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스 신화, 비극 읽어야 하는 이유

seyoh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0.4.21
셰익스피어, 베르길리우스를 읽다 [1]
- 그리스 신화, 비극을 읽어야하는 백 가지 이유
셰익스피어는 베르길리우스를 알았을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알았을까? 답은? 알았다, 이다.
알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의 글을 읽고, 작품 속에 녹여 놓았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한여름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 등 많은 작품에서 베르길리우스를 활용하고 있다.
『맥베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일은 피를 보고야 말 것이오, 피는 피를 부른다고 하오
시신을 덮은 돌들이 움직였다고, 나무들이 말했다 하오.
『맥베스』 3막 4장에 나오는 맥베스의 말이다.
멕베스가 던컨 왕을 죽이고 왕이 된 후 이어서 뱅코우를 죽인다.
그렇게 해서 걸림돌이 되는 뱅코우를 죽였다고 안심하는데 뱅코우의 유령이 나타난다.
그런 일이 벌어지자, 백베스는 번민을 하는 가운데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예언적인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맥베스가 말한 ‘이일’은 뱅코우를 죽인 것을 말한다. 그 살인의 행적을 ‘시신을 덮은 돌들이 움직였다고, 나무들이 말했다 하오’라고 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나무들이 말했다 하오’라는 대사에 대하여 역자는 각주를 통해 그 출처를 밝히고 있다.
<버질(Virgil)의 『에이네이드(Aeneid)』 iii 22-68에서 폴리도러스(Polydorus)의 유령이 나무에서 자신을 죽인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알린다.> (동인, 108쪽)
(역자는 버질의 작품을 『에이네이드(Aeneid)』라고 하는데, 『아이네이스(Aeneis)』다.)
그럼 구체적으로 나무들이 말했다는 사연을 알아보자.
『아이네이스(Aeneis)』 iii 22-68, 즉 3장 22-68행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에서 탈출하여 로마로 향하던 중, 트라키아인들의 땅에 도착하여 나무 하나를 뽑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나무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이다.
내가 땅에서 나무 하나를 뽑아내자마자
뿌리가 찢겨나가면 시커먼 핏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대지를 핏덩어리로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 천병희, 89쪽)
이상히 여긴 아이네아스가 나무에서 가지를 몇 개 찢어내자,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네아스여, 왜 나를 찢는 것이오? 이곳에 묻힌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죄없는 그대 손을 더럽히지 마시오. 나는 그대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오.
트로이아가 나를 낳아주었으니까. 이 피는 나무에서 흘러내린 것이 아니오.
제발 이 잔혹한 나라를, 이 탐욕스런 해안을 피하시오.
나는 폴뤼도루스요. 이곳에서 나는 꼼짝할 수 없도록 수많은 무기들에 뒤덮여 있는데,
그것들이 뿌리내려 날카로운 창 자루 감들로 자라난 것이요.
그렇게 해서 폴뤼도루스가 죽은 사연이 밝혀진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무스는 트로이의 운명이 다한 것을 알고 왕자 폴뤼도루스에게 금괴를 들려서 트라키아 왕에게 보낸다. 맡아서 양육시켜 달라는 것이었는데 트라키아 왕은 오히려 그를 살해하고, 금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런 사연을 들은 아이네아스는 폴뤼도루스를 다시 엄숙히 장사지내주고 그곳을 떠난다.
셰익스피어는 바로 그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나무들이 말했다 하오’라고 맥베스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맥베스의 말을 마저 다 들어보자.
이일은 피를 보고야 말 것이오, 피는 피를 부른다고 하오
시신을 덮은 돌들이 움직였다고, 나무들이 말했다 하오.
점쟁이들의 전조들고, 숨겨진 인과의 거짓없는 법칙들은
까치나, 갈가마귀, 따까마귀를 통해 아무도 몰랐던 살인자를 폭로했다고들 하오.
지은 죄는 결코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심지어 나무들도 말하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 그걸 알았고, 그걸 말했다.
셰익스피어는 그것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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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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