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에 드는 책

seyoh
- 작성일
- 2021.12.30
셔기 베인
- 글쓴이
- 더글러스 스튜어트 저
코호북스
셔기 베인
셔기 베인(Shuggie Bain), 사람 이름이다.
아직 청년이라 부르기 애매한 나이인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킬페더 슈퍼마켓이다.
일한지 어언 일년이 넘었다. 매주 생활비와 방세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슈퍼마켓 말고는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곳에서는 근무 시간이 워낙 짧아 셔기는 일하면서 틈틈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의 나이, 지금 열 여섯에 석 달밖에 되지 않았다.(15쪽)
이 정도 정보를 통해 그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정상적인 아이는 아닌 듯하다.
더구나 혼자 거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 그렇다. 혼자 살고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니, 그의 부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
그게 이 소설의 시작이다. 이제 그의 뒤를 따라가보자.
어두컴컴한 셋방에서 사는 그의 모습이 소개된다.
어울리지 않는 이불과 침대보를 쓰다듬으며 셔기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셋방의 침대에는 색깔과 무늬가 전부 제각각인 흉한 침구가 창피를 모르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었다. 어머니가 봤으면 질색했을 거라고 셔기는 생각했다. 이렇게 너절한 모습은 어머니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을 것이다. (17쪽)
그의 생각을 따라가보면, 그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아들의 침구가 흉하게 보이면 질색하는 어머니, 그런 너절한 모습을 보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어머니가 있다. 그에게는.
이 책의 주인공 셔기는 그렇게 이 소설의 첫장에 등장한다.
그게 1992년이고, 장소는 영국의 사우스 사이드다. 글래스고 지역이다.
다음 장면에서 소설은 그 시간으로부터 11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장소는 사이트힐이다. 역시 글래스고 지역.
셔기는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 나이는 다섯 살이다.
감질나게 하고 싶지 않으니 그의 가족 모두 소개한다.
셕 베인 : 셔기의 아빠
애그니스 베인 (39세) : 셔기의 엄마
캐서린 베인 (17세) : 셔기의 누나
릭 (알렉산더) 베인 (15세) : 셔기의 형
셔기 베인
그러니 집안의 막내가 셔기 베인이다.
미리 말해둔다. 셔기는 막내지만 집안의 기둥이 된다.
누나와 형은 집을 떠난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지 오래 되었고.
대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 식구들이 줄줄이 집을 나간단 말인가?
그게 바로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집안 식구들이 가출, 아니 탈출하는 것을 기록한 탈출기이다.
왜 어머니와 셔기만 집에 남고 나머지 식구들은 줄줄이 집을 탈출하는 것일까?
그전에 잠시 영국이란 나라의 형편을 살펴보자. 이 가정이 살아가야 하는 나라 영국의 형편이 이렇다.
대처가 정직한 노동자들을 버렸으며 테크놀로지와 원자력과 사보험에 미래를 걸었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66쪽)
저기 탄광은 오래전부터 죽어갔어, 일자리라고는 이제 눈을 씻고 봐도 없구. (158쪽)
그런 형편이니, 일자리가 없어서 남자들을 펑펑 놀고 있고, 대신 엄마들이 짐을 지고 살아간다.
여자들 모두 집에 남자가 있었다. 적당한 일거리가 부족해서 소파에서 썩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37쪽)
여자들이 아등바등 먹고 살기 위해 애를 쓴다.
당시 영국의 어머니들은 그랬다.
셔기의 외할머니가 셔기의 어머니 애그니스에게 한 말이 단적으로 그걸 말해준다.
애그니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가야 한다.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살아가야 해. 엄마들은 그렇게 사는 거다. (256쪽)
이 지긋지긋한 곳을 탈출할 거야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과 누나가 있는 집의 막내로 셔기는 자라고 있다.
그의 누나와 형이 나누는 대화, 잠시 들어보자.
넌 훌륭한 화가가 되고 난 결혼해서, 우리 둘 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탈출할 거야. (98쪽)
셔기의 누나 캐서린이 셔기의 형인 릭 (알렉산더)에게 한 말이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
왜 그집을 지긋지긋하다고 하는 것일까, 왜 탈출이라는 험악한 말을 하는 것일까?
그 말대로, 캐서린은 훌쩍 떠나버린다. 그것도 영국 어느 곳이 아니라 저멀리 남아공으로 가버린다. 더 이상 그 집에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면 그의 형 릭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취미인 형은 집안에 있어도 그의 마음은 항상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릭은 다른 방에 있었다. 벌써 미술도구 가방을 열고 맨바닥에 누워서 창밖으로 보이는 검은 언덕을 목탄으로 그리고 있었다. (.......) 언제 어디서든 자기만의 세상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아들의 능력이 부러웠다. (145쪽)
집안에 있으면서도, 몸은 집안에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해서 집안에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은 오직 셔기뿐이다.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오직 셔기뿐이다.
