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1. 해적판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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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심고 거둔 채소를 식탁 위에 올리는 게 엄마의 자부심이었다. 엄마를 빼면 가족 중 누구도 채소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엄마와 샐러드 놀이를 할 때면 취향도 별 문제될 건 없었다. 오늘의 재료는 가늘게 채를 쳐서 드레싱으로 버무린 양배추샐러드였다. 엄마가 양배추샐러드를 한 젓가락 집어 들고 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이게 뭘까?”


 


  그러면 동생들은(절대 나는 아니다) 손까지 들어가며 대답했다.


 


  “나, 나! 거미줄!”


  “나는, 아이언맨!”


  “이만큼 큰 거미줄!”


 


  샐러드의 형상을 보고 제 멋대로 이름을 붙이면, 엄마는 마음에 드는 대답을 골라서 승자의 입에 샐러드를 넣어주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결국 두 동생 다 먹는 횟수는 똑같았다. 많아야 한두 회 차이랄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샐러드를 가지고 경쟁을 붙여놓으면 둘 다 정답을(애초에 정답은 없는 것이지만) 맞히고 싶어서 애썼고, 젓가락이 들어오면 입을 제비처럼 벌렸다. 한때 내 단골 대답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였다는 걸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모두 오래 전의 일. 이제 저건 사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을 뿌린 양배추일 뿐이다.


 


  흔한 저녁이었다. 막내가 거미줄 타령을 하는 게 평소와 다르다면 좀 다른 점이었다. 엄마는 이 샐러드 놀이를 통해 야채도 먹이고 아이들의 상상력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미줄은 상상력의 점프가 아니었다. 실제로 집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당의 구석마다, 나무마다, 집의 외벽마다, 모서리라면 모서리마다 거미줄이 눈에 들어왔다. 원인은 둘 중 하나였다. 집 짓는 거미들이 늘어났거나, 거미 집을 철거하던 사람이 바빠졌거나.


 


  아빠에게 다시 주말이 찾아온 건 10월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게 아빠의 귀환과 함께 부모님의 싸움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얘기는 무엇으로 시작하든 좀 길어지면, 마당의 폐기물 얘기로 끝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당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 지렁이들이 자꾸 땅 위로 올라온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마당이 헤집어지고 두 달 쯤 지났을 때였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지렁이가 자주 보였다. 둘째는 나무젓가락으로 지렁이를 쿡쿡 찔러대곤 했다.


 


  “왜 못 들어가? 나온 데로 다시 들어가면 되잖아? 길을 몰라?”


 


  미처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들은 햇빛 아래서 온 몸이 굳어갔다. 나는 죽어가는 지렁이 위로 물을 가져와 뿌려주기도 했다. 땅 위로 올라온 것이 몇 마리에 불과했을 때의 얘기다. 우리는 더 이상 마당에서 놀지 않았다. 집 안에 있었고, 엄마의 목소리는 방문 밖에서도 다 들릴 만큼 컸다.


 


  “감사 끝나면 가져간다더니, 아직도 그대로잖아. 신경은 쓰고 있는 거래? 이 동네에 얼마나 말이 많은데.”


   이건 엄마의 말이었고.


 


  “상황을 좀 보자니까 그러네. 기다려봐. 연말까지만 양해를 구한다잖아.”


   이건 아빠의 말이었다.


 


  “누나. 근데 현철이네 엄마아빠는 매일 싸운대.”

  이건 둘째의 말이었다. 둘째는 부모님이 싸우면, 괜히 친구네 집 사정을 들먹였다.



 


  “현철이네가?”

  그렇게 대꾸해주면 둘째는 다른 친구들의 이름도 들먹였다. 애꿎은 현철이, 승호, 연준이…… 부모들이 죄다 싸우거나 고약하다는 거였다. 친구네 집을 들쑤시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는 골목 끝에 있었고, 거기엔 둘째에게 행복감을 주는 미끄럼틀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미끄럼틀 쪽을 향하고 있으니, 둘째가 마치 사냥하는 코요테처럼 행동하는 게 보였다. 미끄럼틀은 이미 몇 명의 아이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둘째는 그중에 한 아이를 은근슬쩍 무리 밖으로 꾀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야, 너 몇 살이야?”


