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반과 토끼는 되새김동물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들을 되새김동물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A. 사반은 가나안 땅 바위 틈에 사는 ‘바위 너구리’라고 불리는 토끼 크기의 동물을 말한다. 영어 성경(NIV)에서 사반은 ‘coney’(레 11:5)로 번역됐다. 사반은 주로 사막 지역에 서식한다. 성경은 사반과 토끼를 되새김질하는 동물로 소개하고 있다(레 11:5∼6).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로는 기린·사슴류·낙타·라마·소·영양·양·염소 등이 있다. 이들은 위(胃)가 3∼5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사반이나 토끼는 여러 개의 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되새김질하는 동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성경은 왜 이들을 되새김질하는 동물이라고 표현했까? 사반과 토끼가 식물을 섭취하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오늘날 학자들이 말하는 반추동물과 비슷한 모습으로 새김질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토끼를 사육하거나 유심히 관찰한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을 오물오물거리는 이 동물의 모습을, 새김질하는 정결한 동물로 오해를 해서 사냥할 것에 대비해서 이 동물이 부정하다는 것을 정확히 규정해놓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또다른 관찰 보고도 있다. 산토끼는 가끔 자신이 누운 똥을 다시 먹는 경향이 있다. 이때 산토끼는 새로운 식물을 입으로 먹지 않고도 무엇을 섭취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 습성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 먹은 식물은 창자를 통과하면서 뱃속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에 의하여 처리된다. 그러나 아직 소화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그대로 똥으로 배출된다. 이때 다시 섭취된 똥은 두 번째 뱃속을 통과할 때는 훨씬더 잘 소화될 수 있다. 되새김질과 거의 같은 원리라 할 수 있다.
생물분류학은 18세기 크리스천 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에 의해 시작됐다. 되새김질하는 동물에 대한 분류는 바로 생물분류학이 시작된 이후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되새김질이란 오늘날 생물분류학을 염두에 둔 표현이 전혀 아니다. 단순히 새김질하는 동물처럼 그 입을 놀리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학문적 반추 동물이란 18세기 크리스천 분류학자 린네 이후 시작된 것이므로 수천년 전에 기록된 되새김이란 말을 훗날 만든 학문적 반추 동물에 적용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토끼의 되새김이 음식을 삼키고 밷든 그것은 분류학(taxonomy)이 말하는 반추 동물의 행동이 아니란 뜻이다.
사반과 토끼를 되새김 동물이라고 억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적용 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왜 위가 하나뿐인 토끼를 위가 서너개 있는 반추동물이라고 집착하는가? 반추동물이란 그저 성경 이후 사람들이 분류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 규정한 동물의 집단일 뿐이다. 후세의 학문적, 과학적 언어(반추동물)에다가 과거 하나님의 말씀(되새김)을 억지로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심각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집착은 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집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경의 권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그런 인간적인 근본주의적 집착으로 보호되는 이상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이 아닌 그 자체로 신적 권위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구체적인 과학서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글: 조덕영 목사의 국민일보 <믿음의 Q&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