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으로 책을 읽어라

seyoh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9.9.23
사랑하면 알게 되나, 알게 되면 사랑하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 1권에, 그 책이 출간된 이후 인구에 회자되게 된 말이 하나 소개되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의 책에서 그 말이 나오게 된 경위를 살펴보자.
미술사를 전공으로 삼은 이후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미술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막연한 물음에 대하여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묘책은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것이었다. 예술을 비롯한 문화미란 아무런 노력 없이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을 아는 비결은 따로 없을까? 이에 대하여 나는 조선 시대 한 문인의 글 속에서 훌륭한 모범답안을 구해둔 것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제 1권, <책을 펴내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참 멋진 말이다. 아름다운 말이기도 하다.
또한 그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 또한 심오하여, 비단 보는 데만 그 글이 쓰인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지, 문화행동에는 이 말이 지침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난 후, 궁금한 게 생겼다.
유교수는 단지 ‘조선 시대 한 문인의 글 속에서’라고 했는데 정확한 출처가 무척 궁금해진 것이다. 조선시대 누가, 어떤 글에서, 무어라 말한 것일까?
그렇게 궁금해 하던 차에 드디어 단서가 되는 글을 읽게 되었다.
고려대학교 고영건 교수가 쓴 『사람의 향기』를 읽는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을 만난 것이다.
조선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이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이 나온다.
“알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으로 보게 되며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이것은 단순히 모으기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石農畵苑跋,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이 글이 보여주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향기』, 고영건, 박영Story, 255,286쪽)
“알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으로 보게 되며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이것은 단순히 모으기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유홍준 교수가 전해 준 말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상당부분이 같은 말이니 근거가 될만한 글인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알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으로 보게 되며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이것은 단순히 모으기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유한준)
일단 그 정도로 알게 된 것도 감지덕지 하면서 지냈는데, 지식생태학자라 불리는 한양대 유영만 교수의 책에서 더 자세한 소식, 그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여기 소개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권』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이 구절의 원문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다.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 당대의 서화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원문은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이 아니다." 로 해석된다. 즉, 원문에서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였지만 이를 유홍준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로 바꾼 것이다.
(『공부는 망치다』, 유영만, 나무생각, 11쪽)
그렇게 해서, 유홍준이 전해준 말의 정확한 원문을 알게 되었다.
원문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가 아니라,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라는 것.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서 사랑의 과정을 더듬어 가보니, 그 순서가 약간 다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라는 순서가 약간 어긋난 것 같지 않은가?
사랑을 하기 이전에 어떤 단계가 앞서는 것 아닌가?
‘알게 되면’, 그게 앞서야 되는 것이다. 알기도 전에 무턱대고(?) 사랑하게 될까?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더 알게 되는 것이 사랑의 이치 아닌가?
아! 참!, 사랑을 하게 되는 수백 수천 가지의 경우가 있다는 것, 깜빡했다.
그중에 첫눈에 뿅하고 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 첫눈에 반해서 알기도 전에 사랑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니, 유홍준의 말은 바로 그런 것이겠다.
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그 말 백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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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