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제사장 가야파의 관저에서 심문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는 죽을 죄를 뒤집어 씌웠다. 사형선고였다.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빌라도 총독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갔다. 그곳은 예루살렘 성의 동쪽 문인 다윗 게이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좁다란 골목길, 바닥에는 돌들이 박혀 있었다. 2000년 전 로마 시대에 마차가 다녔던 길이었다.

헝가리 화가 문카치의 1881년작 '이 사람을 보라'. 문카치가 그린 '예수 3부작' 중 하나. '예수 3부작'은 1995년에서야 일반에 공개됐다.
빌라도는 평소 예루살렘에서 살지는 않았다. 사마리아 북서쪽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카이사리아(Caesarea)에 머물렀다. 유대 지사들이 주로 그랬다. 유월절을 맞아 마침 예루살렘의 관저에 내려와 있던 참이었다. 처음 취임할 때만 해도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서를 무시했다.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은 우상 숭배를 금한다.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은 황제를 종종 신으로 추대했다. 빌라도는 취임 후에 로마 황제의 얼굴을 그려넣은 깃발을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여오는 문제로 큰 충돌을 빚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을 깨는 일이었다. 하느님을 만나는 신성한 성전이 있는 곳에 우상을 그린 깃발을 들여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항거했지만 결국 깃발은 성 안으로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빌라도는 기세등등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화가 안토니오 치세리의 1871년작 '이 사람을 보라'.
나는 빌라도의 관저 앞에서 눈을 감았다. 꼭 2000년 전이었다. 유월절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눈 예수는 올리브 산으로 이동했다가 체포됐다. 밤에 끌려와 새벽 내내 심문을 당했고, 이윽고 닭이 우는 아침이 됐다. 그러니 예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꼬박 밤을 새웠다. 더구나 가야파의 저택에서 극심한 조롱에 주먹질까지 당했다. 그러니 예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을 터이다. 빌라도 총독의 관저는 아침이 돼야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그들은 아침까지 기다렸다. 복음서에는 ‘아침이 되자’(마태복음 27장1~2절) 예수를 결박해서 끌고 가 빌라도 총독에 넘겼다고 기록돼 있다.

골목 오른편이 빌라도 총독의 관저가 있던 곳이다. 골목길 왼편에는 예수가 재판을 받았던 빌라도 법정이 있었다.
예수가 빌라도 앞에 섰다. 빌라도가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들의 왕이오?”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마태복음 27장11절)

헝가리 화가 문카치의 '빌라도 앞에 선 예수'.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요한복음 18장34절)
이 말을 들은 빌라도의 표정이 어땠을까. 예수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빌라도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야 유대인이 아니지 않나?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나?” 이 말을 듣고서 예수는 비로소 자신의 왕국과 빌라도가 묻는 왕국이 다름을 역설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복음 18장36절)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가였던 두초 디부오닌세냐(1255~1319)의 작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예수의 말을 빌라도 총독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빌라도는 초조해졌을까. 아니면 궁금해졌을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무튼 당신이 왕이라는 말 아니오?” 이 말을 듣고 예수는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설했다.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복음 18장37절)

예수는 빌라도의 면전에서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했다.

몸이 묶인 채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가는 예수를 그린 제임스 티소의 작품.
성경을 읽다 보면 간혹 갑갑할 때가 있다. 무언가 한 발짝 더 들어갈 필요를 느낄 때다. 예수가 말한 정확한 ‘워딩’이 궁금해질 때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묵상을 했다. 그도 아니면 그리스어 성경을 펼쳤다. 성경은 처음에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번역 과정을 덜 거친 예수의 ‘워딩’이 거기 어딘가 남아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진리에 속한 이’는 그리스어로 ‘pas ho on ek tes aletheias’이다. 영어로는 ‘every the one-being out of the truth’다. 진리로부터 나온 모든 존재들이다.

빌라도 총독의 관저로 이어지는 도로. 바닥에 보이는 큼직한 돌이 보인다. 로마 시대에 만든 마차가 다니던 주요 도로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다. 예수의 왕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빌라도는 물었다. “진리가 무엇이오?” 일본의 가톨릭 문학가 엔도 슈사쿠는 소설 『예수의 생애』에서 빌라도의 이 물음을 조롱이나 비꼼으로 해석했다. 나는 달리 본다. 설사 그 말이 빌라도의 조롱일지라도, 그 속에는 빌라도의 절규가 녹아 있다. 그건 진리가 앞에 있어도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의 절규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비명’이다.

마네(1831-1883)의 작품 '군인들에게 조롱당하는 예수'.
유월절은 유대인에게 큰 절기다. 그런 축제 때마다 내려오는 하나의 풍습이 있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를 한 사람 풀어주는 일이었다. 일종의 특별 사면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바라빠라는 죄수가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바라빠를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로마에 맞서 싸우다 체포된 정치범으로 추정한다. 단순 강도가 아니었다. 빌라도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예수와 바라빠. 둘 중 하나는 살고, 나머지 하나는 죽어야 했다. “내가 누구를 풀어주기를 원하오?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군중은 소리쳤다. “바라빠요!”

독일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 마티스 그뤼네발트 작 '채찍질 당하는 예수'.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가 채찍질을 당하고 있다. 카라바조 작.

로마의 군인들에 의해 예수가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을 그린 제임스 티소의 작품.
저걸 직접 짊어지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허리를 숙이고 그 십자가를 짊어졌다. 무거웠다. 어른 한 사람을 업었을 때처럼 등이 눌렸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신문과 재판을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한 예수였다. 그런 예수에게도 십자가 무게가 단지 70㎏이었을까. 아니다. 십자가에는 예수를 향한 유대인의 멸시와 조롱, 하느님 나라를 향한 세상의 외면. 그 외면으로 인한 예수의 고독이 함께 실렸을 터이다. 예수는 그토록 가혹한 무게를 짊어진 채 비틀거리며 총독의 관저를 나섰다. 나도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발을 뗐다.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짊어진 장소에서부터 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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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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