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적판을 타고

윤고은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7.1.5
우리는 단지 마당을 빌려준 것뿐이었다. 센터에서는 우리 집 마당이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이 동네에 우리보다 더 넓은 마당을 가진 집이 수두룩한데, 왜 하필 우리 마당이 당첨된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는 당첨이란 단어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우리는 부모님의 일방적인 결정에 토라진 채로, 마당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열두 살이었고, 남동생 둘은 각각 일곱 살과 네 살이었다. 둘째는 그 사실을 내게 상기시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셋을 다 합쳐도, 아빠 나이가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들인 공으로만 계산해보자면, 둘째가 마당에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는 게 마땅했다. 둘째는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내 이 집 마당에 뭔가를 심고 뿌리며 놀았다. 제 방이나 바다도 마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였다. 막내는 태어나면서부터 저 마당에서 뒹굴었고, 나는 마당에 사람들이 머무는 걸 좋아했다. 물론 오늘 같은 사유는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으로 마당이, 오른쪽으로 2층 주택이 보였다. 내 방은 그 2층, 마당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마당엔 우리가 이름 붙인 나무들과, 초대받지 않고도 찾아와 뿌리를 내린 풀꽃들이 있었다. 아빠는 이 마당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지를 잊은 게 분명했다.
센터에서 보내온 서류는 모두 여섯 장 분량이었는데, 나로서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가 서류에 서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거대한 자루들이 집에 왔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었는데, 불투명한 비닐자루들은 내 키보다도 더 컸다. 비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둘째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뛰어와서는 자루가 모두 다섯 개라고 말했다. 아직 밖에 대기 중인 자루들을 못 보고 하는 얘기였다. 곧, 먼저 배달된 자루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분량의 자루들이 초록 대문을 넘어 합류했다.
그 바람에 우리가 심어놓은 채송화나 맨드라미는 즉사했다. 라벤더는 고장 난 미닫이문처럼 한쪽으로 찌그러졌으며, 죽은 벌레를 발견할 때마다 모아두던 구멍은 증발했다. 금붕어 무덤을 표시했던 십자가는 그게 하드막대 두 개로 만든 것임을 고려해도 너무 무기력하게 쓰러져서, 누가 아무렇게나 먹다 버린 쓰레기처럼 보였다. 그 모든 건 우리 삼남매에게만 보이는 것들이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어떤 상도 맺히지 않았다.
포크레인은 아침 10시 쯤 우리 집으로 와서 점심이 지나도록 가지 않았다. 그것이 오후 내내 우리 마당을 훼손하는 걸 보는 건 괴로웠다. 둘째는 안절부절 못하며 계속 뭔가를 확인하고 다녔고, 막내는 제가 심은 채송화가 사라진 걸 보고 울기 시작했다.
“난 이제 여기서 줄넘기도 못하겠네요?”
“할 수 있지, 왜 못하니.”
내가 물었을 때, 대답한 사람은 아빠가 아니었다. 저 아래 깔린 방수포처럼 새파란 색의 점퍼를 입은 남자였다. 아빠의 동료라고 했다. 점퍼는 정강이를 덮는 길이에 품도 너무 커서 마치 저 자루들의 하나처럼 보였다. 그는 종일 우리 마당을 제집인 양 밟고 다녔는데, 시퍼런 자루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루가 말했다.
“지하 10m의 구멍 하나를 잠깐 빌린 것뿐이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단다. 평소대로 뛰어놀아도 돼.”
“우리 채송화는요!”
막내가 소리쳤다. 자루는 막내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엄마를 향해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하 10m이니까요. 사실 보통 사람이 지하 10m에 대해 인식하기는 쉽진 않죠. 지상 10m라면 모를까요.”
나는 병에 든 커피를 하나 잽싸게 가져와서 자루에게 내밀었다. 자루는 이미 자기가 마신 병을 흔들어보였지만, 또 마시면 어떠랴. 그가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거나, 갑자기 피곤하거나 해서, 일이 지연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내일로 마당 공사가 미뤄진다든지, 그게 아니면 모레로라도.
“저 자루들이 다 뭔데요?”
내가 물었을 때 자루는 ‘짐’이라고 대답했다.
“짐이요? 무슨 짐이요?”
“아아, 그러니까.”
자루가 뭔가 말을 하려나 싶었는데 엄마가 그걸 끊었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얜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가지고, 걱정도 많거든요. 워낙 책을 좋아해서요.”
엄마는 내 시력이 안 좋은 이유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너무 책을 좋아해서요.’ 내가 운동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너무 책을 좋아해서요.’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나는 아빠의 성격을 닮은 거였다. 책보다는 유전자 문제란 말이다.
“나도 한 독서하는데. 어떤 책을 좋아하니?”
자루가 말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자루는 자기 인생의 책으로 <어린왕자>를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아니?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최악으로 꼽는 게 책이란다. 큰 가구보다도 책이 늘 짐이라고. 내가 엊그제 이사를 해봐서 알지. 어서 읽고 머리에 많이 넣어 둬. 네 나이 땐 백과사전도 암기할 수 있잖니. 머리에 넣고, 집을 옮길 땐 책도 좀 버리는 게 좋아.”
나는 그가 건드리지 않은 병 음료의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막내가 옆에 붙어서 또 채송화 타령을 했다. 저만치서 일을 다시 시작하자는 소리가 들렸다. 자루가 그쪽으로 갈까봐 내가 얼른 덧붙였다.
“최악에서 두 번째는요? 이사할 때 최악이 책이고, 그러면 그 다음은 뭐예요?”
“으응? 두 번째는, 화분이지. 아아, 그것도 만만치 않아.”
“최악에서 세 번째는요?”
이번에는 둘째가 끼어들었다.
“세 번째?”
남자는 동생들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더니, 다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 번째는, 요렇게 들러붙는 꼬맹이들!”
그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사라졌다. 구멍을 향해. 저만치 구멍 앞에 아빠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저 구멍이 지하 10m란 말인가? 바람이 불어 아빠의 점퍼자락이 펄럭거리는 게 거슬렸다. 자칫 잘못하면 저 구멍 안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였다.
작업은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해가 저물 무렵엔 그 거대한 구멍이 다시 흙으로 메워졌다. 집 밖에서 낯선 사람들이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고, 시퍼런 자루가 마지막으로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는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하며 ‘현장’이란 단어를 썼다. 문장 전체가 기억나진 않지만, 여기 현장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통화를 끝낸 그는 우리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대문 쪽으로 갈 거라는 예상을 깨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까, 뭐라고 했지? 누가 죽었다고?”
“예?”
“아까 너희들이 계속 그랬잖니. 누가 죽었다고.”
나는 막내를 쳐다보았다. 막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오후 내내 목 놓아 불렀던 그 이름을 말이다. 막내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했다.
“채송화요.”
“채, 뭐?”
“채, 송, 화, 요. 우, 리, 채, 송, 화!”
네 살짜리는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나는 자루가 웃거나, 우리를 혼내거나, 그 둘 중 하나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두 갈래의 길 중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그는 수첩을 펴들고 동생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채,송,화. 반 친구니?”
반 친구냐고? 어리둥절해진 막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닌데요.”
“그래, 그럼 반 친구는 아니고, 채송화. 몇 살이지?”
문 밖에서 그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면 그가 떠나갈 것 같아서, 내가 얼른 대답했다.
“3년 쯤 됐어요.”
“오케이. 3년 된 채송화. 오케이.”
자루는 뭐라고 적은 후, ‘탁’ 소리가 나도록 수첩을 덮었다. 업무의 종료를 알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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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