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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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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무지를 무관심탓으로 돌리고 탱자탱자한 세월이 벌써 백 년이다. 난 신문도 보지 않고 티브이 뉴스와도 친하지 않다. 부스스한 머리로 아침 뉴스를 꼬박 챙기던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손석희 아나운서의 지적인 갸름함과 정확한 발음에 넋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무지렁이의 눈에서도 정치적 눈물을 쏙 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대통령 탄핵 어쩌구 하는 사회 선생님 말씀은 분명 먼 나라의 이야기 같았지만, 그것이 선생님의 붉은 입술을 통해 발화되는 순간 온몸이 오소소 떨리며 이가 시큰거리고 짧고 굵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익 휩쓸고 지나던 경험은 너무도 생생하다.

그런데 아직 천 년도 채우지 못한 내 삶이 그런 독설과 맞부딪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이어 무슨 때만 되면 발휘되는 대한국민의 응집력이 촛불로 승화되어 나타났다. 그들은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전경들과 몸싸움 한판을 벌이지도 않았으며 물폭탄을 만들어 폭우를 흉내내지도 않았다. 다만 손에 쥔 촛불이 꺼질새라 한숨마저 죽인 채 고요히 기도했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혈기방자한 국민성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무단횡단과 쓰레기 투척과 폐수 방류 등을 일삼는 그들이, 모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보도는 참으로 난해했다. 정말 슬프도록 아름다운 유머로구나, 생각할 수밖에.

그때의 슬픈 유머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 바로 마크 트웨인의 《참혹한 슬픔》이다. 그의 슬픈 유머는 첫 번째 챕터인 <불가사의한 족속>에서부터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브와 아담의 일기로 표현되는 <불가사의한 족속>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오만한 편견으로 가득찼는가 회의하게 한다. 아담은 끊임없이 만물에 이름을 붙이려는 이브를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이라 조롱하는 반면 이브는 아담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을뿐더러 어리석기까지하므로 자신이 만물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아담을 구원하는 행위이자 아담의 결점을 보완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는데 있어 아담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세심함까지 보임으로해서 아담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감탄하는 것이라 자신한다. 또 불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하찮으며 공허한 것이라는 이브의 말을 통해 불의 발견으로 시작된 인간의 부조리한 문명을 살짝 비꼬는 것도 잊지 않는다.

<타락천사>에 등장하는 헤스터와 한나 이모는 ‘절대적인 진실, 굽힘 없는 진실, 타협 없는 진실’을 신봉한다. 그들에게 거짓말은 죄악이다.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런 그들이 돌림병에 걸린 질녀를 위해 거짓말과 타협하고 만다. ‘해가 없는 거짓말은 죄가 아니라 무의식적 양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이 도덕이라는 명분하에 자아를 유린하고 타인에게 자행하는 상처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 그 깨달음의 경로에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깜찍하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잘근거리며 웃다 보면 정작 작가가 외쳐대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수장시킬 가능성이 크다.

표제이기도 한 <참혹한 슬픔>은 그러나 유쾌하지 않다. 참혹하다는 말 외엔 그 어떤 낱말로도 슬픔을 대변할 수 없다. 도입부에서 마크 트웨인은 화자인 프레즈비티리언 개의 엄마인 콜리의, 뜻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서 멋지고 거창한 낱말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습관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지적 허영심에 일침을 놓는다. 그러고 이어지는, 자기 만족을 위해 인간이 행하는 잔혹함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떨구게 만든다. 결국, 인간적이라는 것은 그들의 폭력까지 수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으로만 행동하는 짐승이 보다 더 인간적인 것일까 하는 문제.

<건전한 오락> 당신이 지금 로또에 당첨되어 50억을 거머쥘 수 있다면 당신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난 일단 해변가에 창 너른 집을 짓고, 지금의 내 방 만큼 커다란 책상과 소리 죽여주는 진공관 앰프가 포함된 오디오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그 끝을 만질 수 있는 책방을 꾸미겠다. 또 뚜껑 열리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한 대 사서 스카프를 휘날리며 드라이브를 할 것이고 황금종을 울리며 “오늘은 내가 쏜다” 거창하게 외쳐보기도 할 것이다(어? 이건 어디선가 본 장면인데). 또 유망한 재테크 사업가를 두 명쯤 거느리며 50억이 500억이 되는 그날을 기리며 축배를 들고 출판사 몇 개를 사들여 그들이 수익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이 출피構?싶은 책들을(여기엔 내 입심이 9할 정도 개입할 것이지만) 출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멋진 일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인생역전의 기회가 떨어질 확률은 마이너스 퍼센트니 오늘도 눈물 머금고 땅이나 팔 수밖에 더 있으랴. 이러한 인간의 허영과 사치와 몽상과 좌절을 그린 것이 <건전한 오락>이다.

이후의 몇 개의 소품들에서도 유머 넘치는 문장들을 발견하고 손뼉 쳐대며 와와할 수는 있지만 쏙 빠져들기란 요원하다. 그럼에도 사지를 늘어뜨리고 추락을 향해 가는, 표지의 검은 그림자를 덮으며 씨익 미소 지을 수 있으니 당신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글에서 몇 구절 발췌한다.

- 마크 트웨인의 글에는 유머(humor)가 담겨 있다고 했다. 어원적으로 “유머”는 “젖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물론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젖는다. 그것은 눈물이다. 웃음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다. 그러나 트웨인은 그 눈물을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슬픔의 눈물로 보았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착각과 거짓 속에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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