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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oh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3.5.5
영화 <미션>의 역사적 사실과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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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 콜롬버스에 의해 발견된 신대륙 원주민들에 대해서 백인들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의 정복을 시도했다. 하나는 정치적 정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정복이었다. 일례를 들어 코르테즈가 아즈텍을 공격할 때 정복군을 따라나섰던 신부는 금을 세기에 급급해 세례를 원했던 아즈텍의 죽어가는 황제 목떼수마에게 세례조차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가톨릭은 세속화되었고, 동시에 유럽은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고자 하는 현실적 열망이 강했다. 당시 가톨릭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그 권위와 실질적인 권세에 있어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런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교회 쇄신운동이 예수회(Jesuit)였다.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이었던 만큼 보수적인 출발점을 가진 예수회였지만 그들의 전교(mission) 방식은 오히려 개혁적이었고, 상당한 융통성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백인들처럼 원주민들을 사람과 비슷한 짐승으로 보지 않았고, 그들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자 서구의 백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원주민들의 영혼은 진실한 신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순진무구한 영토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회 신부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스페인 왕실의 특별한 이해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개척한 자들에게 스페인 왕실은 특별한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엔코미엔다(encomiebda)라는 것이었다. 엔코미엔다는 16세기 스페인령의 공역제도로서 이것을 받은 정복 이주민들은 인디오 원주민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고 보호(?)할 의무를 지님과 동시에 이들에게 강제 노역이나 공물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리고 이런 혜택을 입는 자들을 일컬어 엔코멘데로(encomendero)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받고 있던 정복 이주민들의 힘이 점점 커지자 스페인 왕실은 이들을 적절히 견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때 예수회 신부들의 전교활동을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회 신부들은 영화 <미션>에서 볼 수 있듯이 초창기에는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는 희생을 치르면서도 점차 원주민들의 영혼에 기독교의 정신을 심어나갔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웠고, 원주민 사회의 정치, 문화, 종교, 관습을 이해하려고 들었다. 예수회 신부들은 저마다 뛰어난 의사이자 신부요, 목수이자 음악가, 농부이자 미술가였고, 어부이자 저술가였다. 그들은 단순히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만을 교화시킨 것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예수회 신분들은 원주민들의 소박한 공동체적 생활에서 원시 기독교 신앙(원시 공산제적인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본체를 발견했고 그들 영혼의 구원을 확신했다. 예수회 신부들은 잔악한 노예상인들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자치구역을 만들었고, 많은 도망 노예들이 이곳으로 탈출해왔다. 영화 <미션>의 산 미겔 보호구역의 경우 90%가 이런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용되었다. 이 공동체는 약간의 개인 재산을 허용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원주민 농업공동체의 성격을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적 생산양식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기독교적인 가르침에 반하는 원주민들의 생활양식은 기독교적인 제례로 대체되거나 사라져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부일처제였고, 그런 가족 단위의 구성은 전에 없던 가족의 이기주의를 불러일으켜 때때로 공동체적 삶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원주민 보호구역이 이렇게 흥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그들이 정복 이주민들과 노예상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예수회의 활동은 정복 이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왔고, 정복 이주민들은 시시때때로 원주민보호구역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일도 잦았다. 실제로 예수회 신부들은 스페인 국왕의 승인 아래 무장을 허가받아 정복 이주민들과 전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1641년 약 4,200여명의 원주민들이 약 4,200여명의 투피족으로 거느린 450여명의 정복 이주민(주로 노예상인들이 중심이 된)들과 전쟁을 벌여 자신들의 보호구역을 지키기도 했다. 영화 <미션>은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1750년 1월 13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영토를 교환하는 국경조약이 체결되고 스페인은 브라질로부터 라 플라타 강 북부의 산 사크라멘토 지역을 받는 대가로, 약 30만 명의 과라니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우루과이 강 동쪽의 넓은 지역을 포르투갈에 넘겨주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안심하고 살 수 있었던 보호구역을 포르투갈에게 넘겨주고 쫓겨나거나 노예로 살아야 했다. 결국 이에 항의하는 원주민들과 예수회 신부들은 두 차례(1754년과 1756년)에 걸친 포르투갈과 스페인 군대의 무력 공격에 학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스페인에서 예수회 추방이 시작되었다. [출처] 영화 <미션>의 배경 이야기|작성자 iljun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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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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