 아마르티아 센은 정의와 공정함에 관한 거창한 관념과 이념보다 실천적 아이디어에 주목하고 현장에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정의라고 우리에게 설파한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초보글쟁이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3.5.26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5.26
  2. 작성일
    2022.5.29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2.5.29
  3. 작성일
    2022.5.19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2.5.19

사락 인기글

  1. 별명
    사락공식공식계정
    작성일
    2025.6.17
    좋아요
    댓글
    6
    작성일
    2025.6.1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17
    좋아요
    댓글
    4
    작성일
    2025.6.1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사락공식공식계정
    작성일
    10시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10시간 전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