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장수
  1. 여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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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사진1)에 따르면 서기 400년, 고구려 5만 대군이 한반도 남방으로 원정을 떠난다. 신라왕이 도움을 요청하여 이에 화답한 것이다. 

당시 신라는 금관가야와 낙동강을 두고 크게 대립 중이었는데, 백제의 은근한 지지와 왜 병력을 지원 받았기에 가야는 신라를 크게 압박할 수 있었다. 이에 광개토대왕은 재빨리 신라를 후원함(사진2)으로서 라이벌인 백제의 팔 다리를 끊고자 했다. 즉 백제-가야-왜 동맹을 고구려-신라 동맹으로 제압하겠다는 거다. 

전쟁의 결과는 고구려의 대승리였다. 왜 병력은 완전히 무너졌고 금관가야도 의욕적으로 펼친 전쟁에서 패함으로서 서서히 몰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면 신라는 고구려의 도움으로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덕분에 일개 보호국으로 전락하게 되어 한 지역 우두머리가 고구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영향 때문인지 경북 의성에는 신라형식과 다른 금동관(사진3)이 발견된다. 마치 길림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금동관(사진4)와 닮아 있다. 

의성은 죽령 바로 아래에 위치한 교통 요지로 한 때 신라의 영향력에 속한 지역이었다. 허나 고구려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의성 지역의 호족은 고구려식 금동관을 착용하게 된 것이다. 신라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영토를 뺏긴 기분이었을테다.

뿐만 아니라 경주에서도 고구려 형식의 은관(사진5)이 쓰이고 있었다.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이 모자는 깃털의 날개처럼 펼쳐있는 모습이 고구려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라 고구려에서 볼모 생활을 하던 인물이 신라 왕위에 올랐으며 고구려인에게 신라왕이 죽임을 당하고 그들에 의해 새로운 왕이 올려지기까지 한다. 얼핏 원나라에게 복속당한 고려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그래서일까?... 조금씩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신라인들은 고구려로부터 자립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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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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