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된 그녀들』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저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박, 마약, 성중독과 같은 단어는 뉴스나 다큐멘터리 속에서만 접했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저는 점점 이 책 속 ‘그녀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쇼핑, 다이어트, SNS, 불안, 외로움.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무엇인가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중독 사례집이나 도덕적 교훈을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세 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중독을 개인의 일탈이나 의지력 부족으로 보지 않습니다. 중독은 외로움, 관계 단절, 돌봄의 부재, 구조적인 고립 속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여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중독은 더욱 복합적이고 깊은 사회적 낙인을 동반합니다. 사회는 중독된 여성에게 훨씬 더 가혹한 시선을 보냅니다. 중독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을 저버린 여성이라는 틀로 해석되며, 회복의 길마저 가로막습니다.

책은 실제 네 명의 여성 사례를 중심으로 중독의 원인과 회복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쇼핑, 성형, 성,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스스로를 잃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살아가려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이들의 회복 과정은 단순한 끊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상을 다시 살아내고, 하루를 성찰하며 쌓아가는 시간들입니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과 그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날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것이 나름의 회복 과정이라고 했다.” (p.183)
이 문장은 책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회복은 단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임을 독자에게 조용히 전합니다.

책은 또한 우리가 중독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협소하게 사용해 왔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SNS, 소비, 외모, 관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지점에서는 중독과 맞닿아 있습니다. 책은 이 흔한 일상 속 집착들이 얼마나 구조적인 불안 속에서 비롯된 것인지 천천히 짚어갑니다.

“중독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도파민 시스템이 왜곡되며 벌어지는 일이다.” (p.45)
이 문장을 통해 독자는 중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됩니다. 그것은 자극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기 위한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책은 그 선택을 쉽게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한 이들의 용기에 조용히 귀 기울입니다.

『중독된 그녀들』은 고백의 기록이자 회복의 기록입니다. 누군가의 치부를 파헤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무너짐’과 그 이후의 서사를 진심 어린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책은 말합니다.
“당신도 괜찮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질 수 있습니다.”
책을 덮은 후, 마음 한편이 오랫동안 따뜻하게 남았습니다. 누군가 제 마음속 이야기를 먼저 꺼내준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상처를 부끄럽지 않다고 말해주는 이 책의 문장들은 조용히 오래도록 울림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