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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포크너, <좌파 세계사>, 2016, 이윤정 옮김, 엑스오북스, 776페이지





<좌파 세계사(A Marxist History of the World)>(2013)는 <민중의 세계사>와 함께 방대한 세계 역사를 혁명적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의 눈으로 조명한 책이다. 저자 닐 포크너는 기술 발전, 지배계급 간의 충돌, 그리고 계급 간의 충돌, 세 가지 원동력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며, 역사 속 행위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말한다. 농업혁명과 상업자본주의, 종교개혁과 부르주아혁명,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세계대전과 냉전, 모두 역사를 추동하는 원동력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 역사적 상황마다 역사가 순환하거나 화살처럼 전진했다. 지배자들은 왕, 귀족, 부르주아로 분화하며 피지배자들을 착취했고, 민중은 시대가 흐르며 계급 의식을 갖고 더 크게 저항했다. 저자는 그 원동력, 혁명과 진보의 순간을 조명하며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 닐 포크너(Neil Faulkner, 1958~2022)는 영국 브리스톨대학교 연구원(research fellow)으로 재직하며 <고대 올림픽에 대한 안내서>, <로마: 독수리의 제국> 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고고학자, 역사학자였다. 트로츠키주의 정당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Socialist Workers Party)의 오랜 당원이었던 포크너는 평생 혁명적 사회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로 활동하며 많은 책과 글을 남겼다. 그는 반자본주의 좌파 그룹 '카운터파이어'(Counterfire) 웹사이트에 매주 연재하던 세계 역사 이야기를 편집해 2013년 'A Marxist History of the World'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인류의 기원부터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방대한 역사를 다룬다. 한국에는 2016년 <좌파 세계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20세기 주류 역사학은 로마 제국과 영국 제국을 서구 문명의 원형으로 추앙했다. 주류 역사학은 세계 역사가 기독교 문명과 고전경제학 원리에 따라 안정된 경로로 발전했다고 본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역사 속에 잠시 나타난 막간극에 불과했다. 반대로 1970년대부터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에는 어떤 구조나 유형도, 의미도 찾을 수 없다고 간주했다. 닐 포크너는 이들과 다른 관점으로 역사를 본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긴 하지만 자유의지로, 또는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상황 속에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한다. 과거가 바탕이 되어 현재가 만들어지며, 현재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기술 발전과 경제 덕분에 세계는 정해진 경로로 향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사결정론에도 반대한다. 그는 문화와 사회적 요소가 개입해 역사는 전진과 퇴보를 거듭한다고 말한다.







포크너가 말한 역사의 세 가지 동력을 살펴보자. 첫째는 기술의 발전이다. 인간이 지식을 축적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제적 자원을 더 많이 저장, 활용하는 과정이다. 두번째는 부와 권력을 놓고 다투는 지배자들의 경쟁이다. 수많은 왕조와 제국의 지배계급은 서로 전쟁과 내전을 벌였다. 포크너는 제1,2차 세계대전도 민족주의와 자본주의를 내세운 지배자들이 주도한 갈등으로 파악한다. 세번째 동력은 계급 간 갈등이다. 지배계급은 고대 세계부터 군비 경쟁을 위해 농민, 노예 등 피지배자를 가혹하게 착취했다. 민중 역시 14세기 와트 타일러, 16세기 독일 농민 반란, 17세기 영국 수평파 등 역사의 순간마다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노동자, 농민, 빈민은 1848년 2월 혁명과 파리 코뮌을 거치며 프롤레타리아로서 계급 의식을 갖게 됐다. 이 때부터 계급 간 갈등이 역사를 움직이는 주된 원동력이 됐다. 세 가지 엔진은 동시에 작용하며 때로는 같은 방향 혹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엔진들이 연출하는 역사적 상황마다 제각각의 경제, 사회, 정치적 갈등, 문화적 차이가 어우러져있다.







한편 역사적 국면은 '순환'과 '화살', 두 가지 속성을 갖는다. 순환이 지배적일 때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은 별다른 변화 없이 기존 체제가 그대로 반복된다. 화살이 지배적일 때는 그 변화는 질적이며 모든 것을 바꾼다. 저자는 아시아, 특히 중국은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통일 왕조를 유지했고 이렇다 할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반면 기술 발전, 지배계급 내부 갈등, 계급 간 갈등이 왕성하게 일어난 유럽과 미국은 대부분의 역사적 국면에서 '화살'이 우세했다.







