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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는 살아 있다-29> 역대 조선총독 8인


[신간] <친일파는 살아 있다> 2011/11/07 11:55 정운현


일제는 식민지 대만과 조선에 일왕의 대리권자로 총독(總督)을 파견해 통치했다. 만주사변 이듬해인 1932년에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경우는 좀 달랐다. 총독을 파견하는 대신에 1908년 3살 때 청나라 ‘마지막 황제’ 자리에 오른 부이(溥儀)를 꼭두각시로 내세웠는데, 사실상은 관동군사령관이 실권자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한국통감으로 임명했다. 이토는 소위 ‘보호정치’를 표방했으나 사실은 전면 통치의 전초단계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1910년 마침내 한반도를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대한제국의 영토를 ‘조선’으로 개칭한 후 통감부 대신 총독부를 설치해 영구통치에 나섰다. 조선총독부의 수장인 총독은 일왕이 임명한 친임관으로 일왕의 대리권자였으며, 본국의 내각총리대신·각 부 대신 및 대심원 원장 등과 동급이었다.



경복궁 마당, 광화문 뒷편에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


군국주의시대였던 만큼 조선총독은 일본 육·해군 대장 중에서 임명되었는데 일왕에 직속돼 있어서 일본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게다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제반 정무를 통괄하는 행정권을 비롯해 군사통수권, 각종 법률 제정권(입법권), 사법기관의 구성 및 법관 인사권 등 사법권도 장악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왕직과 조선귀족 감독권도 갖고 있어 명실공히 한반도에서 ‘왕’과 같은 존재였다.

역대 조선총독 출신 가운데는 본국으로 귀환 후 내각총리대신으로 대개 승진할 정도로 조선총독 자리는 당시 일본 정계에서도 그 위상이 높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의열단에서는 조선총독과 2인자인 정무총감을 ‘7가살’의 제1호로 삼았다. 역대 조선총독들의 면면과 재임기간은 아래와 같다.


제1대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内 正毅, 1910. 10~1916. 10)
제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 好道, 1916. 10~1919. 08)
제3대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919. 08~1927. 12)
제4대 야마나시 한조(山梨 半造, 1927. 12~1929. 08)
제5대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929. 08~1931. 06)
제6대 우가키 가즈시게(宇垣 一成, 1931. 06~1936. 08)
제7대 미나미 지로(南 次郎, 1936. 08~1942. 05)
제8대 고이소 구니아키(小磯 國昭, 1942. 05~1944. 07)
제9대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 1944. 07~1945. 09)


1910년 8월 조선을 침탈한 후 한반도를 통치한 조선총독은 9대에 걸쳐 모두 8명이다. 이들 가운데 사이토만 유일하게 해군대장 출신이었고 나머지 7인은 모두 육군대장 출신이었다. 또 사이토는 제3·5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을 지냈다. 또 7대 미나미, 8대 고이소는 일제 패망 후 극동군사재판(일명 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각 개인별로 약술하면 아래와 같다.



사이토 마코토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병약한 2대 통감 소네(曾禰荒助)에 이어 3대 통감으로 부임했던 자로 1910년 한일병탄 후 앉은 자리에서 초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현직 육군대신이었던 데라우치는 총독부임 후 1916년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 전직할 때까지 혹독한 무단통치를 단행했다. 그는 특히 부임 초기 소위 ‘105인사건’을 꾸며 민족지사들을 대거 탄압했으며, 토지조사사업을 통한 경제수탈은 물론 조선의 민족정기와 전통문화 말살을 위해 51종 20여만 권의 책을 압수해 불태우기도 했다.

2대 하세가와는 이토 통감 시절 한국주차군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자로 데라우치에 이어 무단통치를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1919년 3.1만세의거가 일어나자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로 일본 내에서도 말썽이 돼 부임한지 3년만에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조선총독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어 순수한 무관으로 일생을 마쳤다.