 


  무리 밖으로 나온 아이가 두 손을 활용해서 대답했다.


 


  “여섯 살.”


 


  둘째는 콧방귀를 뀌었다.


 


  “난 일곱 살이거든?”


 


  ‘그래서, 뭐?’ 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다. 한 살 밀린 그 아이는 슬금슬금 물러났고, 무리는 함께 떠나갔다. 둘째는 잽싸게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가며, 막내를 불렀다. 그리고 나도 불렀다. 미끄럼틀 아래에 붙어있던 그네가 내 자리였다. 둘째가 지정해준 자리에 앉아 무게중심을 이리저리 옮겨보았다. 아까 들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는 싸우고 있었지만, 둘 다 아무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편이었다. 권한은 센터에 있는 모양이었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센터에서 그 폐기물을 회수하기로 한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도 그걸 가져가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일주일 전에는 가져갔어야 했다. 아빠 말로는 센터에서 폐기물 보관소가 준비되는 연말까지, 세 달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는데, 엄마는 그게 싫은 거고, 말은 안했지만 나도 그랬다.


 


  센터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마당이 소화할 수 있는 건 비글 두 마리. 그 정도였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저 아래에 수많은 토끼들이 묻혀 있다는 걸 떠올리면, 어쩐지 우리 셋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도 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놀이터에서 나와 우리의 초록 대문 앞에 섰을 때, 집은 그새 낯설어져 있었다. 건물의 오른쪽과 왼쪽에 밀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담벼락과 접한 쪽이 단단한 콘크리트 같았다면, 큰 마당 쪽과 접한 면은 마치 비스킷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문드러지고 눅눅해지는 비스킷.

 

  그 비스킷 앞에서 아빠가 잔디를 다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지렁이를 이제야 발견했는지, 언제부터 이랬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폐기물 회수가 연말까지 늦춰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다음 달에 우리 마당에서 잡지 촬영을 하기로 한 건, 그런 노력의 성과였다. ‘심플라이프’라는 잡지였는데, 엄마랑 친한 이모가 일하는 데여서 나도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었다. 주로 텃밭을 가꾸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파이를 구우면서 웃는 가족들이 많이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두 페이지의 지면, 그리고 사이트에 올릴 짧은 영상, 그게 우리 가족의 몫이었다.


 


  촬영일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었지만, 엄마는 벌써 가족 모두에게 일감을 줬다. 아빠와 동생들이 마당 곳곳을 다듬는 동안, 나는 2층 방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어떤 말을 할까 고민했다. 내가 할 일은 2분가량, 우리 가족과 마당에 대해 소개하는 거였다. 반장 선거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그 2분이 잘 준비되고 있는지 수시로 검사하려고 했다. 심지어 공중목욕탕 같은 곳에서도 말이다.


 


  “준비 다 했니? 지금 해봐. 엄마가 보게.”


 


  나는 서 있었고, 엄마가 내 오른쪽 다리를 이태리타월로 밀고 있을 때였다.



 

 


  “싫어. 지금 안 할래. 나중에 집에서.”


 


  “엄마 시간 있을 때 해. 집에 가면 언제 시간이 나니?”


 


  

  결국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준비한 내용을 읊어보려 했지만 고역이었다. 엄마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나는 서 있었고, 내 눈에는 칸막이 너머 다른 여자들이 다 보였던 것이다. 나는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 본단 말이야.”


 


  “아무도 안 봐. 누가 봐.”


 


  결국 다시 엉거주춤 섰다. 목소리는 최대한 낮추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풍송초등학교 5학년 4반 채…….”


 


  “더 자신감 있게 해야지. 눈은 한 곳만 보고.”


 


  “안녕하세요, 저는 풍송초등학교 5학년 4반 채유나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양파를 심을 건데요. 양파는 이 추운 겨울에 맨몸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채소입니다. 씩씩한 양파를 먹으면 우리도 튼튼해지기 때문에……” 


 


  쟤 뭐하는 거야, 라는 눈빛으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같았고, 엄마 말대로 아무도 나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같았다. 어떻든, 하나만은 확실했다. 다시는 엄마 따라 목욕탕에 오진 않을 거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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