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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임지현) 책 리뷰

2012/02/29 20:09



복사 http://blog.naver.com/finggg73/140153601906


전용뷰어





 


 



 


저는 2001년 출간되었던 임지현 교수의 『이념의 속살』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키워드는 ‘일상적 파시즘론'이었습니다. 이 이론이 제시되었을 때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로 군부독재와 그로 인한 파시즘은 종식되었다고 생각하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지현은 아직 파시즘이 끝나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파시즘이라는 것이 정권, 제도의 측면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사고, 생활양식 등 우리 일상의 전국면을 통제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나선 것입니다. 


일상적 파시즘론과 연계되는 대중독재론(합의독재론 concensus dictatorship)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여태껏 군부독재는 '절대악'으로, 고통받는 민중은 '절대선'으로 상정되어 왔는데, 임지현은 나치 독재가 그러했듯 우리의 군부독재 역시 민중의 동의가 없었다면 그 유지가 불가능했다고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저항하고 투쟁하는 민중의 신화에서 벗어나, 지배 헤게모니에 포섭되어 권력에 갈채를 보내는 민중의 또다른 존재방식”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좌파진영은 분노했습니다. 진중권은 “애꿎은 민중”을 파시즘의 원흉으로 삼았다며 즉각 반격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비난이 더욱 커진 것은 조선일보에서 임지현의 주장을 크게 다루면서부터입니다. 사실 대중독재론은 조선일보에서 크게 반색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군사독재의 동조자였던 보수언론 입장에서 대중독재론은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논리였던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임지현의 문제제기를 상당히 의미있게 생각해왔습니다. 그 논의의 역기능을 감안하더라도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2010년 출간된 임지현의『세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편지』를 읽었습니다. 논조는 계속 유지하되 사유가 풍부해지고 깊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주장이 초기에 가졌던 불필요한 논란에서 벗어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제기했던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습니다.


 


 ‘일상적 파시즘’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해서 사회경제의 구제를 바꾸고 체제를 변혁한다는 발상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 고민했던 거지요. 마르크스주의에도 이런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수직적인 ‘지배’의 아비투스를 수평적인 ‘우애’의 아비투스로 대체해야 한다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혁명론도 그렇지만, 말년의 엥겔스가 혁명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점령했던 방식대로 일어나야 한다고 했을 때 그의 흉중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제일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서구의 나찌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저자는 나찌를 절대적 악의 상징으로 내모는 서구의 태도에 거부감을 표합니다. 당시 유럽의 선진제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제국주의적 확장에 골몰하면서 인종주의적 학살에 동참했습니다. 예컨대 벨기에는 식민지 콩고에서 레오폴드 2세의 재위기간(1865-1909)을 중심으로 1885년부터 1920년까지 불과 30여 년 사이에 무려 1,000만명이 넘는 아프리카인을 학살했습니다. 독일 역시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많은 아프리카인을 학살했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유럽 식민주의의 넓은 맥락 속에서"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로 보아야 것이지만 서구의 역사가들은 이런 부분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찌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만이 천인공노할 학살로 묘사되었습니다.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정합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히틀러가 더 괘씸한 것은 반인류적 범죄에 더하여 백인이자 같은 유럽인인 슬라브인과 유대인을 오리엔트화하고 같은 유럽인들을 식민화하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거지요. [...] 즉 나치 독일의 괘씸죄는 유럽의 식민주의가 유럽의 외부에서 ‘문명화 사명’을 완수하려한 데 반해, 유럽의 내부에서 ‘문명화 사명’을 수행하려 했다는 겁니다. 그것은 ‘유럽인’에 대한 명예훼손인 셈이지요.


 


저자는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유대민족의 시오니즘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에 따라 20세기 초부터 팔레스탄으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이런 시오니즘에 동참하지 않은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시오니즘 지도자들이 나찌의 홀로코스트를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를 거부하고 독일인으로 행세하며 동화되기를 기대했던 유럽의 동화주의 유대인들에 대한 천벌”로 보고 되려 홀로코스트에 협력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오는 것마저 부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웅적인 시온주의 전사들에 비해서 온갖 굴욕과 상처가 몸에 각인된 이들 생존자들은 좋은 인적 자원이 아닐뿐더러, 시온주의와 민주주의, 키부츠의 건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나찌의 게르만 순수혈통주의에 그토록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유대인의 혈통주의에 대한 반성이 부재하는 것도 지적합니다. 그 자신 유대인이었던 저명한 지식인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적 관습법이 반영된 이스라엘의 민법이 아리아인과 유대인의 통혼과 섹스를 금지한 뉘른베르크법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민족주의 폐해에 대한 비판도 여전합니다. 한일간의 관계는 민족주의에 관한 한 “적대적 공범관계”인데 왜냐하면 “일본의 (한국) 민족주의 비판이 한국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또 역으로 한국의 (일본) 민족주의 비판이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의도하지 않은 공범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순환이 될 수 밖에 없으니 민족주의라는 틀 자체를 벗어버리자고 주장합니다.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탈국가적)한 시선”으로 보자는 거지요.


저자는 민족주의가 지식인들이 박정희 독재정권에 동조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주장입니다. 저자는 박정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내내 군사독재에 대한 가장 비판적인 잡지로 알려진 장준하 씨의 <사상계>가 당초에는 5 16 군사정변과 당신을 지지한 것도 놀랍기는 하지만, 당신의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구호와 인민주의적 태도가 지닌 호소력이 그만큼 컸던 거지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가 주동이 되어 김지하 시인이 기초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도 사실은 그들이 애초 당신에 대해 가졌던 기대감의 반영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어요.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배반감도 그만큼 컸던 거지요. 나중에 이들 ‘민비연’ 멤버들의 상당수가 다시 당신의 부름에 응해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기도 하는데, 그 역시 이들이 돈과 권력에 몸을 팔았다는 단순 도식으로 설명하면 곤란할 것 같아요.


 


저자는 "빅팀 마인드 내셔널리즘(victim mind nationalism,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이스라엘의 젊은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총기를 난사하는 의식의 근저에는 기본적으로 희생자 의식이 자리잡고 있어서라고 지적합니다. '다시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서 강한 국가가 있어야 하고,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 정도 희생은 필요하다'는 생각, 혹은 '우리는 홀로코스트로 600만이 죽었는데 팔레스타인인이 죽어봤자 고작 몇이나 죽었는가'라는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의 젊은이들 역시 일본인에 대해 유사한 심리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근래 가장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저자가 그 동안 정말 성실하게 연구를 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강단의 아카데미즘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사회적 이슈에 적절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학자가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요.  


 


* 임지현 교수는 일상적 파시즘론을 고안하게 된 배경에 대해 한 주간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DJ 정권 때 박정희기념관 설립 사업이 발표되고 진보학자들이 반대하는 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 그때 제 생각도 그 진보학자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독재라는 건 소수의 나쁜 놈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강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나갔고 물론 비판했죠. 저는 그 심포지엄이 끝나면 한국사회가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반대할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증가하더라고요. 누구는 그게 프로파간다 때문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이건 뭔가? 소수가 독재를 하는 게 아니고 독재에 대한 어느 정도 대중의 동의나 지지가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럼 가설적으로 대중의 동의와 지지 아래 근대 20세기 독재가 이뤄졌다는 의미에서 '대중독재'란 말을 써보자. 그렇게 그 말을 만들어 냈죠.(주간한국 201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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