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장수
  1. 견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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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901년 가을이 되어 백제군들은 신라를 향해 진격한다. 목표는 대야성으로 경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요충지였다. 젊은 왕인 견훤은 직접 원정군을 이끌었는데 새로 시작된 후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었다. 즉 경주로의 진입로를 확보하여 언제든지 신라를 백제 손 안에 넣을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가려 했던 것이다. 물론 대규모 원정을 통해 신생왕국의 권력을 빠른 속도로 왕을 중심으로 귀속시키려는 목표도 있었을 테다.

 

대야성은 예전 백제 의자왕에 의해 함락된 적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난공불락의 형태를 지닌 성이었다. 다만 적고적이라 불리던 도적들이 경주로 침범할 당시 백제 지역에서 일어나서 너무나 쉽게 경주까지 이동한 것으로 보아 삼국통일 이후에는 오랜 기간 성으로의 역할은 멈추고 단순한 행정적 임무로 쓰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견훤도 신라장교 시절 대야성을 통과해서 해안 수비 지역으로 이동한 경험이 있었던 만큼 자신 있게 왕이 되자마자 대야성을 직접 공략한다.

 

그러나 견훤의 과신과는 달리 대야성은 삼국시대가 다시 열린 만큼 예전의 난공불락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당시 대야성 성주는 김억렴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경주 내 진골 김씨를 대표하는 김효종의 형이자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라는 벼슬을 맡고 있었다. 즉 경주 내에서 차기 왕권 자리를 놓고 진골 박씨와 치열한 경쟁 중에 있었던 진골 김씨 세력에게는 대야성 방어가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신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어도 경주를 중심으로 소백산맥 안으로 하는 영토는 가능한 지켜내려는 의지를 보이고자 했다. 당시 진주에는 왕봉규라는 호족이 있었고 김해에는 김인광이라는 호족이 있었다. 이들은 각기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했으나 신라와의 관계도 견훤과 궁예와 달리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신라의 권위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우호적 세력이었다. 그러나 대야성이 무너진다면 그나마 우호적인 호족마저 견훤의 손으로 들어갈 것이니 자연스럽게 신라가 지닌 마지막 권위도 사라진다.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대야성의 위치적 힘을 살펴보자. 경상남도 합천군에 위치한 대야성은 낙동강 지류인 황강을 벽으로 삼아 만들어진 요새로 진흥왕 시대에 구축되었다. 특히 상당한 인구가 자급자족이 가능한 곡창지대를 바탕으로 대규모 병력이 상주할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장점이었다. 그래서 삼국시대에도 백제, 신라 간 대야성을 기점으로 전쟁을 벌이곤 했다. 의자왕과 김유신의 오랜 혈투도 바로 이 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만큼 대야성을 점령한 나라는 이 지역에 기본으로 대규모 병력을 주둔 시킬 수 있게 되니 이후 전략적으로도 큰 우위에 서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야성 자체가 강과 언덕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격 측에는 험난한 일을 겪어야만 성 공략이 가능했다. 백제 공격 방향으로는 오직 침공로가 하나 밖에 없는 반면 신라 측의 경우 황강을 통해 식수와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산성 방어력때문에 수비 할 때 버티기도 수월했다. 덕분에 본래 성의 임무로 돌아서자 쉽게 뚫기 어려운 낙공불락의 성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견훤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백제왕으로서 첫 원정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나름 자존심에 큰 상처도 입었다. 반대로 신라는 방어에 성공하면서 진골 김씨의 발언권이 조금 강해진다. 헌강왕의 사위이자 다음번 신라왕에 오를 인물들 중 높은 서열을 지니고 있던 김효종이 이 사건을 계기로 다음해 시중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형의 승리를 통해 여러 귀족들의 지지를 얻게 되면서 진골 박씨의 후원을 받던 계강을 대신하여 수상직인 시중으로 오르게 된 듯하다.

 

그러나 견훤은 한 번 소집한 군사를 단순히 물리지 않았다. 대야성 공격 병력을 그대로 이끌고 나주로 진격하여 그곳의 마을들을 공격한 것이다. 그러곤 이곳에서 약탈 등을 통해 충분히 힘을 보여 준 후 전주로 돌아간다. 나름 나주에 대한 무력시위를 보인 것인데, 아무래도 후백제를 선포한 뒤에도 나주 세력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자 무력을 통한 압박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특히 대야성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이런 일을 벌였다는 점에서 이번 원정에 있어 타 지역 호족들과는 달리 나주 지역 호족은 여전히 견훤에게 물자나 병력 지원 등을 하지 않으며 독자적인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것 같다. 대야성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자연스럽게 높아진 권위를 통해 한 번 더 나주 호족을 품으려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패배한 이상 기타 자신을 지원한 호족들과 구별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본보기로 강한 압박을 보여줘야 했다.

 

결론적으로 대야성은 견훤의 첫 원정 후 20여년이나 지나서야 백제의 손으로 들어오게 된다. 신라도 끈질기게 마지막 목줄은 지키려 노력한 것이다. 할 수 없이 견훤은 신라 침공 루트의 방향을 자신의 고향인 상주로 진격하여 우회하는 방향도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마침 견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일이 하나 더 발생하였다. 다름 아닌 자신의 손아귀에 거의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 나주의 세력들이 궁예 편에 들었다는 소식이다. 기절초풍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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