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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자본주의



윌 허튼 공편/박찬욱 등역

생각의나무 | 2000년 11월














On the Edge



Giddens, Anthony (EDT)/ Hutton, Will (EDT)

Jonathan Cape | 2000년 03월





 



 



앤서니 기든스, 윌 허튼 외, <기로에 선 자본주의>, 2000, 박찬욱, 최형익, 형선호, 홍윤기 옮김, 생각의나무, 434페이지



 



시대를 불문하고 당대의 시대상을 진단하고 진로를 전망하는 지식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시대의 핵심적 변화를 포착하고 그로 인한 결과와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은 역사의 흐름에서 언제나 큰 역할을 했다. 1990년대는 우리에겐 IMF로 기억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반면 세계인들은 냉전 종식과 9.11 테러 사이의 평화롭고 좋은 시간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 각국은 자본주의를 전 지구를 아우르는 보편적 체제로 받아들이고 세계화, 정보화로부터 얻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에 환호했다. 그러나 몇몇 지식인들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그늘 속에서 악화되는 양극화와 불평등, 문화적 획일화, 인간 소외 현상을 포착했다. <기로에 선 자본주의(On The Edge: Living with Global Capitalism)>(2000)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대세로 거론되던 1999~2000년경 서구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전문가들이 모여 세계화 현상에 관해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함께 살아가기(Living with Global Capitalism)'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이 출간된 2000년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최전성기였다. 소련 해체, 냉전 종식을 맞아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 지 8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9.11 테러가 있기 1년 전이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에 있었으며 이 힘과 역동성은 '세계화'라는 현상으로 불렸다. 세계화, 정보자본주의, 디지털자본주의. 지식경제는 모든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키워드가 됐다.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여성과 성 소수자,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의 인권과 평등이, 경제 분야에서는 자유무역, 작은 정부, 감세를 슬로건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대세로 떠올랐다. 은행과 증권업의 경계가 사라진 금융시장은 정보화, 전산화에 힘입어 파생상품을 쏟아내며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자본은 공산주의 몰락 이후 공세를 가속화했다.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와 민주사회주의도 신자유주의의 대공세에 타격을 받았다. 많은 지식인들이 전세계적 대세가 된 신자유주의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지 고민했다. <기로에 선 자본주의>는 이들 지식인들이 모여 고민하고 논의한 장이다. <제3의 길>, <현대 사회학>,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대표적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와 '가디언', '옵서버'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 윌 허튼(Will Hutton, 1950~)이 대표 편집자로 이 책을 기획했다. 여기에 마누엘 카스텔스, 래리 미쉘, 제프 폭스, 로버트 커트너, 반디나 시바, 알리 혹실드, 울리히 벡, 리처드 세넷, 폴리 토인비 같은 진보적 지식인, 언론인들이 기고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낸 폴 볼커, 세계적 펀드매니저 조지 소로스 등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인물들도 동참했다.





앤서니 기든스와 윌 허튼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양상을 두고 논쟁을 펼친다. 1990년대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범세계적 통신혁명, 금융시장으로 대표되는 '무게 없는 경제', 공산주의 몰락, 여권 신장과 양성 평등 증대로 요약할 수 있었다. 기든스는 이런 변화가 과거와 완전히 다른 불연속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라고 역설한다. 반면 허튼은 정보기술과 지식경제는 21세기 초중반에도 볼수 있었던 양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도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서구 중도좌파 세력에 신자유주의 요소를 일부 수용한 '제3의 길'을 권유했던 기든스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그 힘과 장점을 강조한다. 허튼은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식 자본주의에 더 공감하고 노동자와 소비자가 참여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 관심을 갖는다.





