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야 놀자

스크류
- 작성일
- 2021.9.10
신의 전쟁
- 글쓴이
- 카렌 암스트롱 저
교양인
서평단을 신청하여 책을 받은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도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 부끄럽다. 나의 게으름, 부주의함, 집중력 부족 때문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독서가 루즈해진 원인을 굳이 책에서 찾자면 책의 지적 수준과 번역 정도. 예상과 달리 책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대부분의 페이지에서 제시된 기록과 정보는 독자의 사전 지식이 이미 충만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 따라서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사건이 등장할 때면 독서는 가다서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런 류의 고급 역사서는 번역이 친절하지 않다. 특히 초중반부터 헐거워진 번역 때문에 독서가 살짝 힘겨워졌고, 평일 퇴근 후엔 겨우 꾸역꾸역 읽었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은 별 다섯개다. 세계사를 관통하는 종교-정치 관련 서적도 드물뿐더러, 작가의 관점도 충분히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이어서 인간은 전쟁을 일으키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물질적, 이념적, 기타 수많은 이유로 갈등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인류사에서 가장 큰 전쟁인 세계 1,2차 대전이 종교적인 이유로 발발하지 않았다는 게 그 근거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종교 자체가 폭력적이고, 이로 인해 전쟁이 촉발된다고 믿는다. 종교의 공격적 이미지는 인간의 합리성, 자유의지, 정보력이 보편화된 근현대에 와서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종교는 원래 호전적이고, 타협을 모르고, 독단적이라는 믿음은 뿌리가 깊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저자는 종교와 폭력의 역학관계를 추적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종교는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 인도의 자이나교와 불교, 힌두교, 중국의 유가와 법가, 히브리인의 유대교, 예루살렘과 로마의 기독교, 메카의 이슬람, 근현대의 프로테스탄트까지 방대하다. 그리고 각 종교의 내부 세력 간에, 또는 종교 상호간에 갈등과 폭력은 쉼없이 계속돼 왔다. 특히 서방 기독교와 중동 이슬람 세력간의 십자군 전쟁과 이후로도 지속된 충돌은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는 믿음을 탄생시켰다.
유일신교는 타 종교에 배타적이고, 이는 일정한 폭력적 성격을 드러낸다. 구약성서의 신명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종교와 폭력의 결합은 종교가 강력한 제국, 강력한 통치자를 만났을 때 현실화 됐다.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제국을 거치면서 종교는 폭력적 세계관을 갖추기 시작했다. 제국은 종교를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했지만, 반대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종교를 박해하기도 했다. 특히 로마의 기독교 박해는 기독교가 가지는 중앙집권적, 권위주의적 성격을 위협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은 철저히 정치적인 행위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을 기독교화하는 것보다 신앙을 제국주의화 하는 것이 쉽다'로 요약할 수 있다.
기독교의 유일신은 제국의 황제와 여러 면에서 유사했고, 서로 경쟁하면서도 결국 하나로 융합되어 강력한 기독교 종교국가가 탄생했다. 반대 진영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이슬람의 쿠란은 자비와 무자비가 공존했고, 십자군의 성전과 이슬람 전사의 지하드는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신을 섬기는 두 길, 싸움과 기도의 시작이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히 지적할 부분은 종교의 폭력성이 전쟁을 촉발시킨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세력이 종교를 불쏘시개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공포, 학살, 파괴가 만연했던 십자군 원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거룩한 전쟁이라고 자임했던 두 세력의 종교에 민족과 애국이 결합했을 때 폭력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런 이유로 다시 종교는 폭력적이라는 시각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중세부터 근대까지 종교집단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때때로 종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의미가 있을 때조차 종교는 세속적이었으며, 영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세속적인 이유로 소비되고, 정권이 바뀌고, 국경이 나뉘어지고,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과 광기의 배경을 단지 종교의 폭력적 성격으로 치부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유일신교의 배타적 성격, 정치적 요구와의 결합, 제국주의적 팽창, 충돌과 복수, 이 과정에 신의 입김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종교에 대하여 한번쯤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종교에 대한 큰 흐름을 정리해준 좋은 가이드이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판도라의 상자이기도 하다. 다만 기초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한걸음에 독파하기엔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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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