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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인물 통찰: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


김종성 저 | 역사의아침


 


한국사를 수놓은 인물에 대한 양극의 평가를 제시함으로써
균형잡힌 역사 이해를 돕는 책

실존철학의 선구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의 코 위에는 보이지 않는 안경이 있다. 안경의 한 쪽은 끊임없이 사물을 확대하고, 다른 한 쪽의 알은 사물을 축소한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사물에 대한 균형적인 평가는 아무리 많이 배우고 공부한 사람이라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양극의 견해를 모두 검토하는 것이다. 『한국사 인물 통찰』은 한국사를 빛낸 18명의 위인들에게 쏟아진 양극의 평가를 살펴봄으로써 제대로 된 한국사 이해를 추구하는 책이다.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이라는 책의 부제에서 확인되듯 책에는 각 인물들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수록하고 있다. 조선의 시조 이성계, 그의 출신을 둘러싼 논란. 조선 최고의 학자 이황, 그는 과연 학문에만 전념한 대쪽같은 선비였을까. 김옥균이 친일파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긴 18인의 여러 가지 모습을 조망함으로써 균형잡힌 역사 이해를 추구하는 책이다.


 


올바른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김종성은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동양사를 전공했다. 월간 「말」의 동북아 전문기자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동북공정과 독도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의 날카롭고도 파격적인 평론은 선풍을 일으켰고, 북핵문제에 관해서도 지속적인 주목을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동북공정 기사와 사극 기사로 오마이뉴스 특별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동북아 코드』(2005), 『동북아 어떻게 볼 것인가』(2006)가 있다.


 


저자 서문

1 장수태왕
위대한 대고구려의 군주 VS 중국 천하에 수십 번 조공한 군주
강성해지는 중국 앞에서 실력을 취하여 국력을 유지하다
장수태왕 시대의 조공
장수태왕 시대의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
장수태왕이 중국에 바친 조공의 의미
‘무역전쟁’으로 고구려 경제를 지킨 장수태왕

2 강감찬
고려를 살린 구국의 명장 VS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다진 명장
요나라의 대약진을 막아 동아시아에 균형을 가져오다
고려-요나라-송나라의 동아시아 3자 구도
현상타파를 위한 요나라의 침략전쟁
귀주대첩의 역사적 의의
한류의 소재가 될 수도 있는 강감찬

3 공민왕
인정 많은 개혁군주 VS 냉혹한 정치기술자
대리인 신돈을 내세워 왕권강화를 추구한 정략가
오스만제국의 정치
술탄이 노예 출신을 대재상으로 내세운 이유
술탄-궁정노예 관계와 유사한 공민왕-신돈 관계
개혁가이기 이전에 정치가였던 공민왕

4 이성계
조선의 창업군주 VS 여진족 장군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
여진족이 왕실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있는 다민족국가, 조선
엘리트 여진족 청년일 가능성이 있는 이성계
『태조실록』과 「용비어천가」에 대한 사료비판을 막는 이유
이성계 조상들의 행적에 대한 의문
고려 조정에서 이성계를 중용한 이유
비주류 출신이라는 콤플렉스
한국은 다민족국가

5 정도전
서민 편에 선 개혁가 VS 사대부 편에 선 신권주의자
정도전의 개혁,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도전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정도전이 추구한 정치체제
재상정치론의 속뜻
왕권주의 VS 신권주의 구도의 실상

6 양녕대군
동생에게 양보한 형 VS 동생과 경쟁한 형
조선 초기의 왕권강화 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왕자
세자 교체 이전 양녕대군의 태도
‘양보’의 의미가 담긴 양녕대군이라는 호칭의 함의

7 신숙주
배신의 ‘숙주나물’ VS 유능한 외교관
세조를 도와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끈 탁월한 인재
신숙주를 평가하는 기준
신숙주가 조선사회에 바친 선물 ‘태평성대’
신숙주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전법’

8 연산군
‘묻지마’ 살인을 일삼은 폭군 VS 양반 사림세력을 견제한 왕권주의자
조선의 양반 사림들, 연산을 폭군으로 기록하다
조선시대 통치자가 가장 무서워한 대상
양반 기득권세력과 충돌한 연산군
연산군이 강경 일변도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9 윤원형
국정을 어지럽힌 외척 난신 VS 서얼 등용을 추진한 약자의 편
양반 기득권세력의 이익독점에 제동을 건 정치가
성리학 이념이 만들어낸 서얼차별
서얼해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
서얼허통에 대한 윤원형의 기여
윤원형에게 사심이 있었을까?

