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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해서 무섭다


세기말이 평온하게 지나가면서 등장하는 할리우드 심령 공포영화들의 대부분은 시시하게 끝났다. 그리고 데이빗 S. 고이어의 <언데드>가 이 목록에 당당히 합류했다. 세상 종말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악마나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개성 없이 풀어내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언데드>는 시작부터 좋지 않다. 도입부를 보자. 여주인공 케이시가 조깅을 한다. 숲을 끼고 있는 길 한 가운데서 장갑을 줍는 그녀. 뒤를 돌아보니 사람 얼굴의 가면을 쓴 개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시체처럼 창백한 소년이 등장한다. 케이시는 불안한 기색으로 숲으로 들어가게 되고, 굉음과 함께 꿈은 끝난다. 악몽으로 시작하는 공포영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시도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내용을 가지고 쓸데없이 장난을 치면 맥이 빠진다. 더 나쁜 것은 <언데드>가 이런 효과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데 있다.


영화는 케이시의 몸을 통해 태어나려는 악령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악령은 시도 때도 없이 케이시를 괴롭히고,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의 원인을 추적한다. 이 과정이 지루하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비밀을 밝혀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낸다. 궁금했던 것은 악마가 왜 케이시의 몸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려고 악을 쓰는 지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 악마는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강탈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있고, 내키면 그냥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새로 태어나서 착하게 살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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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로서 명성이 높은 데이빗 S. 고이어가 <언데드>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를 모르겠다. 공포를 주고자 했다면 완전 실패다. 이 영화에서는 어떤 공포도 느낄 수 없다. 창의력 제로의 싸구려 공포 연출들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한다. 영화 포스터에도 쓰인 욕실 장면은 가장 나쁜 예로 꼽을 만하다. 장르 클리셰는 잘 쓰이면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지만, 개념을 상실하면 비웃음만 돌아간다. 악령은 두렵고 무서운 게 아니라 짜증스러울 뿐이고, 무리하게 끼어 맞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인체 실험 행위의 설정은 가관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심할 정도로 지루하다. 고작 87분에 불과한 러닝타임이 마치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다.


데이빗 S. 고이어는 각본가로서는 1류 작가이지만 연출을 하게 되면 어김없이 2류로 전락한다. 불행히도 <언데드>는 그 2류 수준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다. 케이시가 악령과 싸우듯이 관객은 쏟아지는 졸음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한다. 우베 볼처럼 데이빗 S. 고이어 또한 연출 작품에 한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언데드>에서 얻을 수 있는 공포는 두 가지다. 지루함의 공포, 그리고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나는 엔딩이 주는 공포다. 단 하나 장점이 있다면 여주인공 오뎃 유스트만의 쭉 빠진 몸매다. 그녀의 몸은 영화보다 천만 배는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