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밀크티
- 작성일
- 2022.10.30
진지하면 반칙이다
- 글쓴이
- 류근 저
해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이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살아내고 살아가느라 애쓸
모든 이들에게
시인 류근이 건네는 위로 (책 띠지 중에서)
류근 시인의 엮은 책으로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를 요즘 즐겨읽고 있다. 틈틈이 꺼내읽으며, 좋은 시를 잘 선별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리고 시인 류근은 방송에서도 보았고, 특히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이라고 하니 그의 에세이를 더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이 시인 류근의 4년 만의 신작 에세이라고 하니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해서, 이 책 『진지하면 반칙이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류근.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대학 재학 중에 쓴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김광석에 의해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등단 후 18년간 공식적인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2010년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2016년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출간했다. 그밖에 산문집과 공동으로 엮은 한국 서정시선집 등 다수 출간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1장 '장래 희망이 시인이었다', 2장 '이왕이면 힘껏,', 3장 '사랑 아닌 줄 알아라', 4장 '세월이 줄어든다는 건', 5장 '당신 보시라고', 6장 '착하게 살아남는 시간', 7장 '비틀비틀 노래하는 세상 쪽으로'로 나뉜다.
처음에 일러두기에 보면 저자 특유의 표현에 따라 맞춤법의 구어적 사용, 비속어 표현 등을 일부 허용한 부분이 있다고 언급한다.
솔직히 비속어는 쓰지 말지, 하면서 진지하게 다가갔지만, 그렇다. 진지하면 반칙이다!
첫 이야기부터 시선을 끈다. 「을지로 순환선을 타고」는 진지하다. 첫 이야기는 반칙이다.
시집 한 권을 착하게 들고서 을지로 순환선에 올라 한 바퀴 돌고 나면 시집 한 권이 내 가슴에 착하게 옮아져 있고, 다시 시집 한 권을 경건히 들고서 을지로 순환선에 올라 한 바퀴 돌고 나면 시집 한 권이 내 영혼에 경건히 옮아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내 가난한 청춘이 그렇게 흔들리며 흘러갔다. (11쪽)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한 마음에 계속 읽어가게 되었다.
그다음이 어떤가 궁금하시다면, 살짝 언급하자면 삶 속의 각종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듯 다양했다. 거기에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농담처럼 가볍게 흘러가기도 한다.
부담 주지 않으면서 쉬운 언어로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듯하다.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게 잡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형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러니 부담 없이 읽어나가다가 문득 마음에 훅 들어오는 문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막 무슨 새들이 지구에 투신하는 소리 같으다. 이 좋은 가을날 스스로 몸을 던지는 나뭇잎들을 보자니 어디선가 많이 닮은 풍경이 생각난다.
아, 맞다. 나도 나를 어디론가 힘껏 던지는 힘으로 살아남았다. 참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었다. (52쪽, 「고독하고 쓸쓸한 일」 전문)
중간중간 비속어는 류근이라는 장르라고 보면 되겠다. 그가 하면 자연스러운데 내가 쓰자니 어색한 느낌이다.
그래서 진지하게 가다가 반칙임을 깨달았는지 마지막 단락은 비속어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어울린다. 그래야 느낌이 강렬하게 와닿는 듯하다.
언젠가 고비사막에 간 소설가 김연수가 그곳 유목민이 '낙타 국수'를 끓이는 모습을 보더니 "낙타는 제 배설물로 제 고깃국을 끓이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참 좋은 소설가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이 지상에서의 삶이란 전생에 내가 쏟은 배설물들에 의해 뜨겁게 익어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처럼 비 오고 바람 불고 해 뜨고 빚쟁이까지 뜨는 날일지라도 억세게 뜨겁게 성숙해 가는 것 아름답지 않은가. (270쪽, 익어가야지 중에서)
류근 시인이 들려주는 삶의 다양한 목소리다.
이 책의 제목 '진지하면 반칙이다'는 「제 힘껏 살아내다」에 있는 사과 세 알 에피소드 끝에 '겨우 못생긴 사과 세 알 앞에 두고서 이렇게 진지하면 반칙이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나온다. 스토리가 더해져서 그 문장을 접하고 보니, 제목만 보았을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또한 마지막 글도 「진지하면 반칙이다」로 끝난다. 이 말이 마음을 확 풀어지게 한다. 제목으로도 잘 지었고, 책 속에서 풀어주니 이 말이 점점 마음에 든다.
시인의 에세이여서 류근 시인의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무렵, 맨 마지막에 끝맺음으로 「반성」이라는 시가 나온다. 시 감상으로 독서를 마무리한다.
가벼운 듯, 무거운 듯, 진지한 듯, 농담이 든, 류근 시인만의 색깔로 독특한 향기를 풍기고 있는 글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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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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