10 이황
학문에만 전념한 군자 VS 관계를 들락거린 소인
16세기 말 중앙 정계를 접수한 사림의 지도자
학자로서의 이황과 관료로서의 이황
죽기 직전까지 관계를 결코 떠나지 않은 이황
정치권에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 이황
이황이 갖고 있던 정치적 메리트
이황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9단’
이황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

11 광해군
개혁을 추구한 군주 VS 실패한 역사의 죄인
개혁 실패의 책임은 광해군에게 있다
개혁에 실패하고 권좌까지 잃은 광해군
광해군이 소홀히 한 첫 번째 주의의무
광해군이 소홀히 한 두 번째 주의의무
정치적 자충수들로 개혁에 실패한 광해군

12 김상헌
오랑캐에 불복한 비타협적 척화파 VS 살려고 신념을 꺾은 ‘실용주의자’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 병자호란 이후 조선 선비들의 표상
김상헌은 국세정세에 어두웠을까?
김상헌, 실제로는 국제정세에 매우 밝았다
‘무대 위’의 김상헌과 ‘무대 뒤’의 김상헌
김상헌, 청나라에 가서도 소신을 지켰을까?

13 송시열
효종과 함께한 북벌론의 주역 VS ‘마음’뿐인 북벌론자
서인의 집권 명분을 위해 만들어진 북벌론 신화
북벌과는 무관한 효종의 군비증강
정통성 문제에 시달린 효종
정통성 강화를 추진한 효종과 이를 견제한 서인세력
북벌에 대한 송시열의 실제 입장
효종시대 북벌론의 실체
예송논쟁의 전개와 북벌론 신화의 출현
생명력 질긴 송시열의 북벌론 신화

14 정조
조선 중흥의 르네상스 군주 VS 한· 중· 일 르네상스 경쟁의 낙오자
정조 시대에 한· 중· 일 경쟁에서 낙오하다
17∼18세기 동아시아 3국의 변화
일본이 조선을 추월한 시점
‘우물 안 개구리’, 정조의 르네상스

15 김대건
최초의 조선인 순교자 VS 프랑스 군함을 탄 서양세력의 도우미
조선정부는 사탄 마귀가 아니었다!
조선 침략을 부추긴 프랑스 선교사들
프랑스인들에게 이용당한 김대건
김대건의 죽음은 종교적 죽음인가 정치적 죽음인가

16 흥선대원군
꽉 막힌 강경 쇄국론자 VS 마지막까지 국제친선에 매달린 인물
내부정비가 덜 끝난 때에 서양을 만난 조선의 집권자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흥선대원군
이양선에 대한 흥선대원군의 태도
신미양요 직전 흥선대원군의 태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흥선대원군
연개소문 등은 칭찬하고 흥선대원군은 비판하는 이유

17 명성황후
고종을 조종한 여인 VS 어디까지나 남편의 후원자
개항 이후 조선의 정치를 움직인 몸통은 고종황제
명성황후와 민씨 일문을 앞세워 정국을 주도한 고종
실제로 주변 사람들을 이용한 사람은 고종
노련한 외교 전문가, 고종
이처럼 유능한 고종을 명성황후가 조종할 수 있었을까?

18 김옥균
친일파 VS 반청파
고종과 ‘이심전심’으로 반청을 실현하려 한 개혁가
한국인들의 복합적인 대일 감정
한恨의 정서와 친일파 개념
갑신정변의 본질은 친일이 아니었다
김옥균이 끌어들인 나라는 러시아
김옥균에게 친일은 수단에 불과했다

도판의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


 


일반인들의 상식과 달리, 역사학계에서는 ‘조공은 일종의 무역이었다’고 인식되고 있다. 조공은 일방적으로 바치는 게 아니었다. 조공은 예물 증정의 형식을 띠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가성을 수반했다. 그래서 조공을 받은 대국에서는 그에 대한 답례로 회사回賜를 했다. 회사란 답례로 하사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호 간의 예물 교환은 실질적으로 물물교환 형식의 무역이었다. (……) 그리고 장수태왕은 중국에 많은 조공을 제공함으로써 가급적 많은 회사를 얻어내려고 했다. 『삼국사기』는 장수태왕 60년(472) 7월부터 “북위에 보내는 조공이 전보다 배가 되니 북위의 회사도 더하였다”고 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더 많은 조공을 받으면 더 많은 회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장수태왕은 어떻게든 더 많은 조공물을 보내려고 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수태왕은 재위 59년(471)까지는 연평균 0.3회 조공을 한 데 비해 재위 60년(472)부터는 연평균 1.6회 조공을 했다. 그가 재위 60년(471)부터 조공 횟수를 늘린 것은, 그해부터 조공과 회사의 규모가 배 이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더 많은 무역상의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 조공 횟수를 늘린 것이다.
--- pp.31-32 '장수태왕'

