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에 드는 책

seyoh
- 작성일
- 2018.5.31
고기로 태어나서
- 글쓴이
- 한승태 저
시대의창
고기로 태어나서
이 책은?
여기 사람이 먹거리로 키우는 동물들이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한승태의 노동 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 이다.
제목이 시니컬하다.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운명은 고기로 사람에게 먹히는 것이니, 고기로 태어난 게 맞다. 그래서 제목의 함의는 무척 아프다. 그 고기들을 먹고 사는 우리들에게도.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고기로 태어난 생명들이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나며, 길러지고, 그 마지막으로 사람의 식탁에 오르게 되는가를 아주 작정하고 잠입 취재하여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행인가, 불행인가?
아니, 애시당초 사람이든 짐슴이든 생명을 지니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 행인가, 불행인가?
생명으로 태어나, 공기만 먹고는 살 수 없으니, 불가불 식물 또는 동물을 몸 안으로 흡수 소화해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하는데, 그게 문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먹어야 하는데, 그 ‘먹거리’가 문제다.
이 책에 실린 동물 먹거리는 개, 닭, 돼지다.
저자는 그런 먹거리들이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알기 위해 먹거리의 공급처인 양계장, 돈사, 견사의 일꾼으로 들어가, 생생한 현장을 체험한다.
먹거리도 생명인지라, 먹고 싸고 해야 하는데, 그 수발(?)을 들으면서 그 각각의 모습을 글로 담아 온 것이다.
닭고기를 체험하기 위해 저자는 산란계농장, 부화장, 육계농장에 들어가 일을 했고, 돼지고기를 알아보기 위하여는 종돈장, 자돈 농장, 비육 농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또한 개고기를 파헤치지 위하여 두 군데의 개농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 이 책은 저자의 땀에 아주 푹 절은 책이기도 하다,
이런 실상 알아두자.
닭고기에 관하여는,
닭을 기르는데 케이지에 넣고 키운다, 좁은 철장 안에 네 마리 닭을 키우고 있는데, 그 안에 있는 닭들은 서로 서로 쪼아대며 살아간다. 그런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철창이 가두고 있는 것은 닭이 아니라 가장 유해한 종류의 광기인 듯싶었다.>(19쪽)
<털은 죄다 뽑혀서 이리저리 쪼이고, 닭들이 지들끼리 막 쪼는 거 봤죠? 그게 좁아서 스트레 받아서 그러는 거예요.>(30쪽)
병아리를 키우는데, 표준에 미달하는 병아리들은 죽여야 한다. 사료값을 줄이기 위하여.
목을 잡고 비틀어 죽이는데, <그 느낌을 참을 수가 없다. 손가락만한 병아리가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그 느낌을.>(100쪽)
일일이 인용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글로 옮기기도 어려운데 실제 손으로 병아리 목을 비틀어 죽여야만 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런 상황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될까?
돼지고기의 경우
<- 모돈은 출산을 몇 번이나 하나요?
- 그것을 모돈 회전율이라 하는데 우리는 1년 2.4회야. 대개 출산을 일곱 번 하면 노산이라고 해서 산자수가 줄어들어. 그럼 생산성이 떨어지지. 그래서 7산하면 끝이지.>(165쪽)
회전율, 생산성, 모두다 중립적인 용어지만, 여기에서 쓰일 때는 인간의 욕심이 들어있는 잔인한 성격을 가진 단어로 바뀐다.
모돈은 스톨이라는 방에 갇혀 일생을 산다. 움직임이라고는 분만사로 옮길 때뿐이다.
그래서 모돈은 1년에 40분만 걸어다닐 수 있다. (168쪽)
사람을 가둬놓고 일 년에 40분간을 걸으라고 허용해 준다면?
<모돈은 동사가 필요없는 삶을 산다. 스톨이 허용하는 폭 안에서 ‘뒤돌아보다’ 라는 말도 필요없다. 모돈이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일어서거나 눕는 것뿐이다.>(208쪽)
자돈(어린 돼지)를 키우는데 역시 효율성이라는 잣대는 적용된다, 그래서 표준에 미달한 자돈은 죽는다. 어떻게 죽이는가?
<다리를 잡아서 들어 바닥에 패대기치면 끝이었다.>(187쪽)
저자의 표현은 아주 적나라하다. 한편으로는 유머가 들어있기도 하다.
거세를 하고 난 다음의 돼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거세를 마친 자돈은 소독약을 바른 다음 해부학적으로 한결 더 가까워진 자매들 곁으로 돌려보냈다.>(205쪽)
개고기의 경우.
개고기의 경우는 이 말로 대체하련다. 당신이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다시 이 책은?
식용동물의 삶은 사육, 수송, 도살,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사육 즉, 동물이 고기로 태어나서 도축장으로 보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내용은 비위가 약한 사람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대목이 많이 등장하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야 한다. 그러나 설령 비위가 약하다 할지라도 읽어야 한다. 식탁에 오른 고기를 볼 때 마음이 아프더라도, 혹은 욕지기가 날지라도,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
우리와 고기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중에, 다른 책 - 『슬픈 날엔 샴페인을』 정지현 - 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났다.
<짐승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사람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모든 짐승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사람들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시애틀 추장의 편지) (『슬픈 날엔 샴페인을』, 정지현, 57쪽)
시애틀 추장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짐승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외로움도 외로움이지만, 먼저 굶어 죽거나 영양결핍으로 인해, 사람 사는 게 이상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남의 고통은 언제나 견디기 쉬운 법이다.> (395쪽)
저자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헛소동>에서 인용한 말이다.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면서, 이 말을 읽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 말을 읽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은 있는데, 그 고통을 동물에까지 연장하여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그것들을 고기라 불러도 좋다. 키워서 잡아먹어도 좋다. 다만 한 가지. 그들이 자라면서, 죽으면서 느끼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면 어떨까?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