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외

로와
- 작성일
- 2020.5.17
[eBook] [대여] 장르의 장르
- 글쓴이
- 김초엽 외 6명
안전가옥
안전가옥에서 날아오는 정기 메일을 자세히 읽지 않는다. 적당히 훑어보고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왜였을까. 갑자기 안전가옥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장편소설가 되기를 읽은 직후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소설가와 끊임없이 교류하기를 권한 그 책이 내게 다른 마음을 불러온 것이리라
장르의 장르는 총 7명의 장르 소설 작가들과의 대담집이다. 읽기 쉽고 흥미롭다.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어반판타지에서 호러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최근이라고 말하기엔 제법 시간이 흐른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TRPG가 유행하기 시작한 후로 주변에 TRPG를 즐기는 친구들이 제법 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고 많이들 즐기는 게임은 러브크래프트의 저작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크툴루 신화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CoC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TRPG를 즐기는 친구가 이 CoC를 굉장히 사랑하는데, 덕분에 TRPG를 즐기는 층에서 호러를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를 엿볼 기회가 제법 있었다.
여럿이 함께 즐기는 게임의 메인으로 뜨기에는 한국에서 호러라는 장르가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은 탓일까? CoC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서 호러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제는 이들이 즐기지 않는 ‘호러’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는 온갖 징그러운 것들을 나열해놓고 호러라고 하고, 누군가는 귀신과도 로맨스를 그린다. 그것들을 딱 잘라 호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즐기는 이야기는 분명 호러에 속하는 영역이 있다. 내가 어색해하는 이유는 그것들의 목적이 호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어반판타지로 시작해 호러 장르만 두 번을 언급한 구성은 다분히 노렸다는 느낌이 든다. 덕분에 나는 어째서 호러가 아니라고 딱 잘라 분류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보며 이게 호러인가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됐다.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호러는 좀 더 놀랍고 두근거리는 것이었던 게 아닐까. 호러 애호가는 아니지만, 호러에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의 두근거림’이 담겨있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해서 실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이어진 좀비재난물, 생명공학SF, 타임리프, 영 어덜트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는 좀비물이나 시간여행물이 그렇게 다양한 장르로 나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그 두 장르를 크게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도 있겠지만, 나눌 생각 자체를 못 했다. 생명공학SF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직접 인간을 조작하는 편리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웃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소설을 즐기는 입장에서 영 어덜트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장르 클리셰와 그 안에 담겨있는 함의에 대해 작가들의 입으로 직접 그 의미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장르 문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세간에서는 곧잘 장르 문학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장르 클리셰라는 건 국지적인 범위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같은 장르를 즐겨온 사람들이 공유해온 정신과 생활상이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클리셰를 뒤집거나 비트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각 작가들의 장르에 대한 애정과 각 장르가 담고 있는 정신에서 느끼는 긍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왜 진작 보지 않았을까. 조만간 안전가옥에 가봐야겠다.
장르의 장르는 총 7명의 장르 소설 작가들과의 대담집이다. 읽기 쉽고 흥미롭다.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어반판타지에서 호러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최근이라고 말하기엔 제법 시간이 흐른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TRPG가 유행하기 시작한 후로 주변에 TRPG를 즐기는 친구들이 제법 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고 많이들 즐기는 게임은 러브크래프트의 저작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크툴루 신화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CoC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TRPG를 즐기는 친구가 이 CoC를 굉장히 사랑하는데, 덕분에 TRPG를 즐기는 층에서 호러를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를 엿볼 기회가 제법 있었다.
여럿이 함께 즐기는 게임의 메인으로 뜨기에는 한국에서 호러라는 장르가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은 탓일까? CoC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서 호러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제는 이들이 즐기지 않는 ‘호러’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는 온갖 징그러운 것들을 나열해놓고 호러라고 하고, 누군가는 귀신과도 로맨스를 그린다. 그것들을 딱 잘라 호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즐기는 이야기는 분명 호러에 속하는 영역이 있다. 내가 어색해하는 이유는 그것들의 목적이 호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어반판타지로 시작해 호러 장르만 두 번을 언급한 구성은 다분히 노렸다는 느낌이 든다. 덕분에 나는 어째서 호러가 아니라고 딱 잘라 분류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보며 이게 호러인가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됐다.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호러는 좀 더 놀랍고 두근거리는 것이었던 게 아닐까. 호러 애호가는 아니지만, 호러에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의 두근거림’이 담겨있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해서 실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이어진 좀비재난물, 생명공학SF, 타임리프, 영 어덜트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는 좀비물이나 시간여행물이 그렇게 다양한 장르로 나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그 두 장르를 크게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도 있겠지만, 나눌 생각 자체를 못 했다. 생명공학SF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직접 인간을 조작하는 편리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웃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소설을 즐기는 입장에서 영 어덜트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장르 클리셰와 그 안에 담겨있는 함의에 대해 작가들의 입으로 직접 그 의미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장르 문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세간에서는 곧잘 장르 문학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장르 클리셰라는 건 국지적인 범위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같은 장르를 즐겨온 사람들이 공유해온 정신과 생활상이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클리셰를 뒤집거나 비트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각 작가들의 장르에 대한 애정과 각 장르가 담고 있는 정신에서 느끼는 긍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왜 진작 보지 않았을까. 조만간 안전가옥에 가봐야겠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