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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맨틱기타리스트발표맨
- 작성일
- 2010.10.24
모비 딕
- 글쓴이
- 허먼 멜빌 저
작가정신
책을 선택할 때 책의 분량은 별로 고려대상이 아니지만, 사실 이 책은 조금 각오를 해야 했다. 이 책에 수록된 포경업에 관한 전문적 지식들이 자칫 생소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먼 멜빌은 자신이 포경선을 타고 2,3년씩 대양을 거닐던 경험을 바탕으로 포경업과 포경선 전반에 관해 매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백과사전식 단순나열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오해이다. 책의 절반 가까이를 채우고 있는 포경업에 관한 내용에는 저자의 포경업을 향한 자부심과 환희,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래와 관련된 일련의 묘사들 속에는 인생에 관한 메타포가 속속들이 담겨 있어 한 구절도 놓칠 수도 대충 읽을 수도 없었다.
"내 이름은 이슈마엘이다."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대사만으로도 이 책은 굉장히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선장 에이해브, 일등항해사 스타벅, 이등항해사 스터브, 이슈마엘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작살잡이인 퀴퀘그, 겁쟁이 픽 등은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스펙터클하게 만들어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화자인 이슈마엘과 선장 에이해브는 성경의 등장 인물로 각각 소외된 채 길을 떠난 자와 신을 대적하여 악을 행하는 자로 대변되는 이름이다. 퀴퀘그는 식인종 부족의 추장아들이고, 픽은 흑인소년으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여행담이 자못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비롯한 30여명의 선원들은 피쿼드호라는 낸터컷 출신의 포경선을 타고 족히 2.3년은 걸릴 머나먼 고래잡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에이해브 선장의 목적은 고래기름을 통한 수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를 죽이는 데 있었다. 지난 번 출항에서 그는 모비딕으로부터 한쪽 발을 잃었고 그 순간부터 그는 생의 모든 악의 근원을 그 고래에게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스타벅 일등항해사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피쿼드호를 파멸로 몰아가는 에이해브 선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선원들이 모비딕에게 복수하자는 에이해브 선장의 선동에 동조했음에도 스타벅은 시종일관 에이해브에게 본업에 충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진심으로 조언한다.
그러나 스타벅이 에이해브를 돌이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에이해브는 결국 모비딕과의 사흘간의 혈전 끝에 치명상을 입히지만, 모비딕의 반격에 피쿼드호의 침몰과 더불어 파멸하고 만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에이해브가 맞서 싸운 모비딕이라는 흰 색 고래는 자연일 수도 있고, 절대적 실체일 수도 있고, 운명의 굴레일 수도 있다. 혹은 피쿼드호의 어원에 충실하자면, 인디언을 말살한 제국주의 백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마다 다르겠으나, 우리는 어쩌면 저마다의 대적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싶어하고, 이를 위해 이미 각자만의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에이해브는 영웅적인 면모를 지녔으나 피쿼드호에 탔던 모든 선원을 파멸로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에이해브처럼 우리가 맞서 싸워야할 대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목숨과 내 모든 열정을 걸만큼 가치있는 일일까? 어찌되었든 나 역시 저 넓고 깊고 푸른 대양을 향해 떠나고 싶은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내이름은 이슈마엘..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이슈마엘이기 때문이다.
p.s.
1) 이 책은 상당히 고가의 양장본이지만, 소장용으로서 가치는 뛰어나다고 본다. 오타가 적은 편이고, 칼라판에 종이질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에리스 포미에가 그린 삽화들이 책에서 묘사한 고래와 도구를 거의 빠짐없이 포함하고 있어, 글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임스 죠이스의 '율리시즈'급 무게 때문에 별 하나만 감점할까한다.(물론 그보단 적게 나간다.^^;;)
2) 대가의 작품에서는 작가 고유의 문체가 주는 기쁨을 맛보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독백들은 셰익스피어적이라 할 정도로 언어유희의 궁극을 맛보게 해준다. 다음에 읽을 때는 반드시 영문판으로 볼 생각이다.^^
3) 참고로 스타벅스는 커피를 좋아하는 피쿼드호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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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댓글 16
- 작성일
- 2010. 10. 25.
@꽃들에게희망을
- 작성일
- 2010. 10. 27.
- 작성일
- 2010. 10. 27.
@위대한여리
- 작성일
- 2010. 10. 28.
- 작성일
- 2010. 10. 28.
@무선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