두 사람은 대담 내내 첨예한 논쟁을 펼친다. 기든스는 허튼을 가리켜 구좌파(old left, 사회문화적 자유보다 경제적 재분배, 평등에 관심을 갖는 좌파)라며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지적한다. 허튼은 기든스가 정보기술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했으며 신자유주의에 너무 타협적인 자세를 보인다고 응수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 동시에 세계화 시대에 평등과 연대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이들은 시각과 생각은 다르지만 서로 같은 편에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논쟁에서 주류 진보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해 가진 견해를 생생히 알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는 혹독한 외환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폴 볼커(Paul Volcker, 1927~2019)는 1978~1987년 미국 연준 의장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긴축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경제위기에 빠진 아시아 국가에 더 많은 투명성과 건전한 금융 체계를 요구한다. 반면 세계적 펀드매니저이며 진보 자유주의적 성향을 띄는 대부호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1930~)는 아시아 국가의 책임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개혁을 주문한다. 소로스는 금융시장이 자동적으로 평형을 이룬다는 이론을 반박하며, 주변부 국가의 이자율이 중심부 국가보다 훨씬 더 높아 국제 자본이 들어왔다 나가는 사태가 훨씬 빈번히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IMF 및 글로벌 기구가 해야할 일은 이들 주변 국가를 좀 더 배려하고 보호하는 조치다. 두 사람 모두 아시아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은 개별 국가보다 국제 금융 체계의 취약성에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스페인 출신의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 1940~)는 세계화된 전자 거래 네트워크와 금융시장의 팽창에 관해 이야기한다. 카스텔스는 네트워크 경제와 정보자본주의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때문에 금융시장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자동인형(automation)'으로 변했다고 경고한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설립자 겸 회장 제프 폭스(Jeff Faux)와 부회장 래리 미쉘(Larry Mishel)은 상품, 서비스, 금융의 세계화가 소득 불평등에 끼친 악영향을 고찰한다. 이들은 빈곤국, 후진국에는 시장 개방과 가혹한 국제 경쟁 체제 편입보다 여전히 케인지언 발전 전략이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특히 국제 무역, 투자 협정에서 기본적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로버트 커트너(Robert Kuttner)는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에 맞서 큰 정부의 역할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주문한다.





환경운동가, 반세계화 운동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1952~)는 세계적 대기업 몬샌토가 주도하는 유전자 조작 식품(GMO 식품)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녀는 제1세계가 국제적 게임의 규칙을 유리하게 설정해 제3세계를 착취한다고 호소한다. 알리 혹실드(Arlie Hochschild)는 제1세계 부모들이 자녀 양육을 위해 제3세계에서 온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그 시터들은 본국에 있는 자기 가족들을 위해 다른 가정부를 고용하는 고용의 연쇄 사슬을 이야기한다. 이 아이 보살핌 사슬은 세계화로 인적 이동이 활성화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과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1943~)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속에서 불안정해진 개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1970년대부터 사회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는 개인주의가 유행했다. 그러나 자유로워진 개인은 오히려 불안정한 세계에 홀로 남겨져 다시 새로운 환경에 종속되고 있다. 결국 이를 타개하는 방법은 개인들이 주체적으로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길이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 1946~)은 세계화 덕분에 더 많은 대중이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지역적 특성이 널리 전파되는 순기능, 그리고 루퍼트 머독 등 극소수 언론재벌이 언론 시장의 지분 대다수를 보유해 미디어를 왜곡하는 역기능을 경고한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론자, 수용론자,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를 직접 주도한 인물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저자들이 참여했다. 저자들은 대체로 세계화, 정보화와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인 윌 허튼과 카스텔스, 커트너, 제프 폭스, 래리 미쉘은 신자유주의적 금융 체제를 우려하고 강력한 규제를 요청한다. 앤서니 기든스와 볼커, 소로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져오는 비효율성 해소, 역동적인 경제를 긍정적으로 본다. 환경과 유전자 조작, 세계화 시대의 정체성과 문화적 변화를 다룬 시바와 혹실드, 울리히 벡, 세넷도 우리에게 더 넓은 지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모든 저자들에게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관한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다만 편집자들도 인정하듯 외교와 국제 안보에 관한 논의가 생략된 점은 아쉽다. 이 책이 출간되고 1년 후 9.11 테러가 발생하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이 잇따르면서 세계는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평화의 시대 대신 종교와 문명 충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끊임이 없고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으로 유럽에 난민이 대거 유입됐으며 극우 포퓰리즘이 발흥했다.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더 이상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낙관했던 이들의 희망은 깨져버렸다.





냉전 종식 이후 20년간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는 도전 받지 않는 지배적 이념으로 군림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2008~2010 월가 금융위기와 유럽 경제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EU, IMF, ECB(유럽중앙은행)와 국제 자본으로부터 가혹한 긴축을 강요당한 유럽 국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커다란 반발이 일어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세계 각국은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고 큰 정부와 더 많은 복지, 분배 정책을 본격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기로에 선 자본주의>는 대전환의 시대에 지식인들이 남긴 깊은 지적 성찰과 고민의 흔적이다. 책이 출간된 지 20년. 세계는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낳은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큰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있다.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또 다른 갈림길에 봉착한 지금 이들이 보여준 지혜와 유연함이 더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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