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포함됐습니다...)

 

부제: 죽음으로 봉인된 아름다운 꿈...

 

80년대 초 MBC에서는 정애리씨가 여간첩으로 나온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다 갑자기 종방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간첩을 너무 세련되게 그려서'..--;;;;

글고보니 옛날 똘이장군 시절의 간첩(정확히는 북한 공산당)은 돼지나 늑대로 묘사됐고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싸이코패스였다. 그나마 좀 나은 경우는 남한 사회의 자유와 풍요에 감동해 귀순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대중문화에서 간첩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 스타트는 유오성씨가 주연한 '간첩 리철진'이다. 남파간첩의 임무는 어이없게도 슈퍼돼지 훔쳐오기 이고, 어리바리한 간첩은 오자마자 택시강도를 만나 공작금을 도둑맞는다. 고정간첩 부부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공작금이나 좀 얻어먹을까 하다 오히려 군식구가 늘어나니 골치아파진다...

이와 비슷한 영화들은 줄줄이 등장해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는 '이중간첩'이라던가 북한에 버림받고 남한 안기부 전 직원과 우정을 맺는 '의형제'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결국은 한 줄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동네 바보형이 알고 보니 고정간첩이었다는 설정으로 출발한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원작 웹툰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에 김수현, 이현우 등 꽃미남 배우 군단, 손현주씨 같은 걸출한 조연들에 힘입어 올해 대박영화로 떠올랐다.

한데 남북문제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은밀하게 위대하게' 역시 비극으로 끝난다. 해피엔드를 맺은 작품은 '의형제' 정도가 유일하다. 왜 이들은 남한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세 주인공이 남한에 투항했을 경우 그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얘네가 굶주림을 못이겨 탈북한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북에서의 인적사항이나 월남 경위 등만

간단히 조사하고 하나원 들어가 교육 받은 후 정착금 갖고 대충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셋은 최정예 엘리트 간첩, 게다가 한놈은 고위간부 아들이다.

엘리트의 귀순이 체제우월성 홍보수단 가치가 있는 시절도 아니고, 얘네같은 애들이 순전히 인간다운 삶을 살고싶어 귀순한단 소리를 남한 정부에서 참 잘도 믿어주겠다...--;;;아마 받아준다 해도 이중간첩의 한석규처럼 모진 고문을 당한 후일텐데 김수현 팬들이 그런 꼬라지를 꼭 봐야 하겠는가...

게다가 세 사람이 간첩일 때는 그나마 남한에서의 '생존'은 보장됐었다. 공작금이 나오니 리해랑도 놀고 먹으며 오디션 준비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삶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 정착금을 사기당할지도 모르고 저임금 알바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남한도 사람사는 곳인만큼 가게 아주머니나 집주인 할배처럼 좋은 분들만 만날 수 있는게 절대로 아니다.

결국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비극으로 끝난 이유는 세 주인공이 꾸었던 아름다운 꿈을 있는 그대로 남겨주기 위해서다. 남한이 북한보다 자유로운 세계일 수는 있지만 천국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왕자와 결혼한 후의 신데렐라가 어떻게 살았는지 동화에서는 말해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 꽃미남 간첩이 남한에서 꿈었던 달콤한 꿈은 죽음을 통해 영원히 봉인됐다. 이는 오늘날 남북의 현실을 아는 작가가 내린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을 것이다.

 

 

< src="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48621415" quality="high" bgcolor="#ffffff" width="400" height="80"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