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나의 책나라

리나
- 작성일
- 2021.7.20
나는 도망칠 때 가장 용감한 얼굴이 된다
- 글쓴이
- 윤을 저
클레이하우스
'도망친다'는 말을 할 때 다른 표현으로 '삼십육계 줄행랑친다'라고 한다. 이 삼십육계는 중국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에 나오는 계책 중에 하나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 적과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데 그 중에 '삼십육계 주위상책'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삼십육계 주위상책은 전쟁에 쓰이는 36가지 계책 중에서 도망가는 것이 가장 좋은 책략이라는 것이다. 도망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오래전 사람들도 전쟁에서 도망치는 것이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 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망가더라도 잘 도망쳐야 한다. 무턱대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명분을 만들어야 하고 그 명분은 반드시 존엄성을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망친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걸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도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상은 도망을 친다는 프레임으로 가두고, 책임감 없고 비겁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그런 세상에서 착실하게 사회화해왔기에 굳이 버티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쓸데없이 버틴다. 도망의 기술을 배우고 있는 우리는 상상력의 힘을 더욱 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도망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도 상상력이고, 잘못 이해한 것을 실제라고 믿게 만드는 것도 상상력이다. 우리가 이 상상력이란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감행하는 도망의 질적 수준이 결정된다.
가끔 이기는 싸움만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지는 것을 싫어하기에 이기는 싸움으로 승률을 높이고 도전한다. 이런 마인드로는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실패를 더욱 두려워하게 된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신라의 승려인 원효대사를 새롭게 해석한 한 소설에서는 삼국통일을 이룬 김춘추에게 전쟁을 반대하는 원효는 제거 대상 1순위였단다. 민심까지 원효에게 기울어 원효를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민심이 요동 칠 것을 예상해 원효를 파계승으로 만든다. 스님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일반 백성과 다름 없게 만든다. 김춘추는 과부가 된 딸 요석공주를 이용해 스토리를 꾸미고 원효를 끝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한다. 그런데 원효는 김춘추의 계략을 다 알면서도 제 발로 함정에 들어간다. 종교의 세계를 떠나 세속의 세계로 건너온 원효의 선택은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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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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