저자 닐 포크너(Neil Faulkner, 1958~2022)





중세 이후 서구 역사의 핵심은 자본주의에 있다. 자본주의는 경쟁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계획이나 목적 없이 끝없이 부를 늘리는 속성을 가졌다. 이는 발전 단계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자본의 본질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를 상업자본주의(1450~1800년경), 산업자본주의(1800~1875), 제국자본주의(1875~1935년경), 국가자본주의(1935~75년경), 신자유주의(1975년 이후) 등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제국자본주의로, 그리고 국가자본주의로 진행하면서 지배계급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잉여를 축적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도 수많은 패배와 승리를 경험하며 그 힘과 조직력을 키웠다.







저자는 스스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를 천명한다. 자본주의 극복은 그에겐 필생의 과제였다. 특히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노동조합과 기업, 정부 간 타협마저 내다버린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세계화, 시장화와 민영화, 금융화, 불안정성, 강압적 정부로 볼 수 있다. 결국 금융화와 불안정성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고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는 원인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할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결과물이다. 자본주의 정부와 기업은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긴축정책으로 대응하지만 이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전세계에서 저항과 투쟁에 합류하는 민중이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신자유주의의 명분과 설득력이 사라진 이 때, 더 많은 이들이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는 듯하다.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책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평이하다.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그 내용을 큰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다. 고고학자가 본업인 저자는 구석기, 신석기 시대와 고대에 관해 풍부한 설명을 덧붙인다. 저자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가 유라시아에 비해 느리게 발전한 원인을 지리에서 찾는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다양한 기후대에 걸쳐 있어 이동이 힘들었고 농부들이 적응하기 어려웠다. 토착 질병에 강하고 쟁기를 끌만한 동물도 없었다. 제러미 다이아몬드(Jeremy Diamond, 1937~)의 <총, 균, 쇠>와 매우 유사한 내용이다. 닐 포크너는 다이아몬드 교수가 주장한 지리 결정론을 일부 수용한다.







저자는 "러시아 혼자만으로는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세계 각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혁명을 일으켜 연대해야 한다"며 레닌과 트로츠키가 외친 영구혁명론을 옹호한다. 트로츠키주의자인 저자는 이오시프 스탈린을 철저히 비판한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는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이 혹은 더 잔인하고 야만적인 체제였다. 스탈린은 "소련이 중심이 되어 우선 공산주의 국가를 확립해야 한다"는 일국사회주의론을 외치며 트로츠키와 영구혁명론자들을 잔인하게 숙청했다. 소련을 산업국가로 키운다는 목적으로 중공업 우선 정책과 농업집단화를 강행해 엄청난 희생을 유발했다.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 피의 숙청, 동유럽에서의 독재와 인권 탄압은 모두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의 산물이다. 닐 포크너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동지였던 크리스 하먼과 마찬가지로 스탈린 치하의 소련, 동유럽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대목에서 오류를 노출한다. 스탈린이 폭압적이고 야만적으로 일국사회주의를 강요했다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트로츠키가 주장한 세계혁명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었는가? 영국, 프랑스 등 자본주의 세계는 소련을 극도로 경계했고 이를 막기 위해 파시즘, 나치즘까지 용인할 정도였다. 만일 소련이 세계혁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면, 이들 자본주의 세계가 훨씬 노골적으로 소련을 파멸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더 많은 병력을 보내 적백내전에 개입했을 것이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도 미국과 영국은 가만히 앉아 소련이 정복당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폭력과 테러로부터 자유로운가?





게다가 저자는 일관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중요한 역사적 상황마다 자본주의자들과 타협해 혁명을 무마했고 민중을 저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1930년대 독일 공산당과 스페인 내전 시기의 스페인 공산당에겐 반대로 종파주의에 빠져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자들과 연대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런 모순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물론 종파주의가 나치즘, 파시즘 집권을 막지 못했음은 옳은 지적이다. 그렇다면 1935년 이후 코민테른이 반파시즘을 내세워 사민주의, 자유주의 세력과도 연대하도록 한 방침은 왜 비판하는가?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과 서유럽의 마셜 플랜, 케인지언 정책을 스탈린주의와 함께 국가자본주의라는 범주로 함께 묶는 것 역시 타당한지 의문이다.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스탈린주의를 향한 비판 의식은 옳지만 그 방식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다.





이 책의 원 제목 'A Marxist History of the World'은 필자가 리뷰한 전작 <민중의 세계사(A People's History of the World)>를 떠올리게 한다. <민중의 세계사>를 남긴 크리스 하먼과 마찬가지로 닐 포크너도 평생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투쟁에 앞장섰다. 그들은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는 스탈린주의의 실패이지, 사회주의 이상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신자유주의에서 명백한 한계를 확인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대안과 이데올로기를 요구한다. 아직 닐 포크너와 크리스 하먼이 꿈꾸는 반자본주의, 사회주의가 그 유력한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사람이든 <민중의 세계사>와 <좌파 세계사>에서 얻을 수 있는 역사적 통찰력에는 주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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