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1. 해적판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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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막내는 그 비밀이 뭔지 목격한 적도 없었다. 엄마가 차 안에서 방귀를 뀌었다던 ‘저번’은 막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니까. 그건 내가 막내에게 해준 이야기였고 막내는 들어서 알았을 뿐인데, 말이란 게 그렇듯 막내의 기억 속에서 몸을 부풀렸다. 엄마는 이렇게 보탰다.


 


  “차 안에 있는 식구들 때문에 좀 참아볼까 했는데, 참다가는 내 안에 있는 식구가 괴로울 것 같더라고요. 바로 요 녀석 때문에요.” 


 


  막내는 코를 틀어막는 시늉을 하며 웃었고, 기자들이 돌아갈 때는 배꼽인사를 하며 배웅했다. 잔칫날이었다. 집은 깨끗했고 예뻤다. 오랜만에 최상의 상태였다. 며칠 더 손님들이 이어졌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엄마의 친구들이 다녀갔고, 수요일에는 아빠네 팀원들이 모일 거라고 했다. 엄마는 추어탕을 끓였다. 매년 가을 꼭 한번은 집에서 만드는 음식이었다. 아빠가 팀장이 된 이후로 엄마는 추어탕을 끓이면 팀원들을 초대하곤 했다.


 



  나는 추어탕 냄비를 들고 서서 마티할머니네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이 열리자 마티가 먼저 나와 우리 집 쪽으로 움직였다. 서너 걸음이나 옮겼을까? 늙은 개라 민첩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필요 이상으로 거칠게 마티를 붙잡았다. 체념한 듯이 할머니 품에 안기는 개를 보고도, 할머니는 혹시 마티가 우리 집 쪽으로 갈까봐 경계했다. 오래 전에는 마티가 우리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았던 적이 있고, 우리 역시 할머니네 마당을 뛰어다닌 적이 있었는데 여름 이후 또렷해진 변화였다. .그런 몸짓을 보고 있노라니 추어탕이고 뭐고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늘 얌체 같은 분이었다. 오늘 심은 양파를 수확할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에게도 나눠 드리겠지만, 할머니에게서 뭘 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주말에 뭘 하던데, 뭘 한 거니?”


 


  “잡지 촬영이요. 심플라이프.”


 


  “요란하다, 요란해.”


 


  “시끄러우셨어요?”


 


  “마음이 시끄러워. 너희 마당 쪽만 보면, 불안해서 못 살겠다.”


 


  마티할머니의 말대로라면, 나는 불안과 한 이불을 쓰고 동거하는 셈이었다.


 


  “이건 뭐니? 아, 추어탕인가.”


 


  그렇다고 하자 마티할머니는 마치 배달음식을 받듯이 당연하게 냄비를 받았다. 그러면서 제피가루를 잘 썼나 어쩌나, 라고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아빠는 저녁 무렵 루와 함께 왔다.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 있었고, 아빠의 팀에서 두 명이 다른 팀으로 이동해서 현재 아빠의 팀원은 루 한 명 뿐이었다. 곧 채워질 거라고는 했지만 뭔가 어수선해보였다. 두 사람은 마당에 있는 나무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나와 둘째가 부엌에서 마당까지를 오가며 음식을 날랐는데 어느 순간, 루가 이렇게 말하는 게 귀에 쏙 들려왔다.


 


  “소장은 거의 좌천된 거라던데요.”


 


  그 말에 아빠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워졌는지, 아빠는 바로 옆에 덜컥 앉아버린 딸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표정을 한 겹도 코팅할 여력이 없어보였다. 소장이라면 아빠에게 폐기물에 대해 약속했다던 그 사람 아닌가. 나는 ‘좌천’이 뭔지 얼른 검색해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꼈다.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소장 쪽 라인이 다 무너졌다던데. 이제 소장도 뭐, 그냥 아저씨죠. 어디서 만나도 편하겠죠, 이제.”


 


  루의 말투가 좀 웃겼는지, 어느새 루 옆에 앉은 막내가 그 말을 따라했다.


 


  “뭐, 그냥 아저씨죠? 뭐 그냥 아저씨죠.”


 


  아빠가 술을 연거푸 두 잔 들이켰다. 아빠가 소장이 그냥 아저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루는 그게 무슨 뜻인지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바람이 배롱나무를 마치 탬버린처럼 흔들었다. 우수수 나뭇잎이 떨어졌다. 루가 허리를 굽혀 붉은 나뭇잎 하나를 주워들고는, 막내에게 손을 내밀어보라고 말했다.