형은 셔기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니, 어머니를 감당하는 일은 오직 셔기의 몫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형 릭은 미술 학교에서 합격했으니(205쪽) 오라고 해도, 가지 못하고 집에 남아있는 것을 택한다. 그러나 일은 ......
어머니 애그니스가 자해를 하는 소동을 일으키고 난 후, 릭의 심정을 들어보자.
나는 엄마랑 셔기 둘 다 챙길 수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엄마, 내가 늘 모두를 지킬 수는 없잖아요. (462쪽)
셔기! 너한테 할 말이 있어. 흘려듣지 말고, 새겨들어, 알았어?
자, 이제 네가 이 집 가장이야.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른 노릇을 해야 해. 네가 엄마 돈을 관리해. (490쪽)
형이 셔기에게 하는 말이다. 결국, 그는 집을 나가 독립을 한다.
이제 엄마와 셔기만 집에 남게 된 것이다.
대체 셔기의 엄마는 어떤 엄마?
술을 마신다. 그녀는 술에 쩌들어산다. 술을 먹으면 말 그대로 끝장을 보고야 만다.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 정도가 된다. 그렇게 살다가 남편인 셕이 떠나고 딸도 못견디고 일찍 집을 나가려고 결혼을 한다.
난 네 엄마처럼 예쁜 아주머니는 첨 봤어, 나한테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정말 자랑스러웠을 거야. (298쪽)
셔기가 우연히 만난 동네 소녀가 한 말이다.
그렇게 미모가 출중하니, 그 동네 남자들이 집안에 들락거리며 셔기를 귀찮게 한다.
그러나 셔기에게 엄마란?
우리 엄마는 많이 취한 다음에 많이 화가 나.
엄마가 스스로를 다치게 할까봐 겁이 무서워. (299쪽)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린 다음 날에도 그녀는 가장 좋은 코트를 입고 세상을 마주했다. (372쪽)
애그니스는 자기 자신을 잊으려고 술을 마셨고, 고독과 고통을 달리 어찌 견딜지 몰라서 술을 마셨다. 주유소는 애그니스를 해고했다. (448쪽)
그렇게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홀로 시들어가다가 ....
셔기의 소원, 엄마가 이랬으면...
아이들은 어머니만 있으면 행복했다. 맨정신인 어머니와 어머니의 금주가 불러온 평화면 충분했다. (323쪽)
애그니스가 유진이라는 남자를 만나 금주를 하기 시작했을 때, 잠시 동안 아이들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유진도 그녀 곁을 떠난다.
난 그냥 엄마랑 있고 싶어요.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곳으로 엄마를 데려가고 싶어요. (366쪽)
다시, 이 책은?
셔기는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나쁜 사람이 분명하다. 셔기네 가족을 못살게 하는 건 저자다. 그 가족을 끝까지 괴롭힌다. 애그니스를 갱생의 길로 인도하는 척 하더니 끝내 내팽개치질 않나, 셔기 그 불쌍한 애를 집안에서도 힘들게 굴리더니 학교에서도 친구들도 한 명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고, 더군다나 이사간 집에서는 옆집 아이들이 행패를 부리도록 설정을 해 놓다니, 정말 너무 하지 않는가?
이런 푸념이 저절로 나온다. 그 정도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게 된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후원 성금을 보내달라는 TV 광고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짠하다. 해서 그의 계좌번호를 알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내가 얼마라도 보내줄테니, 힘내라 셔기야! 하고 돈도 보내고 싶어진다.
그러니, 저자가 얼마나 글을 잘 썼는지 알겠다.
그런 마음이 들도록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제각기 맡은 역을 충실하게 해내서, 대처가 집권하던 시기의 영국 국민들, 특히 하류층의 먹고 사는 것, 살아가는 것을 잘 묘사해 내었다.
특히 희망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루하루가 지옥인 사람들이 그 지옥에서 어떻게 버텨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셔기, 그 지옥에서 잘 버텨내었다. 잘 했다. 잘 쓴 소설이다.
그러니 상도 받았지 않았을까, 이 작품으로 저자는 2020년도 부커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아마도 수상소감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셔기’들에게 힘내라고 외쳤을 것이다.
뭐 멀리 갈 것 없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살아가는 모든 ‘셔기’들이 이 책 읽고 힘을 내어 살아가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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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