하세가와에 이어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는 해군대장 출신인 그는 문사(文士)적인 이미지로 소위 ‘문화통치’를 표방했다. 그러나 ‘문화통치’는 3.1만세의거로 폭발한 조선민족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한 선전술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무단통치의 상징인 헌병경찰제를 폐지하고 대신 보통경찰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헌병경찰들을 예편시켜 보통경찰에 충원시키고 ‘1면 1주재소’ 방침을 세워 폭압기구를 확대 개편하였다. 또 자치제를 도입해 실시하였으나 이 역시 허울뿐이었다. 부임하던 날 그는 서울역에서 강우규 의사가 던진 폭탄을 ‘선물’로 받았다.

4대 야마나시는 예비역 육군대장 출신으로 평소 돈을 밝혀 ‘배금장군’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부임 전부터 조선총독 임명에 대한 배척운동이 일었으며, 육사시절 그의 단짝이었던 다나카의 도움으로 겨우 임명됐다. 그 후 부산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 미두거래소) 설립허가를 둘러싸고 5만원을 뇌물로 받은 사실, 소위 ‘야마나시 총독 독직(瀆職)사건’에 연루되어 사임하였는데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석방되었다. 총독 재임시절 본국과의 왕래 때 ‘배 타기가 싫다’며 울산과 여의도에 비행장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특이한 외모와 괴팍한 소유자였다.



우가키 가즈시게


6대 우가키는 1924년 이후 4 차례에 걸쳐 육군대신을 지낼 정도로 군부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이른바 ‘3월사건’과 워싱턴회의에서 군비축소에 합의한 것 등으로 군부 강경파의 반발에 부닥쳐 수상 취임에는 실패했다. 1931년 60대 중반 나이에 조선총독에 부임한 그는 젊고 경제 분야에 밝은 이마이다(今井田 淸德)를 정무총감으로 데려와 조선의 안정화 및 체제내화에 주력했다.

우가키는 우선 조선의 공업화를 추진해 장차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정신교화’라는 이름하에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를 적극 추진했다. 역대 조선총독 가운데 별로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는 5년간의 재임기간 중 가장 다양한 일을 한 총독이라고 할 수 있다.

7대 미나미는 사이토와 함께 조선총독의 얼굴격으로 통하는 사람이다. 1930년에 육군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육군대신, 관동군사령관을 마치고 1936년 예편과 함께 조선총독에 부임했다. 그는 ‘조선통치의 2대 목표’로 재임 중 일왕의 조선 방문과 조선에 징병제를 실시를 정했는데, 전자는 성사시키지 못했으나 후자는 이루었다.



미나미 지로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미나미는 전시체제를 빙자하여 사회통제를 한층 강화시켰으며, 지원병제도 실시 및 조선교육령 개정을 비롯해 ‘황국신민의 서사’ 제정, 일어 상용(常用),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조선총독 퇴임 후 추밀원 고문관으로 지내던 그는 일제 패망 후 전범재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았으나 가출소 후 사망했다.

8대 고이소는 전임 미나미가 다져놓은 체제를 바탕으로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조선을 ‘결전체제’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재임 중 그의 주요임무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 동원이었는데, 이를 위해 그 자신이 수시로 공장이나 광산을 방문해 작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바로 이 시기가 조선인들에게는 일제 기간을 통틀어 가장 고통스런 시기였다.

일제 패망 1년 전에 부임한 마지막 9대 총독 아베는 유일하게 수상을 역임한 자였으나 능력·개성 면에서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9월 9일 일본을 대표하여 연합국 대표 하지 중장에게 항복문서를 전달한 그는 아내와 손자 2명을 데리고 부산에서 80톤짜리 배에 짐을 가득 싣고 일본으로 달아나다 폭풍을 만나 물건을 다 버린 뒤 겨우 부산으로 되돌아오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참고로, 조선총독 이전에 한국통감을 지낸 자로는 초대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 1905.3~1909.6), 2대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1906.6~1910.5), 3대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内 正毅, 1910.5~1910.10) 등 3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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