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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fahrt80
- 작성일
- 2020.10.25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 글쓴이
- 윤이재 저
다다서재
2017년 12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던 손녀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8년 만이었다. 시골의 고향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구십 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어린 아이가 되어가는 길목에 선 할머니였다.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 자신을 보듬어주셨던 분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게다가 마침 집안에서 유일하게 그녀만 매일 어디론가 나갔다 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숙식을 제공받고 무급으로 주5일 근무하는 할머니의 간병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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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에서 2019년 겨울까지. 이 이야기는 할머니의 마지막 2년을 곁에서 살핀 손녀가 직접 기록한 할머니의 이야기, 아니, 가부장제가 깊숙이 뿌리 내린 과거의 한국을 살아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시대를 딛고 일어나 앞으로를 준비하는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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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한 챕터를 다 못 읽고 눈물이 터져 버려 덮어두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끝까지 읽었다. 글을 읽는 내내 나의 할머니와 나의 엄마의 얼굴이 계속해서 겹쳐졌다. 두 분은 저자의 할머니에 비하면 교육도 많이 받으셨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사신 인생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 여성들이던 할머니와 엄마도 지금의 나에 비하면 하고 싶었지만 못했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만 했던 일들을 그저 당연한 일처럼 통과해가며 살아온 인생인 것은 분명했다. 그 생각을 하니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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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생각이 특히 많이 났다. 부모님이 모두 직장을 다니셨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한 집에 살던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나도 동생도 할머니 옆에 누워야 잠을 잘 수 있었는데 부모님이 난생 처음 침대를 사주셨던 날에도 처음엔 기쁨에 겨워 침대 위에 누웠다 일어났다 했지만 잠잘 때가 되자 결국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머니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누웠다. 우리가 누울 자리까지 미리 펴두고 계셨던 할머니는 기다렸다는듯 불을 끄고 어서 자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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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엄습하지만 이내 눈은 어둠에 적응해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부터 찾아내곤 했다. 나는 옆에 누운 할머니의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할머니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저 움직임이 계속되는 한 나의 할머니는 살아계신 것이었다. 할머니가 너무 좋아 그런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 편히 잠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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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장례를 다 치르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울낭군의 공부 때문에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도 어차피 당장 한국으로 오기 힘들텐데 괜히 마음만 아파할까봐 염려하는 마음에 가족들이 나에게는 장례식을 다 마무리하고 연락을 하기로 했다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나는 마지막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연락을 받았으면 갈 수 있었는데. 꼭 갔을텐데. 울음이 멈췄다가도 미국으로 떠나기 전 찾아뵈었던 할머니가 나와 울낭군의 손을 꼭 잡고는 싸우지 말고 잘 살라고 말씀하셨던 게 자꾸만 떠올라 계속 울음보가 터지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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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태어나셨던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어느덧 7년이 되었다. 고향집에 가면 할머니가 지내시던 방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예전에는 눈물이 나서 그쪽을 바라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녕하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인사도 드릴 수 있는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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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할머니가 그러하셨듯 일제시대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그저 열심히 살아내주신 나의 조부모 덕분에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편히 살고 있다. 언젠가 할머니는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꼭 피겨스케이팅이라는 걸 배워보고 싶다고 하셨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도 관심이 많아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활짝 펴놓고 돋보기를 쓴채 꼼꼼히 살펴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손재주가 좋아 그림도 잘 그리셨다. 똑똑했지만 시대상황 때문에 하고 싶었던 공부며 일을 다 하지 못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하늘에서라도 아쉬움 한톨 없이 본인이 원하는 것 다 하고 계시면 좋겠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좋은책이었습니다.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dada_lib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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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재『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다다서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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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에서 2019년 겨울까지. 이 이야기는 할머니의 마지막 2년을 곁에서 살핀 손녀가 직접 기록한 할머니의 이야기, 아니, 가부장제가 깊숙이 뿌리 내린 과거의 한국을 살아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시대를 딛고 일어나 앞으로를 준비하는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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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한 챕터를 다 못 읽고 눈물이 터져 버려 덮어두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끝까지 읽었다. 글을 읽는 내내 나의 할머니와 나의 엄마의 얼굴이 계속해서 겹쳐졌다. 두 분은 저자의 할머니에 비하면 교육도 많이 받으셨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사신 인생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 여성들이던 할머니와 엄마도 지금의 나에 비하면 하고 싶었지만 못했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만 했던 일들을 그저 당연한 일처럼 통과해가며 살아온 인생인 것은 분명했다. 그 생각을 하니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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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생각이 특히 많이 났다. 부모님이 모두 직장을 다니셨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한 집에 살던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나도 동생도 할머니 옆에 누워야 잠을 잘 수 있었는데 부모님이 난생 처음 침대를 사주셨던 날에도 처음엔 기쁨에 겨워 침대 위에 누웠다 일어났다 했지만 잠잘 때가 되자 결국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머니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누웠다. 우리가 누울 자리까지 미리 펴두고 계셨던 할머니는 기다렸다는듯 불을 끄고 어서 자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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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엄습하지만 이내 눈은 어둠에 적응해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부터 찾아내곤 했다. 나는 옆에 누운 할머니의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할머니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저 움직임이 계속되는 한 나의 할머니는 살아계신 것이었다. 할머니가 너무 좋아 그런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 편히 잠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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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장례를 다 치르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울낭군의 공부 때문에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도 어차피 당장 한국으로 오기 힘들텐데 괜히 마음만 아파할까봐 염려하는 마음에 가족들이 나에게는 장례식을 다 마무리하고 연락을 하기로 했다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나는 마지막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연락을 받았으면 갈 수 있었는데. 꼭 갔을텐데. 울음이 멈췄다가도 미국으로 떠나기 전 찾아뵈었던 할머니가 나와 울낭군의 손을 꼭 잡고는 싸우지 말고 잘 살라고 말씀하셨던 게 자꾸만 떠올라 계속 울음보가 터지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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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태어나셨던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어느덧 7년이 되었다. 고향집에 가면 할머니가 지내시던 방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예전에는 눈물이 나서 그쪽을 바라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녕하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인사도 드릴 수 있는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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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할머니가 그러하셨듯 일제시대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그저 열심히 살아내주신 나의 조부모 덕분에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편히 살고 있다. 언젠가 할머니는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꼭 피겨스케이팅이라는 걸 배워보고 싶다고 하셨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도 관심이 많아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활짝 펴놓고 돋보기를 쓴채 꼼꼼히 살펴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손재주가 좋아 그림도 잘 그리셨다. 똑똑했지만 시대상황 때문에 하고 싶었던 공부며 일을 다 하지 못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하늘에서라도 아쉬움 한톨 없이 본인이 원하는 것 다 하고 계시면 좋겠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좋은책이었습니다.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dada_lib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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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재『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다다서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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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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