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이야기

그림자장수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4.2.14
그러나 실제 신라에서 성이 쓰이는 것은 법흥왕 이후의 일로 위 기록은 하위 귀족을 이룬 집단들이 자신의 경주 편입 역사가 길고 성을 쓸만큼 높은 계급임을 남기기 위해 후대에 첨삭 기록으로 만든 듯하다.
거기다 삼국사기 등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보면 6두품 신분들은 한 번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차츰 나타났다.
1. 삼국시대 말기 : 손씨, 설씨
2. 통일신라 초, 중기 : 이씨, 배씨, 정씨
3. 통일신라 중, 말기 : 최씨
또한 일반적으로 진골 성으로 알려지고 있는 김씨 중에서도 6두품 신분들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본래 6두품 김씨로 출발한 집단과 진골 김씨의 서자로 6두품이 된 집단으로 구분된다. 물론 진골 성으로 알려진 박씨, 가야계 김씨 등도 6두품 신분으로 밀려난 경우가 보여진다.
즉 6두품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가 있었으며 더 나아가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6두품 성은 중국 성씨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듯 하다.
우선 설씨의 경우 중국의 북위 효문제가 한화정책을 펼치면서 선비족에게 성을 부여할 때 고, 원, 설 등의 성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삼국통일 시기 활약한 당나라 장수 이름으로도 설인귀가 있다. 설인귀는 대단한 명성을 얻어 한 때 황해도에는 그를 모시는 사당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만큼 설이라는 성에 대한 관심도 컸을 것이다.
최씨, 이씨, 정씨의 경우는 당 태종 시절 만든 씨족지에 등장하는 관동 4성 명문가인 노씨, 최씨, 이씨, 정씨에서 영향을 받은 성이다. 배씨도 중국 하동지역 명문가인 배씨 가문을 바탕으로 구성된 듯하다.
이처럼 6두품 성들이 중국의 유명 성씨를 기본으로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진골 다음가는 귀족 집단들의 성씨로 연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식으로 신라 내에서 활약하였을까?
이 이야기는 반응을 보아 2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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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