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1. 해적판을 타고

이미지



 

 

  여름이면 휴가 계획을 짜는 게 아빠의 낙이었는데, 이번 여름만은 예외였다. 7월의 한가운데, 마당이 헤집어지는 바람에 우리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마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타이밍은 꼭 그랬다. 그 공사 이후로, 아빠는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다. 막내는 무료한 듯이 뒹굴다가, “아아, 오키나와 좋았는데!” 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기억을 그렇게 소환하는가 하면, “괌은 어때?” 라고, 누군가 했을 법한 말을 흉내 내기도 했다. 막내는 네 살이었지만, 가끔은 열네 살에게도 너무 이른 것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조금 늘어져 있으면, 그 애는 약간 지쳤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누나. 냉동실에 누운 자반고등어처럼 왜 이래.”



 


  그러면 둘째는 흠칫 놀라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거였다. 냉동실에는 자반고등어 따위는 없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는 몰라도, 막내의 타이밍은 꽤 정확했다. 나는 정말, 냉동실에 누운 자반고등어처럼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네 살이 어떻게 저런 말을? 슬쩍 쳐다보면 막내는 다시 한번 자반고등어 타령을 했다.


 


  여름 내내 자반고등어처럼 보낸 덕분에 나는 개학 직전에 작년 일기장을 참고해야 했다. 참고라고 하기엔 거의 전면적이었다. 고스란히 한 달 분을 베껴 썼는데, 학교에서는 별 문제가 없을 게 뻔했지만(4학년 담임과 5학년 담임은 다르므로),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는 동생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서 혼냈다. 내가 도둑질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내가 내 꺼 쓴 건데, 왜 도둑질이야?”


 


  “4학년 때 여름이랑 5학년 여름이랑 똑같아? 아니잖아. 그런데 왜 베껴 써. 그걸.”


 


  4학년 여름과 이번 여름이 똑같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이게 정말 도둑질이라면, 그렇게 해서 훔칠 수 있는 거라면 4학년뿐 아니라 3학년 일기까지 베꼈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고 속상해했다. 일기를 그렇게 거짓말로 채우면 안 된다는 게 엄마가 누차 강조한 내용이었는데, 사실 내 입장에서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의 일기를 지금의 것처럼 다시 쓰는 동안, 나는 진심으로 즐거웠으니까.


 


  개학까지는 겨우 4일이 남았는데, 엄마는 일기를 다시 쓰라고 했다. 그것도 거짓말 아닌가. 꼭 빼닮은 두 권의 일기장을 엄마가 빼앗아 갔는데도, 작년 오늘자 일기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하도 들여다봐서 외워버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여름, 우리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방파제를 따라 달렸다. 아빠의 자전거 뒤에 동생 둘을 실은 수레가 달려있었고, 그 뒤로 내 자전거가, 마지막으로 엄마의 자전거가 있었다. 소나기가 시작되었고, 아빠가 자전거를 멈춰 세우는 걸 보고도 엄마와 나는 계속 페달을 밟았다. 앞바퀴가 빗물을 밀어 올리는 게 꼭 고래가 숨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젖은 길 위를 매끄럽게 누비던 바퀴의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옷이 홀라당 다 젖으면서도 페달을 밟았던 그 오후를 엄마는 기억할까.

  오늘 일기를 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대충 휘갈겼다가, 결국 지워버렸다. 내가 지운 문장은 이랬다.  


 


  ‘배롱나무 아래, 상습훈육구역에서 엄마한테 혼났다. 일기를 베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혼낼 때 마당의 배롱나무 아래로 데려간다. 동생들 앞에서 혼내면 누나 위신 떨어진다면서.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크레센도처럼 점점 커지는 바람에, 결국엔 모두가 알게 된다. 기분 더럽다.’


 


  엄마 말대로 4학년 여름과 5학년 여름은 같지 않았다. 문제는 솔직하게 쓰자면 정말 끝이 없다는 데 있었다. 수위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수위조절을 못한 예가 바로 둘째였다. 둘째는 이 여름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기록해서 배롱나무 아래로 끌려갔다. 둘째의 일기에는 우리 마당에 구덩이를 팠고, 그 안에 수상한 뭔가를 넣었고, 그 때문에 마티할머니가 의심하고, 아빠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으며, 3년 된 채송화가 비대하게 자라나 징그럽다는 것까지 소상히 적혀 있었다. 진짜 이번 여름에 대해 쓰려면 그런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자정 즈음, 나는 동생의 일기와 내 일기,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일기 중에 뭐가 진짜일까를 생각하다가 마당으로 내려갔다. 모두가 잠들고 배롱나무 아래는 이제 텅 비어 있었다.


 


  마티할머니 말대로, 아빠는 개 두 마리를 마당 한 구석에 묻은 적이 있다. 배롱나무 아래가 그 자리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또렷하고, 어쩌면 그 농도로 인해 내 유년기 최초의 기억이 된 건지도 모른다. 아빠는 퇴근길에 잿빛 자루를 하나 안고 왔는데, 그 자루 안에 비글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한 마리는 오는 과정 중에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있었지만 겨우 사흘을 더 살고 죽었다. 비글들은 우리 마당에 잠들었다. 


