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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쿨하게 '똥'으로 대동단결!


[어린이책은 똥이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김송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5-04 오후 6:01:01



    







어린이날 발행되는 '프레시안 books' 89호는 어린이 책 특집으로 꾸렸습니다. 열두 명의 필자가 어린이 책에 대한 특별한 생각마음껏 펼쳤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어린이 책은 무엇입니까? <편집자>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관계로 똥과의 필연적 유착관계에 빠져 있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내게 똥에 대한 추억이 더 남아 있는지 고민해 보았다. 떠올리니 고등학교 때가 단연 발군이었다. 그때는 똥 얘기가 우정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반 아이들은 방귀 하나도 화장실 칸으로 숨어들어가 뀌곤 했다.

하지만 아침 댓바람부터 등교해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주야장천 함께 지내다보니 생리 현상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부터 하나둘씩 '커밍아웃'이 시작되었다. 방귀며 똥을 수면 위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요새 변비야, 오늘은 밤고구마가 아니라 물고구마야(?!) 같은 대화가 일상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녀들은 일단 등교 때부터 '모닝똥'을 잘 만나고 왔는지 안부를 묻곤 했다. 쉬는 시간 틈틈이 똥과의 조우를 기다리기도 한다. 야간 자율 학습 때는 돌아가며 똥 계주도 한다. 괜히 두루마리 휴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쓰던 아이는 변의에 가득 찬 휴지 루팡들에 의해 개시 하루 만에 빈 휴지심을 보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우리는 그렇게 똥으로 대동단결했다. 생각해 보니 공부는 대체 언제 했던 건가 의문이 들 노릇이다. 아침을 똥으로 시작하는 데 모자라, 똥을 누는 중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는 종이 울려 곧장 짐을 싸 집으로 향하기까지 하는 날엔…….

계속 똥, 똥 하니 읽기 민망스러운가. 그러라고 일부러 똥, 똥 한 건데.

대학교에 와서 다시 똥과 멀어졌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똥에 대해 말하는 건 우리에게 남은 일말의 천진함임과 동시에, 요즘 세상이 그토록 강조하는 '쿨함' 이었다는 걸. 똥 얘기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찌질함'을 깨닫는 순간 커다란 부끄러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쿨한 게 별건가? 지질하지 않게, 자기를 툭툭 얘기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똥 이야기야말로 그 쿨함의 본질에 가장 가까울 게 분명했다. '똥'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배설의 비밀스러움, 부끄러움, 불결함을 까발리는 해방의 화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는, 그것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지음, 볼프 에를부르흐 그림, 사계절 펴냄).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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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리고 베르너 홀츠바르트가 쓴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사계절 펴냄)는 이토록 똥을 그리워하던 내 마음에 단번에 꽂힌 그림책이다. 이 책 역시 (과거의 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똥 얘기를 한다.

잠에서 깬 주인공 두더지의 머리 위에 의문의 동물이 똥을 싸고 간다(남의 머리 위를 배변구역으로 삼았다는 데서 '눈' 것이 아니라 '싼' 것으로 사료된다). 두더지는 뭉실한 똥을 모자마냥 머리에 쓰고 화를 씩씩 낸다. 그리고 똥의 주인을 찾아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각종 동물들은 두더지 머리 위의 똥이(대체 왜 그 똥은 계속 머리에다 올리고 다니는 것일까. 보고 있자면 거의 터번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자신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두더지 앞에서 새 똥을 싸 보여준다. 맙소사, 알리바이를 댈 것도 없이 바로 물증을 공략하는 치밀한 동물들! 남 앞에서 꺼리지도 않고 제 똥을 보여주는 무람없는 동물들! 똥을 싸는 동물들에게서도, 그 똥을 구경하는 두더지에게서도 일말의 혐오나 부담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파격적이다.

이 책을 보며 아이들은 '아이고 더러운 똥'이라는 생각보다 '와 얘는 이런 똥을 싸는구나' 생각도 하고 자기 똥도 한 번 다시 본다. 김수영의 시 '무서운 똥'에서 묘사하듯, 아이들은 "간혹 바짓가랑이 사이로 빠져나온 똥이 장난감 더미 속에 지뢰처럼 숨어 있기도 한데, 토마토를 먹으면 빨간 똥, 포도알을 껍질째 삼키면 까만 똥, 참외는 공이 아닌데 던지기하며 가지고 놀다 그것을 먹은 다음날은, 주먹밥 같은 된똥에 고명처럼 참외씨가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똥'은 아이에게 자신을 이해하는 첫 번째 관찰이자 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내밀한 얘깃거리로 기억될 것이다. 어른들이 '그건 지지야' 라고 저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그 순수한 관심을 보다가 민망해지는 건 결국 애들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똥을 감추는 인간이 된 걸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하루 종일 똥 얘기를 하던 때는 언제고 똥을 등한시하게 된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만큼 '쿨'한 존재가 또 없었다. 반면 똥은커녕 순간의 감정이며 표정까지 숨기려드는 나는, 정말 얼마나 작은 인간인지. 여기저기서 '쿨함'을 강요받으며 울컥 끓어오르는 날 가리다 보니 도리어 진정한 멋짐은 완전히 잃고 말았구나. 똥을 더럽다고 가르치고 똥 얘길 삼가는 바보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자극적인 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꾸준히, 그리고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스테디셀러다. 나는 그 사실이 반갑기 그지없다. 혹자는 다양한 동물과 그들의 똥 모양을 알려주는 책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주인공 장님 두더지가 세상에 무지한 어린이를 비유하는 존재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에 그렇게 깊은 의미가 담겼는지 어떤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아이들에게 꼭 맞는 이야길 들려준다는 것이다. 똥을 하나도 우습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그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라니. 저자인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다정한 현명함이 돋보인다.

'화장실 개그'가 저질 농담의 축에 드는 이 세상에서 '똥'을 귀엽게 얘기하는 것은 얼마나 큰 재능인가. 솔직해서 '쿨'한 것이 아니라 무신경해서 '쿨'한 사람들에 비해, 풀밭에 똥을 싸는 이 동물들이야말로 진정 '쿨'한 생명체들 아닌가. 머리에 똥을 얹은 두더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순수의 시절을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 순수의 시절을 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나의 어린 시절도 사랑한다.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간직했던 자연스러움을 사랑한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진정, 쿨한 책이다.

 





     

/김송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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