한때 전도유망한 젊은 관료로 주목받던 이황의 관직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은퇴와 복귀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관직 생활이 순탄치 않았지만 그는 결코 관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그는 28세 때부터 69세까지 무려 42년씩이나 관계와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관복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이런 이황을 두고 관직 생활에 염증이나 회의를 느낀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황의 ‘이력서’를 놓고 볼 때, 그가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관직에 미련을 품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 p.180 '이황'

효종과의 독대 이전에 올린 두 건의 비밀 상소에서 송시열이 북벌론을 밝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기축봉사」(1649년)와 「정유봉사」(1657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봉사奉事란 비밀 상소를 말한다. 그러나 두 건의 상소 내용을 살펴보면, 송시열의 북벌론이 실상은 아무 내용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송시열의 글을 수록한 『송자대전』에 실린 「기축봉사」에는 ‘오랑캐를 물리치는 길이 나라의 근간을 바로세우는 일’이라는 주장이 있을 뿐 북벌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같은 『송자대전』에 실린 「정유봉사」도 마찬가지다. 이 글 어디에도 송시열이 북벌을 추진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다. 청나라에 대한 증오는 물론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뿐인 이야기였다. 다시 말해 송시열의 북벌은 현실적인 북벌이 아니라 ‘마음의 북벌’에 불과했다. 이런 생각은 당시의 선비들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치면 당시의 선비들은 모두 다 북벌론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233 '송시열'

조선의 르네상스가 진행되고 있던 정조 치세기에, 이미 조선보다 더 큰 수준의 르네상스를 치러낸 일본은 역지빙례라는 외교적 카드를 통해 조선에 대한 멸시감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 자신들의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에 깐 행위라 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문화를 전달해준 조선이 이제 더 이상 존경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에도에서 대마도로 빙례 장소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의 국력도 이미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재정적 부담을 무릅쓰면서까지 에도에서 성대하게 빙례를 열어주던 일본이 정조 때에 이르러 태도를 바꾼 것은, 이 시기에 양국 간의 힘의 역전이 명확해졌음을 의미한다.
--- p.251 '정조'

고종의 의중대로 러시아가 조선에 들어옴으로써, 조선에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카드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것이 고종 21년(1884) 10월 17일 ‘우정국의 불길’(갑신정변)이다. ‘우정국의 불길’의 기본적 목적은 대對중국 관계를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조선이 대중국 관계를 청산하고 자주독립을 찾기 위해 벌인 정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의 주된 목표는 ‘반중국’이었다. 일본공사관 병력을 끌어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반중국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친일을 한 게 아니라 반중국을 한 것이다. 
  --- p.310-311 '김옥균'


 


한국사를 바라보는 폭넓은 시야와
인간의 내면적 본질을 간파하는 통찰력으로
역사인물 18인에게 덧씌워진 신화를 벗겨내다!


장수태왕은 중국에 조공하지 않았을까? 강감찬은 ‘단지’ 고려 구국의 명장일까? 이성계는 한민족 출신일까? 정도전은 서민을 위해 개혁정치를 펼쳤을까? 양녕대군은 스스로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했을까? 이황은 관직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전념했을까? 김상헌은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소신을 지켰을까? 송시열은 실제로 북벌을 추진했을까? 정조는 한?중?일 르네상스 경쟁에서 승리했을까? 김대건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처형되었을까? 흥선대원군은 꽉 막힌 강경 쇄국론자일까? 김옥균은 친일파라서 일본과 손잡고 갑신정변을 일으켰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역사지식, 사서나 텔레비전 역사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역사상식 등을 바탕으로 어떠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답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한 『한국사 인물통찰』은 역사인물 18인의 말과 행적, 활동 당시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인물사 분야에서 왜곡된 측면들을 올바르게 재조명함으로써 역사의 본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해준다.

참신하고 도발적인 평가를 통해 18명의 역사인물 뒤집어보기

19세기 동아시아 통상관계와 한?중 관계사를 연구하며 한국과 중국에서 활발하게 저술, 학술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 김종성은 『한국사 인물통찰』에서 교과서나 사서에 의해 형성된 고정관념을 뒤집는 도발적인 평가를 통해 18명의 역사인물 뒤집어보기를 시도했다.