 


  마티할머니가 그걸 오염된 개라고 부르는 건, 두 마리의 비글이 실험견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일하는 곳을 우리는 간단히 센터라고 불렀는데, 그곳에서는 동물들을 활용한 임상실험을 했다. 동물이 우리 대신 화학품 부작용 검사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스킨로션도 바를 수 있는 거라고, 아빠가 말한 적이 있다. 실험에 쓰인 동물들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비닐봉지에 담긴 채 버려졌다. 드물게 실험 후에도 살아남은 경우 안락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비글 두 마리는 아빠가 직접 데리고 온 거였다. 아빠를 유독 잘 따랐던 아이들이었다고는 하지만 실험견이 밖으로 나가는 건 예외적인 경우였고, 센터 초창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실험동물을 센터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설령 살아있는 경우라고 해도 말이다. 마티할머니처럼 바이러스라든지 그런 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제는 모두 센터 안에서 폐기된다. 그리고 연말에 실험동물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그렇지만 아마도 또 한번 예외가 생긴 모양이라고, 나는 저 앞에 놓인 지하저장고의 입구를 보며 생각했다.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1.5m 정도 되는 컨테이너박스의 입구가 마치 통풍구처럼 바닥에 뚫려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아래에 또 하나의 컨테이너박스가 들어가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저장고는 이 아래에 있는 다른 하나를 덮기 위해 만든 용도인 것이다. 저장고로 들어가면 여름밤의 공기가 몇 도쯤 서늘해지는 걸 체감할 수 있겠지만, 이 밤에 저 문을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밤낮이 뒤바뀌었구나. 개학하면 어쩌려고?”


 


  아빠였다. 아빠는 담뱃갑을 얼른 집어넣으며, 어둠 속에서 빙긋 웃었다.


 


  “요거, 눈이 아주 말똥말똥하네.”


 


  “어? 담배 끊은 거 아니었어?”


 


  아빠는 “거의 끊었다”는 애매한 말을 했다. 우리는 2인용 흔들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몸을 흔들었다. 꽤 오랜만이었다. 최근에는 아빠의 출장과 야근으로 인해 얼굴 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기회가 드물다는 생각, 그리고 아빠가 담배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자,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게 튀어나왔다.


 


  “아빠, 이 아래에 묻은 게 혹시 비글이야?”


 


  “응?”


 


  “아니면 기니피그? 랫? 마우스?”


 


  아빠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다가, 손을 거두고 대답했다.


 


  “토끼.”


 


  토끼구나.


 


  “가을 안에 가져가. 임시로 우리 집에 두는 거야.”


 


  어둠 속에서도 잔디가 뿌리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또 파헤친다고? 그럴 거면 비싼 잔디를 왜 깔았느냐고 묻자, 아빠가 그게 질문이냐는 식으로 대꾸했다.


 


  “회사 돈으로 하는 건데 안 하면 바보지?”


 


  말 그대로 우리는 마당을 빌려준 거네. 마당 아래를. 그렇게 생각하자 그날 본 자루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자루들이 아마 저 지하 깊은 곳 컨테이너박스 안을 채웠을 것이다. 그만큼을 채우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토끼가 필요한 걸까. 실험용 토끼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토끼 눈을 고정해놓고 거기에 약품을 바르는 장면도 떠올랐고, 토끼 목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약품을 바르는 장면도 떠올랐다. 토끼는 화장품실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이었다. 순하고, 체구가 작고, 개체수가 많아서.


 


  “아빠. 실험용 토끼는 1초에 세 마리씩 죽는대.”


 


  그렇게 말해놓고 덧붙였다.


 


  “물론, 아빠가 전문가니까 더 잘 알겠지만.”


 


  내 말에 아빠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건 어디서 들었니?”


 


  “책에서.”


 


  아직은 8월의 끝자락인데, 제법 선선한 바람이 의자를 흔들었다. 배롱나무 위에 매미가 벗어놓은 껍질을 발견한 밤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던 매미 껍질은 아침이 오기 전에 쿵, 하고 떨어졌다. 속이 텅 비어있을 텐데도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여름이 그렇게 끝났다.  






좋아요
댓글
177
작성일
2023.04.26

댓글 177

  1. 대표사진

    하이

    작성일
    2017. 4. 14.

  2. 대표사진

    행복

    작성일
    2017. 4. 13.

  3. 대표사진

    den365

    작성일
    2017. 4. 13.

  4. 대표사진

    claudio

    작성일
    2017. 4. 13.

  5. 대표사진

    Rubens

    작성일
    2017. 4. 16.

윤고은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17.1.26

    좋아요
    댓글
    153
    작성일
    2017.1.26
  2. 작성일
    2017.1.23

    좋아요
    댓글
    163
    작성일
    2017.1.23
  3. 작성일
    2017.1.19

    좋아요
    댓글
    167
    작성일
    2017.1.19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59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7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