 


  “선물! 자, 저기 가서 놀아.”


 


  손바닥 위의 나뭇잎을 가만히 보던 막내가 그걸 꼭 쥐고 제 형에게 달려갔다. 둘째가 조금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난 또 돈이라도 주는 줄 알았지.”


 


  막내가 그 나뭇잎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저녁에 옷을 벗다가, 내 후드티셔츠의 모자 속에서 은행잎 하나를 발견했던 순간은 명확하게 기억한다. 우리 집에는 은행나무가 없었는데 어디서 온 걸까. 은행잎은 아직 덜 자란 것처럼 보였다. 막내의 귀보다도 더 작았으니까. 나는 그 은행잎을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심플라이프 촬영일로부터 일주일 쯤 지났을까. 우리를 취재했던 기자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우리 이야기를 이번 11월호에 넣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이 그 지면에 나가는 게 적절치 않다고 익명의 누군가가 잡지사로 건의를 해왔고, 잡지사에서도 회의 결과 무리수를 두지 말자는 결론이 났다는 거였다.


 


  그 누군가가 제보한 내용은 이랬다. 우리 마당에 몇 달 전 수상한 공사가 있었고, 그 공사는 센터의 폐기물과 관련된 걸 거라고.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아는 것과 정확히 일치했으니까. 다만 우리 모두 그 다음 내용까지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 센터에서 이런 식으로 폐기물을 매립한 적이 처음은 아니며, 어쩌면 우리 마당은 이미 중금속 오염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엄마는 기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라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가 공사를 했던 건 사실이지만 센터의 폐기물과 관련된 게 아니라 단지 마당에 저장고 공사를 한 것뿐이다, 누가 그런 소문을 낸 것이냐, 사실이 아니다.


 


  분명한 건 잡지사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담아야 할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도 중요하지만, 때로 어떤 세계는 소문 자체로도 타격을 입거든요.”


 


  기자는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게다가?”


 


  사진작가가 그날 열심히 찍었던 사진들 중에는 꺼림칙한 소문을 뒷받침할만한 것도 몇 장 있었던 것이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 예를 들면 슈퍼지렁이 같은 것. 기자는 그날 찍은 가족사진 중에 잘 나온 몇 장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 기자는 우리의 기사를 잠시 보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앞으로도 심플라이프에 우리가 들어갈 지면은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무기한 보류된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지난 여름 이후로 우리가 늘 마당 생각만 하고 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당으로부터 아주 자유로웠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는 마당에 대해서 우리가 좀더 생각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문이 불어나 있었다. 마치 우리의 마당이 잡지 편집에서 제외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 밖에서 도는 그 소문에 가속이 붙었다.


 


  엄마의 추궁에 아빠는 우리 마당 아래에 묻힌 토끼들이 실험에 활용되고 버려진 종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다음 말을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실험에 활용되기도 전에 이미 다른 방식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험동물에게 마취주사를 쓰지 않는 건 아주 조금의 변수도 두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중금속 오염이라니. 그 토끼들은, 이 토끼들은, 실험용으로 부적합했다. 비소가 기준치 이상으로 많이 검출되는 폐기물이었지만, 센터는 감사를 앞두고 있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폐기물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되어 센터를 뒤흔드는 문제가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내부에서 해결하자는 데 모두 합의를 했고, 그 내부에서 선택된 이가 아빠였다.


 


  아빠는 컨테이너박스로 지하저장고를 만든 이웃 이야기를 했고, 조만간 아빠도 그걸 만들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연구원들끼리 차 한 잔 하면서 주고받은 얘기였다. 사실 우리는 그때 컨테이너박스로 지하저장고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때로는 말이 앞서가고 행동이 그를 뒤따르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빠가 지하저장고를 팔 거라는 얘기를 며칠 전에 했다는 이유로, 또 이미 실험동물을 마당에 자의로 묻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마당 아래를 관통하는 다른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감사 기간만 넘기면 다시 회수해 갈 거라고 했다. 센터에서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랬다. 우리는 그렇게 마당을 빌려준 것뿐이었다.


 


  잔인하게도 심플라이프에서는 11월호가 발행되자마자 우리 집으로도 한 부를 보내주었다. 예상대로 거기에 우리 마당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건 우리에게 또 한번 취재 요청이 왔다는 것인데 잡지 이름이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과학과 우리’ 였는데, 거기서는 ‘중금속을 먹고 크는 슈퍼지렁이’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과학과 우리’의 기자가 몇 번 더 전화를 했지만,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 연휴로 월요일은 쉽니다. 8회는 다음 목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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