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김형우 기자]

공민왕은 왕비의 불륜으로 인해 살해당했다?

정통사극의 귀환을 알리며 호평을 받고 첫 출발한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1,2회에선 공민왕(김명수 분)이 개혁 의지를 다시 불태우려는 시점에서 살해를 당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민왕은 숱한 사극에서 등장한 인물. 사극 뿐 아니라 한국 역사에서도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왕이다. 하지만 공민왕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망국의 길에 들어선 고려를 다시 일으키려다 반역자들의 손에 참변을 당한 개혁군주라는 시선과 아집에 둘러쌓인 채 남색을 즐기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군주라는 시선이다.

대중들이 배운 공민왕의 죽음은 실상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개혁의지가 꺾이자 반대파들에 암살을 당했다라는 것이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공민왕의 죽음이다. 공민왕은 과연 어떻게 죽었을까?

●개혁 아이콘 공민왕은 왕비 불륜과 동성애 때문에 죽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민왕을 암살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공민왕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친위대인 자제위에 의해서다. 자제위는 고려 귀족들의 자제들로 구성된 무장친위단체다.

고려사는 공민왕이 자제가 없는 것을 두려워해 자제위의 홍륜을 비롯한 측근들에게 자신들의 왕비와 관계를 맺도록 강요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네 왕비 중 정비(定妃)·혜비(惠妃)·신비(愼妃)는 목숨을 걸고 거부했으나 익비(益妃)는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홍륜과 관계를 맺었고 결국 임신을 하게 됐다. 공민왕은 임신 사실은 반겼으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홍륜 등을 죽이려 했고 이를 먼저 눈치 챈 홍륜 일파가 공민왕을 급습, 암살했다.

이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닮은 듯 다른 듯 이를 묘사했다. 드라마 '정도전'에선 고려사와 달리 공민왕이 홍륜과 익비의 계속된 불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그리고 있다. 영화 '쌍화점'에서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홍륜과 익비의 사랑에 질투를 느끼게 된 공민왕이 홍륜을 죽이려다 살해당하는 전개가 다르다.

공민왕의 죽음에 대해 또 하나의 키워드는 '동성애'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민왕은 귀족들의 자제들(자제위)들을 불러 동성애를 즐겼고 이로 인해 후사에 대한 걱정을 해 왕비들을 측근들과 관계를 맺도록 강요했다고 설명한다.

●공민왕이 평생 잊지 못한 노국공주

공민왕의 이와 같은 돌발행동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공민왕은 초중반 시절만 해도 자주권 회복과 내정 개혁에 온몸을 받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갑작스레 동성애에 빠지고 후사를 걱정할 만큼 왕비들과 문제를 일으킨 점은 사뭇 이해하기 힘들다.

이에 대해 일부 사가들은 개혁의지가 꺾이면서 찾아든 자괴감과 함께 아내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출신 왕비다.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다. 아들이 우선이 되는 유교관과 달리 몽고는 아들과 딸은 물론 사위까지도 가족으로서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 고려가 원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지배를 받은 타 국가에 비해 그나마 나은 대접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고려 왕자는 원나라 공주와 전략공주를 계속 해왔고 노국공주 역시도 이와 같은 케이스로 고려 왕자와 결혼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후대에도 언급될 정도로 부부애의 대표 상징이 됐다.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후대인 조선시대 세종실록에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대하듯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안정복 '동사강목'에도 공민왕에 대해 "노국공주가 훙서하매 마음이 더욱 기울어져 희노애락이 중용을 잃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익 '성호사설' 제 11권에도 "공민왕이 공주를 추모하여 손수 그 영정을 그려 놓고 밤낮으로 슬피 울며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고, 무릇 공주를 위한 일이라면 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서술했다.

개혁의 도구였던 신돈의 실각과 노국공주의 죽음이 바로 공민왕의 후기 이상행동의 이유가 됐다는 것이 여러 사가들의 설명이다.

● 공민왕의 폐악, 사실 아닌 역사 왜곡 주장도

하지만 이런 공민왕의 폐악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는 고려사라는 사료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반문에서 시작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조선시대에 사관들이 실시간 작성했던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달리 후대인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고려를 뒤엎고 개국한 조선으로선 정당성을 위해 고려가 무너져야만 하는 이유가 부각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특히 유교를 기반으로 갖춘 조선 사대부들이 고려시대 군주들의 폐륜을 부각시킴으로서 고려를 악의적이게 묘사했다는 말이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이 고려시대 후기로 갈수록 고려 왕들의 강간 폐륜 근친 등이 부각되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는 설명이다. 공민왕 역시 이런 조선시대 사대부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표현됐을 것이며 이처럼 공민왕의 동성애나 이상행동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쉽게 설명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가지는 사료로서의 신뢰성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사진=KBS 1TV '정도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