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리뷰

외로운돛단배
- 작성일
- 2023.11.14
밤으로의 긴 여로
- 글쓴이
- 유진 글래드스톤 오닐 외 1명
민음사
한동안 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책이 있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가 그것이다. 불편함이나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오만가지 감정이 마음속에서 울렁거렸다. 책 속 인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잔함 때문이었을까?
어렸을 땐 세상이 선과 악으로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신념이 있었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어른들이 어리석어 보였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은 선과 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과 사람들의 입장 차이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 극명한 입장차로 관계가 비틀어진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타인과의 관계가 쉽지 않은 인간 사회에서 특히, 혈연으로 엮인 가족 관계는 가장 소중한데도, 한번 꼬이면 풀기가 힘든 관계이기도 하다. 내 의지로 끊을 수도 없는 가족이라면 가족은 과연 굴레인가, 족쇄인가, 구원인가?
도시인의 고독, 적막, 불안을 표현한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Night Window”가 실린 표지에서부터 의미 심장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작가의 서문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서문...
|
책을 다 읽은 후 이 서문을 다시 읽으면, 작가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온다. “고뇌에 시달리는 티론 가족 네 사람 모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 이것이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나는 과연 나의 가족에게 이런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를 할 수 있을까?
배우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나,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끝내 떨치지 못하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 자신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감정적으로 무딘 남편에 비해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지녔고,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고생스럽던 결혼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약물 중독이 되어버린 어머니, 늘 아버지에 비해 의지도 능력도 부족해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큰아들, 그나마 한 인간으로 독립적인 인생을 꿈꾸며 가족을 떠났으나 예기치 못한 병으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어린 막내아들.
이들이 함께 보낸 어느 평범한 하루의 이야기가 “밤으로의 긴 여로”이다.
겉으로 보기엔 별문제 없어 보이는 집안이라도 그 집의 묵직한 현관문을 열고 한 발만 들이면, 그곳엔 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고민들이 묵은 때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그래서 이 가족을 보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유진 오닐의 딸과 찰리 채플린이 결혼을 했으나, 끝내 유진 오닐이 그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딸과 의절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유진 오닐이 반가워할 말은 아니겠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1912년이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러 집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활기차게 시작된 하루는 한낮을 거쳐 어둠이 내리는 밤중으로 향하며 결국, 이들 가족은 파국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들 중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이들은 서로 헤어지지도 못한 채, 서로를 비난하고 탓하다가는 연민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끝내 서로를 이해하거나 포용하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작가는 왜 하필 이 시점의 하루를 작품으로 남겼을까? 이들에게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니 멀어진 가족과 회한만 남은 인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남은 나날들...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상대를 맞닥뜨리면 원망부터 하게 되는 갑갑한 상황이 부부,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간의 대화에서 반복된다.
이들의 관계는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그것을 바로 돌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평범한 인간의 어리석음은 정말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연 현재의 모든 상황을 과거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비록 과거의 대부분이 비루한 시간이었다 해도, 찰나의 행복한 순간을 붙들고 괜찮은 현재를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맞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을 알지만,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
그러나 안개는 곧 걷히고 만다. 안개로 가릴 수 있는 세상은 한정적이고 안개로 가릴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 그들은 안개 속에 숨지 말고, 안개 속을 뚫고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차마 이 가족을 비난하거나 누구의 잘못을 탓할 수가 없다. 나도 나의 가족도 숱하게 이런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시대가 바뀌어 점점 가족의 의미나 형태도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 구성원이 아닌 형태의 가족이 허다하게 많은 세상이다. 심지어 “핵개인”이란 말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가족이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타이론 가족의 하루를 들여다보며, 부모란, 자식이란, 형제란 어때야 할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결국 가족 이전에 내 자신이 올바로 서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건강한 가족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이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다면, 설득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을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바뀔 수 없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만큼은 각 개인에게 회귀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깊은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아침이 돌아온다. 부디, 타이론 가족에게 이 밤이 지나고 다시 맞는 아침은 새로운 날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게도...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