광개토태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장수태왕이 무역상의 이익을 위해 중국에 수십 번 조공하고, 요동의 지배자 요나라의 남진을 꺾음으로써 동아시아 전역에 평화구도를 정착시킨 영웅 강감찬이 ‘고작’ 고려 구국의 명장으로 축소되고, 태종에게서 ‘양보’를 뜻하는 한자 ‘양讓’이 들어간 군호를 받은 양녕대군이 실제로는 충녕대군(세종)에게 경쟁심을 가졌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한 대학자의 이미지를 띠고 있는 이황이 28세 때부터 69세까지 무려 42년씩이나 관계官界를 들락거렸고, 효종과 함께 북벌론의 기수로 알려진 송시열이 실제로는 북벌과 관련해 아무런 일도 추진하지 않았고, 조선 중흥의 르네상스 군주로 알려진 정조가 한중일 르네상스 경쟁에서 밀렸고, 한국 천주교의 개척자로 25세에 순교한 김대건이 조선침략을 부추긴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이용되어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죽음을 맞았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이 ‘친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중국’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군 병력을 끌어들였다는 사실 등 실제와 상반되게 알려져 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거나, 관점을 달리할 경우에 전혀 색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는 역사인물들에 대해 과감하게 해부의 칼날을 들이댔다.

이 책에 등장하는 18명 중에서 특히 강감찬·이성계·정조 등에 대한 재조명은 해당 인물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사 전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성계에 대한 재조명은 한국사의 근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물음표를 제기할 것이고, 강감찬·정조에 대한 재조명은 한국사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좀 더 넓히도록 촉구할 것이다. 또 공민왕·정도전·신숙주·연산군·윤원형·광해군에 대한 재조명은 역사인물을 평가할 때 일방적 찬사나 폄하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게 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김상헌이나 송시열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그들이 그동안 한국사에서 얼마나 ‘엉뚱하게’ 알려져 있었는지 알고 깜짝 놀랄 것이다. 그 외의 인물들에 대한 재검토 역시 흥미로운 역사탐구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기존의 평가 VS 새로운 평가

『한국사 인물통찰』은 수많은 역사인물 중 단지 18명만을 다루었는데, 이들 모두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이면의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인물들 중에 잘못 알려져 있거나 불충분하게 알려져 있거나 편향적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꽤 많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생기는 것은 사료를 근거로 하지 않은 역사서적 혹은 사료를 근거로 했더라도 관련 사료들을 균형 있게 다루지 않았거나 특정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이 쓴 역사서적을 통해 역사지식을 쌓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일본 사료를 배제한 채 한국 사료에만 근거를 둔 전기傳記를 읽고 이를 그대로 흡수했기 때문이다. 한국사에 등장한 인물 중에는 중국이나 일본과 관련이 있는 사람도 있고 또 그들의 행적이 중국·일본의 사료에도 일정 정도 나타나는데도, 한국 사료만 갖고 해당 인물을 평가한다면 ‘우낹 안 개구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해당 인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 수 있는 국내 사료와 함께 필요한 경우에는 중국사나 일본사의 연구성과까지도 소개하여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한국사 인물통찰』은 한국사에서 큰 활약상을 펼친 18인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바라봄으로써 외면적 현상에 미혹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그들을 평가하게 해줄 것이다. 나아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방식을 따라 사료에 나타난 해당 인물의 말과 행동, 이를 평가하는 사관의 태도, 당시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역사인물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필요한 응용력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새롭게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사극 속의 진실과 거짓

「이산」 「대왕 세종」 「선덕여왕」을 비롯하여 최근 몇 년간 열풍을 일으킨 텔레비전 역사드라마는 일반인들의 역사상식을 형성하는 데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한편에서는 이들 드라마의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들을 실제 역사사실로 인식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한 예로 「대왕 세종」에서 양녕대군(이제)은 요동 수복을 외치고 명나라 칙사 황엄의 밥상을 뒤집어엎는 등의 ‘멋지고 자주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허구에 불과하다. 태종 8년(1408) 4월 2일자 『태종실록』에 나타난 열다섯 살 이제(양녕대군)의 모습은 정반대였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세자 일행에게 개별적으로 회사回賜(조공에 대한 답례)를 주고 자작시인 찬불시를 선사한 데 이어 세자만 따로 불러 또다시 회사를 주었을 때 세자인 이제는 감읍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오늘날보다 훨씬 일찍 생산현장에 투입된 옛날에 열다섯 살이면 불의한 세상에 대항하거나 충분히 자기 주관을 가질 수 있는 나이다. 게다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더 고도의 특별교육을 받은 왕세자가 명나라 황제의 선물을 받고 감격했다면, 세자 이제의 의식 속에는 친명 사대주의가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표현된 요동 수복론자 양녕대군의 이미지는 순전히 허구라고 보아야 한다.

국가의 공식 사료와 각종 사서들조차 객관적인 사실을 완벽하게 전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처럼 드라마의 특성상 역사사실과는 무관한 내용이 픽션의 옷을 입고 여과 없이 대중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한국사 인물통찰』은 교과서와 사서, 역사소설과 만화, 역사드라마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자리잡은 우리의 역사인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해당 인물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개개의 인물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 한국사, 나아가 역사 전체를 올바로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이 책은 참신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전개해 인물의 내면적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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