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紙背)를 철(徹)하라

seyoh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5.2.28
<새벽의 인문학>을 읽고 있다.
그렇게 새벽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중에 문득 저녁에 관한 인상적인 서술 하나가 떠오른다. 김훈의 <흑산>에서 읽은 것이다.
저녁에 빛들은 수평선에 내려 앉았다. 수평선은 눈동자 속의 선이고 물 위의 선이 아니라는 것이 물가에서는 믿기지 않았다. 시야의 끝에서 물과 하늘이 닿는 허상이 펼쳐졌으나, 닿아있는 자리에서 물과 하늘 사이는 비어 있어서 수평선은 아무런 선도 아니었고 그 너머에는 또 다른 수평선이 지나갔다.
빛들이 더 먼 쪽 수평선으로 몰려가면서 바다는 어두워졌다. 달이 없는 밤에는 보이지 않는 물의 소리만 들렸다. 먼 어둠 속을 달리는 물소리가 섬의 연안으로 다가왔다. 시간의 바람이 물을 스쳐서, 물과 시간이 섞이는 그 소리에는 아무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았다.
귀기울이지 않아도 물소리는 정약전의 몸 속을 가득 채웠고......
(<흑산>, 김훈,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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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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